3-0 경제학의 존재이유

by 꺽정

국어사전에서 경제란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경제 (經濟):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 분배 . 소비하는 모든 활동


이 뜻풀이는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뜻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유명 경제학 교과서중의 하나인 '맨큐의 경제학원론'에서는 경제학을 '희소한 자원을 사회가 관리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하고 있다. 영어로 경제학을 Economics로 표현하는데 이 단어는 효율적이라는 뜻에서 파생된 것이다. 효율적이라는 것은 최소의 비용을 들여 최대의 이익 (효용)을 이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즉 영어에서 말하는 경제학은 희소한 자원을 낭비 없이 사용하여 최대의 이익(효용)을 창출한다는 개념이 저변에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서양인들이 말하는 Economics와 우리의 경제학 (經濟學)은 좀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경제란 말은 경세제민(經世濟民)에서 나온 말이다. 과거 일본인들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일 시절에 Economics를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하다가 중국의 고전에 나오는 經世濟民에서 '經' '濟'를 따서 경제학이라고 한 것이 그 유래라고 한다. 經世濟民의 뜻은 '세사 (世事)를 잘 다스려 도탄(塗炭)에 빠진 백성 (百姓)을 구(求 )함'이다. 이는 서양이 생각하는 Economics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과거 동양에서 생각했던 경제는 단순히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일을 잘 다스려 굶주림에 시달리는 백성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동양에서 생각하는 경제는 백성을 잘 살게 하자는 것을 목적을 둔 일종의 국가관리 행위이고 서양이 생각하는 경제는 단순히 효율성을 추구하는 가계단위, 기업단위의 미시적 학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맨큐의 경제학원론에 이런 말이 나온다. ' The word economy comes from the Greek word oikonomos, which means ' one who manages a household." 이 말을 통해 유추해 보건대 서양인들의 경제라는 것은 가정경제의 효율적인 관리가 그 시발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에서 생각하는 경제는 국가단위가 아니라 가계단위 또는 기업단위에 보다 적합한 학문이라 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Economics를 經濟學이라고 번역한 것은 매우 뛰어난 번역이라고 칭찬하기도 한다. 가계와 기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수준의 학문을 번역만으로 경세제민이라는 절학으로 세상을 구하는 학문 수준으로 격상시켰으니 말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단순히 가계와 기업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차원에서 경제학이 머물러서는 안 되고 경제학은 경세제민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제라는 말을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Economics를 경제학으로 번역한 것은 큰 실수하고 생각한다. 제목을 경제학으로 번역을 했지만 내용은 변함없이 Economics이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Economics를 번역할 때 말 그대로 '최소비용학', 또는 '최고효율학'이라고 칭했어야 했다. 그래야 Economics의 내용과 제목이 부합된다. 그 일본인이 Economics를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경제학이라는 용어로 번역함으로써 대중들이 경제학에 대하여 오해를 하게 만들었다. 경제학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효과를 거두는 방법을 다루는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잘 살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오해하게 된 것이다.


경제학에서 다루는 이론의 대부분은 개별기업의 입장에서 만들어졌다. 즉 노동과 자본 기술을 결합하여 최대의 이익을 창출하는 기업의 시각에서 이론이 전개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학은 시간이 지나면서 한 국가 안에 있는 개별기업의 집합의 입장에서 이론을 만들기 시작했다. 경제학은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구분이 여기에서 생겨난다. 개별기업의 입장에서 정립한 이론이 미시경제학, 개별기업의 집합의 입장에서 정립한 이론이 거시경제학인 것이다. 통신과 운송수단이 발달하면서 개별기업의 활동이 한 국가에만 한정되지 않고 국가 간으로 확대되자 국가 간 경제활동에 대한 이론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것이 국제경제학이다. 이와 같이 경제학은 경제주체의 확대 등으로 다양한 범위로 분화되고 있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근간은 경제학의 시각은 여전히 기업의 이익 중심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핵심사항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경제학은 백성을 구하는 학문으로 세뇌되어 있다. 경제학자들이 마케팅을 잘한 것으로 보아줄 수도 있다.


어렸을 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절약이 미덕인데 미국에서는 소비가 미덕이라고. 이 이야기를 듣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절약을 해야 부가 축적이 되고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미국에서는 정반대로 소비를 해야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 가 된다고 하니 본능적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미국에서 소비가 미덕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은 다름 아닌 기업가의 논리에서 생겨난 말임을 깨닫게 되었다. 앞서 얘기한 대로 경제학은 기업가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기업가는 물건을 생산하는 입장이기에 생산된 물건이 팔려야만 이윤을 남길 수가 있고 부를 축적할 수가 있다. 만약에 생산된 물건이 안 팔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본가는 망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특히 경제학자 등을 이용하여 소비가 잘되어야만 생산량이 늘어나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하여 노동자를 많이 고용하게 되고, 노동자들이 높은 임금을 받게 되고, 이러한 순환과정을 거치면서 모든 사람들이 잘살게 된다는 논리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소비가 미덕'이라는 말인 것이다.

이 말은 개인의 부를 탈탈 털어서 기업의 곳간을 채우겠다는 흑심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에 경제학이 경세제민을 추구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면 소비가 미덕이라는 말은 절대로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이런 얘기를 듣고 있다. 국민이 지갑을 열어야 경제가 활성화된다고, 과연 누구를 위하여 지갑을 여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경제학의 철학은 여러 가지 심각한 부작용을 만들어 낸다. 자원의 과소비를 유발하여 환경오염을 가중시킨다. 환경을 파괴하여 지구생태계는 무너져가고 있다.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로 치닫고 있다. 인류의 멸종이 멀지 않았다는 과학자들의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경제학은 경제활동을 통하여 부의 축적을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학문이다. 경세제민의 철학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학문이다. 경제학자들은 자본가 기업가들의 입장을 합리화하는 경제이론을 만드느라 바쁘지 경세제민을 고민하지 않는다. 경세제민을 고민하는 경제학자가 있다면 그는 경제학의 주류에서 제외된다. 사이비경제학자로 딱지가 붙어버린다. 우리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최소한 알고는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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