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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주재원] #4. 자연스럽게 다가온 불안

5일 만에 공황 발작

by 남익 Mar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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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과 호찌민에 도착 후 1주일이 지났습니다. 아직 이삿짐이 오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침실 1개와 부엌/거실이 있는 레지던스 호텔에 묵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호텔 조식을 먹고, 이사 갈 집 주변에 있는 유치원으로 20여분 간 택시를 타고 갑니다.


 오늘 저는 해외 생활을 시작하고 있는 '불안'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주재원의 남편으로 휴직을 하고 가기에 복에 겨운 이야기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복에 겨운 저의 입장이지만 한국에서 겪지 않았던 ‘불특정 한 무엇인가의 불안'이 1주일 간 두 번 정도 저를 툭툭 건드려 당깁니다.


 불안함을 모르고 이때까지 살아왔다! 전 그런 줄 알았습니다. 불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지금과 같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왔던 시기는 30살이 되면서부터입니다.


 저의 뚜렷한 '불안'은 비행기 안에서 나타났습니다. 2년 정도 중남미 해외영업 담당자로서 잦은 출장으로 1년에 4개월은 해외에 있었습니다. 비행기 타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저는 귀국편인 멕시코시티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비행기에서 가벼운 '공황성' 불안증세가 시작되었습니다. 창가 좌석에  앞은 벽인 갑갑한 자리였습니다. 약 4시간 30분의 시간 동안 안데스에 오를 때 느꼈던 고산병처럼 가슴이 갑갑해지고 시야가 좁아집니다. 다행히 여행 전 구간에서 가장 짧은 구간이었고, 다음 로스앤젤레스에서 서울까지는 복도좌석으로 앉아 해당 증세는 없어졌습니다.


  처음 겪어본 불안장애 증세는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몸은 조금 비만기가 있어 아주 건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정신적으로는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자신이 있었던 이유입니다. 이후 좁은 공간은 되도록 피하게 되고, 비행기에서도 무조건 복도좌석만 앉습니다.


 1년에 한 번 정도 이러한 증상이 주기적으로 있습니다. 해외 생활을 시작하고 다시 이런 증세가 조금 더 잦아집니다. 첫 주말을 보내고 5일째인 월요일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밤 11시 30분에 잠에 들었는데, 잠시 눈을 떠보니 12:50입니다. 겨우 1시간을 잤네요. 낯선 잠자리, 아이들 숙면을 위해 암막 커튼을 쳐 한 치도 보이지 않는 공간, 그리고 살며시 떠오르는 내일은 어떤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것인가, 아이들과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들. 몰려오는 걱정과 불안이 만든 각성으로 잠은 더 멀어집니다. 한국에서는 찾은 방법이 굳이 잠이 안 오면 안 자면 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주변이 불편한 지금, 차라리 잠에 들고 싶었습니다. 가슴이 갑갑해지고, 이마와 손, 발에 땀이 납니다. 유튜브에서 본 대로 큰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합니다.


 제 한숨에 아내도 깨어납니다. 깊은 심호흡이 어느 순간 불안을 느끼고 외부로 전달하는 한숨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손을 잡아주고 왜 못 자는지 걱정해 주지만 사실 저는 이유를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내도 혼자서 스트레스를 받고 우리 가족을 위해 이겨내고 버티고 있는 중인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시간을 보내고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와 아이패드로 잠자기 전 스트레칭을 틀어서 20분 정도 합니다. 그리고 베트남 역사책을 읽습니다. 잠을 자기 위한 노력입니다. 그렇게 2시간 정도 지나니 이제 4시입니다. 다시 슬그머니 누워봅니다. 눈을 감자마자 온갖 안 좋은 상념들이 가득하지만 어느 순간 눈앞이 어두워지며 잠에 듭니다.


 그리고 7시에 일어났습니다. 잠을 잤다는 것에 안도합니다. 기분이 조금 상쾌해집니다. 점심시간부터 머리가 살짝 어지러운 것이 스트레스 때문인지, 적은 잠 때문인지 신체적 증상이 왔습니다. 그래도 기분은 상쾌합니다. 어제 왔던 불안한 생각은 가버리고 지금의 나만 생각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에 안도합니다.


 낯선 곳에서 시작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삶. 아는 사람도 아는 장소도 없는 곳에서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혼자 보내는 시간. 누구도 만나지 않고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는 그 시간들을 오롯이 받아내는 것에 두려움인가 합니다. 4년간 아버지 주재원 발령으로 인도에 계셨단 어머니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해외에서 주재원이나 사업을 하시는 분들의 가족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한국에서 타향에서 아니면 본인만의 낯선 공간에서 그 시간을 오롯이 받아낸, 받아내는 분들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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