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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지영 Jun 08. 2021

<신데렐라>, 기존 집단의 배타성과 '계모'의 탄생

착한 배타성 vs 나쁜 배타성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신데렐라>, '신데렐라'와 '왕자'보다 더 눈길이 가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신데렐라의 새엄마, '계모'이다. 


사실이전까지 크게 '계모'라는 캐릭터에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이 영화 속 새롭게 그려진 '계모'를 보면서, 어쩌면 이 '계모'라는 캐릭터가 지니고 있는 보편적이고 원형적인 속성-관계 지속의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 우리 모두와 닿아 있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 글에서 말하는 '계모'는 영화 속, 작품 속 계모 '캐릭터'의 형상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작품 속 캐릭터로서, 계모라는 존재가 갖는 속성, 그 캐릭터가 지니고 있는 원형적이고 보편적인 존재적 속성에 초점을 맞춘 글입니다. )


영화 <신데렐라>(2015) 속 계모의 첫 등장 


영화 속 계모가 처음 등장할 때, 이러한 나레이션이 나온다. 


그녀도 슬픔을 겪었지만 그 슬픔을 절대 보이지 않았죠.

따지고보면 그렇다. 사실 계모는 누구보다 슬퍼할 사람 중 하나이다. 원래 남편을 잃고, 남겨진 자식들과 함께 새로운 남편을 만나게 된다. 계모 또한 이별과 상실의 아픔을 겪고 난 직후이다. 그런데 계모는 절대 슬퍼보이지 않는다. 아직 어리고 연약해보이는 신데렐라는 참으로 가엽고 우리의 동정을 받아 마땅한 존재같으나, 남의 집에 들어오면서도 자기집 마냥 위풍당당한 계모는 어딘가 밉살스럽다. 이미 우리는 그녀의 첫 등장에서부터 그녀를 미워할 준비가 되어 있다! 


영화 속 나레이션은 이어 말한다. 


활달한 성격의 계모는 밝은 분위기로 집을 꾸미기로 했죠 


계모가 활달한 성격? 하긴, 이제 막 만난 새남편의 집에 새롭게 편입되면서, 자기집인 마냥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계모이지 않은가. 계모는 집을 꾸미고 사람들을 초대하여 성대한 파티를 연다. 자기 나름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 활달한 성격을 발휘한다. 


계모가 준비한 성대한 파티에서 빠져나와 따로 대화를 나누는 신데렐라와 그녀의 아버지 

북적북적한 파티가 적응이 되지 않은 신데렐라는 혼자 서재에서 일을 하고 있던 아버지를 찾아간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두 사람은 죽은 신데렐라의 엄마 이야기를 하게 된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신데렐라에게 아빠는 말한다.

“엄마도 이곳에 있어. 눈에 안보여도. 늘 우리 곁에 있어. 
엄마를 위해 이 집을 소중히 여겨야해. 


엄마 생각에 한껏 울적해진 신데렐라는 아빠에게 묻는다. 

“엄마가 보고 싶어요. 아빠는요“
“very much” 


신데렐라와 자신의 새남편(신데렐라 아버지)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된 계모 

그런데...

이러한 두 사람의 대화를 정말, 우연히 계모가 듣게 된다. 

영화 <신데렐라속 계모는 처음부터 나쁜 계모는 아니었다나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잘 살아보려고 했던 계모는 우연히 신데델라와 새남편이 하는 대화를 엿듣는다그리고 깨닫는다두 사람에게 항상 No.1은 죽은 신데렐라의 친어머니라는 것을자신은 평생 누군가의 자리를 대신 살아가야 하는 것뿐이라는 것을자신이 낄 자리가 없다는 것을그때 나쁜 계모'는 탄생한다 


영화 <신데렐라>는 이 활달했던 계모의 사연에 보다 관심을 기울인다. 이는 다른 <신데렐라> 이야기와의 중요한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후반부, 신데렐라가 왕자님의 파티에서 유리구두를 잃어버린 공주님이라는 사실을 눈치 챈 계모가 신데렐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장면이 있다.


신데렐라에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놓는 계모 
옛날 예적에 한 아름다운 처녀가 사랑으로 결혼을 했지. 
예쁜 두 딸도 낳고 행복하게 살았어. 
그런데 어느날 남편이, 사랑하는 남편이 죽었어. 
그 다음엔 딸들을 위해 결혼을 했지. 
그런데 그 남자도 죽어 버렸어. 
게다가 그 남편이 사랑한 전처 딸까지 떠안게 되었지. 


그렇다. 계모도 참으로 기구한 사연의 주인공이었다라는 사실을, 이 장면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된다. 

'아, 맞다. 당신도 힘들게 살아왔구나. 내색을 안해서 그렇지, 그 내색을 살피지 않아서 그렇지, 당신도 사실은 위로가 필요했겠군. 어느 시점에서는...' 


계모라는 캐릭터는기존의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던 관계 속으로 새롭게 편입'되어 끼어 들어가야 하는 존재이다.  


자신이 원래 속해 있던 공고했던 관계가 깨어지고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그 새로운 관계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미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던단단한 것이다그 첫 시작부터 계모에게는 일종의 불리한"출발선이 마련되는 셈이다. 그러니 관계의 지속 문제에서 엄청난 불안감" 을 내재할 수 밖에 없는그러한  존재적 속성을 숙명적으로 지니게 되는 캐릭터이다.  


계모의 심정은 어땠을까계모는 불안하지 않았을까낯선 환경에 처음 적응하는 입장에서남편은 집에 자주 없다.(수많은 계모 이야기에서, 계모의 새남편은 텍스트 상에서 대부분 사라져있다. 존재감이 없다.) 그녀가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인간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계모의 불안감계모의 원통함에 대해서는 동정해주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초록색은 노란색이 되기 힘들다.(<신데렐라> 속 계모가 두 사람 대화 통해 깨달은 점 

그것은 기존의 공고한 관계가 유지하는 배타성의 영향이 있다

그 배타성에 맞서 초록색이 내뱉는 배타성은 악인으로 평가받고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쉽지만기존 관계의 배타성은그러니까 노란색의 배타성은 일종의 '권력'으로 작용한다. 원래 자리잡고 있던 기존 관계 속 배타성은새로운 관계 변화에 있어서 하나의 '권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초록색에게 "너는 진정한 노란색이 될 수 없어"라고 처음부터 규정지으면서, 동시에 "넌 왜 노란색이 되지 않니?" 라고 탓하는?



계모는 새로운 관계 속에서 자기 자리를 잡기 위해 '배타성'을 발휘한다이것이 계모가 가진 '악인'의 면모로 나타난다. 그런데 영화 속 신데렐라-아버지 대화에 내재되어 있는 그들만의 공고함, 들만의 배타성은 악인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왜? 내부자니까. 


계모가 등장하는 이야기에서보통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아이'즉 '전처 자식'에게만 연민의 눈길이 간다. 남편을 잃고남은 자식과 살아오다가 새 남편을 얻게 된 '계모'의 사정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그러는 동안 계모는 어느새 악인이 되어 있다


계모는 전처자식과 친자식을 차별하며 배타적으로 관계를 맺는다계모가 배타적으로 관계를 맺게 된 기저에는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다. 낯선 상대와 새롭게 관계를 맺을 때 으레 찾아오게 되는또는 자신이 지속하고 싶은 관계를 위협하는 제3자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의 불안감말이다계모의 악행은 자신의 불안감을 달래기 위한또는 감추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계모의 악행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나 사실 엄청 불안했기 때문에나도 너무 힘들어서 널 괴롭힐 수 밖에 없었어."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결국 처벌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중요한 것은계모의 악행 뒤에 숨어 있는, “착한(?) 배타성"이다


기존 관계가 더 선하고더 좋은 것이라고 여기는오랫동안 원래 알았던 관계가 새로 맺게 되는 관계보다 당연히 더 나은 것이라고 쉽게 믿어버리는그 배타성 또한 눈에 보이지 않지만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내부자'의 시각으로 계모를 바라보기에어지간해서 계모가 잘 되는 이야기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역시 넌 나쁠 줄 알았어"가 증명되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되기 쉽다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역시 새로 들어온 너, 굴러들어온 너가 나쁜 짓 할 줄 알았지. 
넌 벌 받는게 당연하지..” 그런 식의….


우리는 이미 계모를 악인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처음부터 알게 모르게 하고 있다. 

우리는 기존 관계 속으로 새롭게 편입되는 인물을 처음부터 악인으로 몰고갈 준비를 알게 모르게 하고 있을 지 모른다. 


기존의 공고한 관계에 새로 들어온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볼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계모'는 그야말로 최적의 캐릭터 형상이다마음껏 악인으로 몰고갈 수 있으니죄책감없이


'절대적 선'이라고 믿고 있는 나의 배타성은 감춘 채상대의 배타성만 마음껏 비난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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