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내가 주재원] #3. 해외 이사는 처음이야

어머니의 이사 철학

by 남산 Mar 15. 2025
아래로


“정리를 하지 말고 버리기만 해.”




 해외로 이삿짐을 보내는 일정을 확정했습니다. 첫째가 돌이 되기 전에 이사를 오고, 둘째가 태어나 첫 가족이 된 우리의 세 번째 집. 그간 신혼집 이후 두 번이나 이사를 하였지만 이사를 할 때면 여전히 스트레스와 긴장감이 생깁니다.  네 명의 가족이 되고 함께 겪어온 4년간의 짐들이 즐거운 기억들과 함께 집에 한가득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가고 짐을 정리할 시간이 되면, 함께한 기억보다는 쌓여있는 짐들과 정리가 안 된 옷들이 눈에 보이고 선뜻 어떻게 치워야 할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집을 방 3개, 부엌, 거실로 5개의 구역으로 나누고 정리를 해봅니다. 버릴 것은 있는지,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봅니다. 버릴 것을 버리고 보니 어질러진 서랍장과 옷장, 거실 바닥을 보게 됩니다. 버릴 것은 쓰레기통에 다 담고 분리수거를 합니다. 보내야 할 짐들을 다시 수납함에 개어 넣고, 버릴 것을 쓰레기 통에 분리하여 놓습니다. 친구 아이에게 줄 장난감과 옷들을 포장합니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거실 서랍장 하나만 정리하는 데도 아이들이 없는 시간만 쓰면 꼬박 하루입니다.


 이럴 땐 전문가에게 SOS를 보냅니다. 어머니입니다. 먼저 한 15년 전에 아버지가 인도로 주재원으로 나갔습니다. 40평대 집의 짐을 해외로 보낸 전문가의 손길입니다.


“미리 버릴 건 버리고 정리해라. 한 번에 다 못 한다. “


 간단합니다. 미리 버려라. 참 쉽죠? 살다 보면 가장 어려운 게 버리는 거라는 것을 회사 생활하면서도 느꼈는데 집에서도 어렴풋이 느끼던 게, 해외 이삿짐을 보내야 하니 더욱 또렷해집니다.


 또 다른 전문가인 해외이사 업체의 프로님에게 물어봅니다.


“미리 버릴 것만 버려두시면 이사가 훨씬 수월하죠!”


 마찬가지의 답입니다. 걱정이 된 어머니는 서울에 있는 주말 시간에 하루를 집에서 감사하게도 부엌 정리를 도와주셨습니다. 언젠가 먹으리라 다짐했던 냉동실에 쌓인 음식들, 냉장고 구석에서 요리재료로서 생명을 다한 야채들… 괜스레 냉장고만 청소할 때만 되면 지구에 죄인이 된 느낌으로 나를 자책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어머니께 우리 가족의 치부를 드러낸 것 같았습니다.


”정리할 생각 말고 그냥 버리기만 해라”


버릴 것은 쓰레기 봉투에 넣고, 다시 주변을 주섬주섬 정리하는 절 보며 어머니가 한 말씀하십니다.


“버릴 것만 버리고 어차피 거기 가면 다시 정리해야 하니까 정리는 하지 마”


 아차! 그랬습니다. 이사는 정리하는 것이 아닌, 버리는 일이었습니다. 짐을 싸고 보내고 내리는 일은 이삿짐 업체에서 다하니, 내가 해야 할 일은 이사 전과 이사 후에 1가지씩만 있습니다. 이사 전에는 잘 버리기, 이사 후에는 잘 정리하기. 저는 정리를 잘 해야하는 새 집에서의 일을 이사 가기 전부터 에너지를 많이 쏟고 있던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사라는 것이 참 가벼워집니다. 이때부터 대형 쓰레기봉투에 버릴 것들을 골라 넣으니 봉투가 3개가 나옵니다. 그다음 대충 쑤셔 넣습니다. 하하.


 상황에 따라 집중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이사 전에는 버리기, 이사 후에는 정리하기! 간단하게 정리가 됩니다. 생각이 다시 일에 빗대기에 이르렀습니다. 태생이 회사원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이직을 할 때도, 새로운 연인을 만날 때도 내가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이동을 할 때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됩니다. 이직이 확정되면 인수인계가 잘 이뤄져야 하는데, 떠나는 입장에서는 남은 사람에게 ‘잘 버리는’ 일입니다. 물론 이는 ‘잘 정리’도 되어야 하겠네요. 그리고 이직 후 새 직장에서는 내 포지셔닝을 잘해야 하겠지요.


 삶의 바꿈이 필요할 때 우선 잘 버리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아내가 주재원] #2. 아이들이 엄마를 찾지 않나요?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