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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 Nov 17. 2017

외계인 마니아 모여라!

@ 로즈웰 Roswell


마니아가 된다는 건

초월적인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니 


덕후의 시대에 귀감이 되는 어느 덕후들의 도시에 가본다.



덕업이 일치되는 삶이 부러움을 사는 덕후의 시대다. 비슷한 단어가 마니아인데, 재미있는 건 마니아의 어원이 그리스어로 ‘광기’라는 것. 병적인 광기와는 다른,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로서 광기라고 한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 때로 일상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초월적인 힘을 준다고.


마니아 or 덕후


미 대륙의 작은 도시들은 어떤 한 분야의 마니아들을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거대한 땅에서 작은 도시들이 살아남는 비결인지도 모르겠다. 로즈웰이 그 중 하나다.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처럼 덩그러니 떠있는 로즈웰. 달리던 길을 통과해버리면 그대로 끝나버리는 작은 시골 도시다. 반경 2시간 거리에는 인적을 찾아보기 힘든 광야가 이어진다.


이 도시에 연간 20만명에 달하는 방문객이 찾는 이유는 단 하나. UFO 그리고 외계인 때문이다.


1947년, UFO가 불시착했다는 뉴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고전이 된 미드 <X파일>의 팬이라면 한번쯤 들어보고 상상해 봤을, 공상과학 마니아라면 인생에 한번쯤 꼭 가보고 싶은 성지가 바로 로즈웰이다.




1947년 7월 4일 밤, 로즈웰의 목장주인 브레즐은 굉음을 듣는다. 비행기 충돌소리 같았다. 5-6일, 그는 들판에서 UFO 잔해를 확인하고 곧장 마을 보안관에게 알린다. 7일, 로즈웰 공군이 현장을 방문해 잔해를 수거한다. 이 때 앰블런스가 수상한 사체를 싣고 가는 것이 목격된다. 8일, 로즈웰 공군은 UFO가 불시착했다고 공식 발표하고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그러나 다음날인 9일, 공군은 24시간만에 공식 발표를 번복, UFO가 아닌 기상관측 기구였고 목격된 사체는 더미였으며 특별한 것은 없다고 말을 바꾼다.



이것이 로즈웰 사건의 전말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보안관, 공군, 주민들의 증언이 이어지며 UFO의 신비감은 더해갔고, 워낙 다수의 목격자가 있는 상황에 공군이 공식 발표를 번복한 점이 호기심과 의혹을 증폭시켰다.



논란이 지속되자, 미 공국은 공식 수사 보고서까지 제출하며 사건 종결을 선언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여전히 뭔가 있다고 믿으며 수많은 외계인, UFO 괴담의 원천이 됐다.


심지어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 후보는 로즈웰 사건 및 외계인 파일 공개를 공약으로 내걸었을 정도.



나른하기 그지없는 시골 마을의 거리 한복판에는 도시의 존재 자체인 UFO 박물관이 있다. ‘그날’의 모든 것을 집대성해 놓은 결정체다.


그런데 박물관을 가득 채운 모든 것들의 면모를 찬찬히 보고 나면, 놀랍게도 그 어디에도 실체를 찾아볼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단지 당시에 뭔가를 보고 들었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 뿐이다.


판단은 보는 이의 몫으로 돌린다. 말그대로 '미확인' 비행체인 거다. 증언만으로 연간 수십만명이 찾는 박물관이 세상에 있다니. 


로즈웰 사건의 다양한 목격자 진술
공군이 UFO를 발견했다는 당시 언론 보도들
허위로 판명난 외계인 부검 동영상의 재현


타임라인을 따라 집대성해 놓은 UFO 목격담들은 너무나 진지해서 진짜 <X파일>의 한 꼭지를 연상시킨다. 놀랍도록 디테일한데 실체는 없고, 허무맹랑한데 진정성이 흘러 넘친다.


실체의 빈자리는 상상과 가공의 어설픈 모형들이 채우고 있다. 조악하다 못해 B급의 병맛 매력을 지녔다. 



사방이 드넓은 사막으로 둘러싸인 로즈웰. 사실, 그 텅 빈 하늘과 광야 때문에 인근에는 미사일 시험장과 미 공군기지가 3개나 포진해 있다. 훈련이 빈번하게 이어지는 지역이다. 게다가 사건이 있었던 1947년은 한창 냉전으로 치닫던 시대.


당시 공개할 수 없는 공군의 비밀 훈련 중 비행체가 추락해서 미확인 물체가 아닌 ‘확인해줄 수 없는 비행체’여서 생긴 해프닝이란 주장이 힘을 얻는다.


하지만 정말 무엇인가 있었다고 믿는 마니아들은 개의치 않는다. 로즈웰은 이미 그들을 빠져들게 만드는 실존 공간인 것이다. 로즈웰 역시 오늘도 진지하게 그 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렇게 이 도시는 광야에서 수십년간 살아남았다.





무언가의 마니아가 되는 것은 사막의 물처럼 삶의 강력한 오아시스가 될 수 있다. 거대한 대륙에서 작은 도시가 지속되는 힘이 되기도 하고, 한 사람의 삶을 지속시키는 힘이 되기도 한다. 강렬한 몰입은 그것이 비록 실체 없는 상상속의 무엇일지 언정 우리를 이 거대한 우주 속에 살게 한다.




[로즈웰]
뉴멕시코주 남동쪽에 위치한 인구 5만명의 작은 도시. 멕시코 국경에서 350km 떨어져 있다. 1947년, UFO가 추락했다는 뉴스가 보도되며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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