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여유가 넘쳐흐른다
여행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을 고르라면 언제일까. 너무 많아서 고르긴 당연 힘들다. 하지만, 지금을 말할 수 있다. 바로 아침이라고. 아침에 맞이하는 여행은 따스하다. 우리 힙스러운 시애틀 동네인 캐피톨 힐에서 지금 마지막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집 앞에 있는 작은 카페. 왜 여길 오늘 처음 왔을까.
여행 중 아침 시간을 즐기는 건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은 아니다. 특별한 자만이 아침을 즐길 수 있는데, 바로 여행에 적응한 자만이 가능하다. 최소한 나에게 한해서는 그렇다. 어느 여행지를 가나 아침을 너무 좋아한다. 특유의 얼리버드 성향 때문인지, 밤은 너무나 졸리고 아침은 정말 사랑스럽다. 카페에 햇살은 들어오고 라테는 너무 맛있고 음악마저 완벽하다. 이런 완벽한 아침. 여행지에서 맞이한다면 당신은 오늘 매우 특별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라.
여행자에게 여유가 있다는 건 어떤 뜻일까. 나에게는 여행자의 시차에 적응했다는 뜻이다. 더 이상 서울의 시간으로 살지 않고, 여행자의 시간대로 풍덩 뛰어 들어가 산다는 것. 나의 시차는 느리고 여유롭고 너무나 여행자스럽다. 시애틀의 아침은 어느 여행지의 아침만큼 사랑스럽고 반짝반짝 빛이 난다.
여행지에서 아침을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호텔 조식을 즐길 수도 나처럼 카페에 나와서 직접 즐길 수도 있다. 가장 좋아하는 건 당연히 카페에서 작은 베이커리와 함께 마시는 라테다. 어느 나라나 라테 아트는 아름답고 그 맛도 너무 좋다. 카페에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에서 보내는 아침 시간은 꼭 나만의 시차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느낌을 준다. 혼자 다니는 여행객이어서 더욱 이 시간이 소중한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겐 정해진 시차가 있다. 나라마다의 표준시간도 있고, 그 속에서 맞춰 살아간다. 하지만,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을 다 마치고 그 후에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면, 각자의 시차 속에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나처럼 여유를 즐기는 여행객도 있고, 일정에 맞춰 빠르게 돌아다니는 여행객도 있다. 어찌 됐건 누가 옳고 그름은 없다. 각자의 방법으로 마음껏 즐기는 것. 그것이 내가 가진 여행의 공식이자, 내가 살아가고 싶은 여행자와 일상 여행자의 시차다.
너무 바쁘게 살아가지 않기로 다짐하면서도 그 다짐을 금세 잊어버린다. 그렇게 차츰 나를 잃어간 적도 많다. 나에게 세상의 시차는 너무 벅찰 때가 있다.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을 생각했을 때, 이건 아닌데,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라고 생각한 적도 퍽 많다. 그럴 때면 나는 떠난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철저히 이방인이 되어 나를 돌아본다.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삶에 대한 리셋의 갈망이 필요할 때 나는 떠났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있다. 너무 행복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