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릴 수도 있고 녹일 수도 있는 힘
지금 4살이 된 딸아이의 완소 패션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 바로 '엘사'다!
2살 이후 텔레비젼에서 주구장창 방영된 <겨울왕국 1>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지금까지도 엘사는 우리 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중요 인물이 되었다!
딸이 겨울왕국을 보는 동안, 나도 자연스럽게 이 영화를 몇 십번은 보게 되었다. (물론 온전히 집중하기는 어려우나) 그러다 문득, 이 <겨울왕국>은, '자녀를 길러내는,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의 두 가지 얼굴'을 굉장히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의 올바른 태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직감적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엘사는 아주 갑작스럽게 한 나라의 여왕이 된다. 방안에만 갇혀 지내다가, 한순간에 안나를 포함하여 아렌델 사람들 모두의 '가장'이 되어버린다.
그녀가 이끌고 돌봐주어야 하는 곳이 바로 아렌델이다.
초반 엘사는 진정으로 상대를 지켜주고, 사랑할 수 있는 자신만의 법칙을 세우는데 미숙한 모습을 보인다. 갑자기 부모의 위치에 놓이게 된 엘사는 상대를 위하고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오히려 모든 것을 얼려버리고 만다.
그래서 엘사가 부모의 위치에서 보여주는 능력의 무섭고 차가운 측면만이 강조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진정으로 한 나라를 이끌 수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줄 수도 없다. (계속 엘사는 자신은 안나를 지켜 주기 위해 떠난다고 강조하지만, 진정으로 안나를 지키는 법을 모른다)
엘사는 자신의 힘으로 많은 것들을 새롭게 만들어 낸다. 그야말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오로지 “나의 법칙"으로 운영되는, 나만의 견고한 얼음성!
그런데 자신의 힘이, 자기 나름대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사용한 힘이, 자신의 원래 의도와는 반대로, 모든 것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얼음 괴물'은 엘사가 가진 '차갑고 무서운 부모'로서의 모습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안나를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아렌델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보여준 모습이 바로 이 '얼음괴물'이다.
'널 진정 사랑하니까, 널 지켜주기 위해' 라는 이유로, 자기 힘을 발휘하여 만든 괴물이다.
나의 법칙을 내세워서, 그 상대방을 자기 방식대로 ‘양육'하려고 하는 서사의 주체는, 무서운 얼음괴물의 모습을 하고 나타날 수도 있다. “이것이 너를 위하는 길이다"라고 하면서.
그런데 그 법칙은 상대방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치게' 만들 수 있다.
엘사를 찾아간 안나는 "아렌델이 다 얼었으니 언니가 다시 되돌려 놓아줘"라고 한다.
그러자 엘사는 "나는 할 줄 몰라"라고 한다. 그리고 자기가 알지 못한 사이에, 자기 손으로 안나를 죽음으로 몰고간다.
엘사는 상대를 보호하려던 자신의 행동이 오히려 상대를 죽음으로 몰고가고, 사랑하던 모든 것을 꽁꽁 얼려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어떻게 해야 다시 “생명"을 불러올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자신의 능력으로 꽁꽁 “얼리는 것"만 할 수 있었지, 어떻게 해야 “그 얼려진 것에 다시 온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가"는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다.
안나가 자기 몸을 희생하여 엘사를 구하려는 “진짜 사랑"을 경험한 뒤, 엘사는 “어떻게 해야 얼린 것을 다시 녹일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차가운 얼음에 온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내가 죽인 것에 다시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안나의 도움으로, 엘사는 자신이 가진 힘에 반드시 포함되었어야 했던 요소, 자기 힘을 더 강력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요소를 깨닫는다. 바로 “사랑“!!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를 양육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사람에 대해서 또는 좀더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 잘 살게 하려는, 살리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과 관련된다.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 절대적인 배려를 추구’하려는 속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 양육의 중요한 자질일 것이다!
<겨울왕국>은 엘사가 수준 높은 “양육”을 할 수 있는 자질을 얻게 되는 과정이 핵심이 되는 서사라고 이해할 수 있다. '아렌델을 통치하는 여왕' 엘사에게 당면한 과제는 “어떻게 해야 이 나라를 잘 이끌까. 어떻게 해야 내 나라 안에 사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을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따뜻해진 아렌델에서 여전히 몸이 녹지 않은 눈사람, '올라프'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얼음이 있어야만, 차가운 곳에 있어야만 눈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곳에서도 눈사람은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얼음이 녹아 다시 따뜻해진 아렌델에서도, 올라프는 여전히 녹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이 역시 엘사의 힘에서 나온 것이다.
올라프가 녹지 않고 따뜻한 곳에서 살아가는 것, 차가움과 사랑이 동시에 존재할 때,
얼릴 수도 있지만 녹일 수 있는 힘이 동시에 존재할 때,
비로소 진정한 ‘나의 법칙'이 바로 서고, 수준 높은 ‘양육’이 가능하다는 것을 <겨울왕국>을 통해 짚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