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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 Oct 16. 2016

오늘은 비행하기 좋은 날

@ 앨버커키 열기구 피에스타


여기는 앨버커키,

500개의 열기구 하늘로 날아오르는 땅


꿈을 꾸는 사람들의 진면목은 궂은 날에 돋보인다.



매년 10월 초, 미국 뉴멕시코주의 가장 큰 도시인 앨버커키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열기구 피에스타가 열린다. 다채로운 축제가 많은 미국에서도 손 꼽히는 화려하고 스펙타클한 축제다.



축제는 새벽 6시에 시작된다. 동이 틀 때까지 몇 시간이 남은 대륙의 새벽 공기는 예상보다도 매서웠다. 어둠 속에서 달달 떨며 해가 떠오르든, 열기구가 떠오르든 뭐라도 어서 이 밤을 물리쳐 달란 생각 뿐이었다. 


자원봉사에 나선 앨버커키 주민들은 해일처럼 몰려오는 인파를 주차장에서부터 들판으로 끊임없이 실어날랐다. 아직 운전이 서툰 할머니, 할아버지 봉사자들이 많았다. 밤잠을 자지 않고 자정부터 나오신 듯하다. 추운 새벽 공기에도 유쾌한 농담으로 사람들의 꽁꽁 언 마음을 녹여줬다. 



퐉-!! 푸왁-!!


들판 가장 가장자리로에서부터 어둠을 깨부수는 강렬한 소리와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새벽 순찰 Dawn Patrol>이 시작된 것이다. 선발대로 뽑힌 몇몇의 열기구가 먼저 불을 붙이고 비행을 준비하며 대기의 상태와 바람을 체크한다. 일종의 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나팔소리와도 같다.


풍선의 알록달록한 무늬가 화염과 어우러져 아름답고도 환상적인 비주얼을 뽐낸다. 사람들의 얼굴이 알록달록 환하게 물든다.


오늘은 새벽 밤하늘에 무수한 별이 초롱초롱 떠있을 만큼 맑은 날이다. 뭘 모르는 내가 느끼기에도 바람이 적당하다. 이 들판의 모든 사람들의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비행하기 좋은 날이다.



와.. 아름답다..


바구니에 탄 파일럿과 스탭들이 긴장된 얼굴로 불을 붙이고, 관중들의 열광적인 환호소리가 이어졌다. 동화책 속 한 장면으로 들어온 것처럼 환상적인 분위기다. 곧 하늘로 비행을 시작할 파일럿들의 결연함이 유독 아름답게 느껴졌다.



대지 위로 떠오른 태양빛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하늘 가득 열기구들의 대승천이 펼쳐졌다. 전세계에서 몰려든 500여개의 열기구들이 끝없이 너른 벌판에 대열을 이룬 채 우후죽순으로 하늘을 향해 일어선다. 


"사람의 꿈은 끝나지 않아"


문득 어렸을 때 좋아했던 만화 <원피스>의 대사가 생각난다.



인간이 달에도 가는 기술의 시대에 풍선 하나에 바구니를 달고, 불로 공기를 데워 아날로그적으로 하늘을 날아오른다. 창문도 없이 상공의 차가운 대기를 그대로 몸으로 맞서고, 최첨단 안전장비도 없이 비행한다. 


그래서 더 낭만적이고 그 안에 탄 사람들의 용기와 의지, 꿈이 돋보인다.



사실 올해 축제에서도 열기구 두 대가 고압선에 닿아 추락하며 이 일대 1000여 가구가 정전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였던 마지막 주말은 강한 바람과 비바람이 몰아쳐 비행이 취소되었다. 몇 십년 관록의 세계 최대 축제임에도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인 것이다.


이 많은 인파가 차갑고 어두운 새벽부터 들판에서 기다렸는데 6시가 되고, 7시가 되고, 동이 터도 비행이 시작되지 않은 날이었다. 전세계에서 몰린 취재진들이 무색하게 잠잠한 들판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아쉬워한 사람들은 관객보다도 일년을 기다리고 준비해 온 수천명의 파일럿과 스탭이었다. 그리고 행사를 직접 기획하고 진행해온 수많은 앨버커키 사람들이었다.


새벽부터 자원봉사하며 열정적으로 행사를 진행한 주민들의 얼굴에 안타까움과 실망이 배어났다. 많은 음식과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한 담당자들도 난감함이 역력했다.



때문에 파일럿과 스텝들은 굳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열기구를 띄워보려 계속해서 불을 지피고 풍선을 세웠다. 바람이 세면 거대한 풍선을 세우는 것 또한 쉽지 않지만, 바람이 조금이라도 잦아드는 순간 바로 이륙할 수 있도록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이었다.


맑은 날 아름다운 동화의 한 장면처럼 날아오른 열기구만 봤다면 미처 몰랐을 간절한 열망과 열정이었다. 


그래서인지 들판에 모인 수많은 관중들은 누구 하나 불평 없이 기쁜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 이 또한 흐리고 바람부는 날에만 목격할 수 있는 멋진 여정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 실패와 분투를 본 뒤에 맞이한 맑은 날의 대승천이었기에 더욱 값지고 아름다웠다.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소중한 순간을 마음에 담았다.


앨버커키,
아름답고 환상적인 비행에 담긴
인간의 뜨거운 열망과 꿈의 현장!




[앨버커키]
앨버커키는 뉴멕시코주의 가장 큰 도시로 맑은 날이 연중 310일 이상을 차지한다. 매년 10월 초 열기구 축제를 보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인파가 몰려들며, 인기 미드 <브레이킹 배드>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함께 관광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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