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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지영 Jun 10. 2021

<스위트홈>, 괴물화의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이유

내 흐르는 코피를 감춰라!

넷플릭스 최고 히트작 중 하나, <스위트홈>.

내가 평상시 선호하는 장르(잔인함+ 폭력성+공포/ 크리쳐물)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스위트홈>에 열광하나"하는 궁금증에서 올해 초 정주행을 시작했고, 그 여정은 2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편당 50분 정도의 분량이었지만, 체감상 10~20분 정도 되는 것처럼, 그야말로 '순삭'이었다.

이렇게  평상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장르에 푹 빠진 것도 참 드문 체험이다.


<스위트홈>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전제들!


'정체불명의 원인으로(욕망으로 추정) 괴물화가 되가는 사람들'
누가, 왜 괴물이 되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욕망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지만, 그 욕망이라는 것도 비구체적이다. 욕망이 없는자가 있겠는가.


절망, 좌절을 심하게 겪은 사람이 괴물이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작품 속에서 정말 멀쩡해보이는 사람도, 차분하고 의롭고 냉정해 보이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 갑자기 괴물이 된다. 아무 이유없이. 아무 맥락없이. 허무하게.
(그러고보니, 긴급속보를 발표하던 대통령도 생방송 중에 갑자기 괴물이 된다.)


<스위트홈> 속 괴물들 1


<스위트홈> 속 괴물들 2

결국, <스위트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설정, 세계관은 이것이다.


괴물이 되는 자와 여전히 사람으로 남은자 간의 '차이점'이 없다.
모두가 '잠재적 괴물'이다. 누구 한 사람 빠지지 않고. 너도. 나도.

어떤 블로그 리뷰에서, <괴물화가 되는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것이 이 작품의 논리적 허점>이라고 쓴 것을 보았다.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괴물화가 되는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괴물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나만은 절대 "괴물"이 안될 것이라 자신할 수 있는가.


별거 아닌 일에도, '나 지금 피곤하다, 나 지금 힘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괴물같은 모습이 불쑥 불쑥 튀어 나올 때가 있다.


특히 아이를 키우며 더 그렇다.

나에게도 "나쁜 어른, 나쁜 부모"의 모습이 종종 튀어나온다.

나도 모르게 아이를 대하면서 "괴물"같은 모습이 되는 순간이 있다.

별거 아닌 일에 소리지르고 화를 내며 윽박지른다. 내가 힘들다는 핑계로.


뉴스 속 괴물 같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저럴 수 있어" 라고 욕을 하면서,

나와 그 사람들을 구분지으면서, '에이, 나는 그 정도는 아니야' 하면서,

나는 괴물이 아닌 것처럼, 나는 마치 "성숙한 어른"인 것처럼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스위트홈> 속 '괴물'보다 더 악질인 '인간들'

<스위트홈>에도, 괴물보다 더 괴물같은, 진짜 악질 인간들이 등장한다.

여전히 사람의 탈을 쓰고 있으나 그 속은 더이상 사람이 아닌 괴물들.


<스위트홈>에 내가 끌렸던 이유를 이해했다.

원인불명의 괴물화에 수긍한 이유.


'나'도 언제든 '괴물화'가 될 수 있으니까.


<스위트홈> 메인 주인공 '현수'는 '특수감염인'으로 분리된다. 괴물이 되긴 되었는데, 다른 괴물과는 달리 여전히 사람의 본성이 남아 있는 존재! 괴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괴물의 무시무시한 힘사람의 자제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특수감염인.


나 역시 특수감염인이 아닌가.
코피를 쏟고 있는 특수감염인 '현수'


현수는 괴물이 되기 기전 폭포수 같은 피를 쏟는다.

'코피'는 중요한 상징이다. 코피가 마구마구 쏟아지는 것은 그 사람이 '괴물화'가 되고 있다는 전조증상이다. 일종의 신호다. '너 곧 괴물된다!'


쏟아지는 코피를 보며 자신이 괴물화가 되고 있음에 충격을 받은 <스위트홈> 속 등장인물

특수감염인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괴물이 될 때 '코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스위트홈> 속에서 주인공 현수가 '특수감염인'인 것을 알게 된 주민들이, 현수를 방출할 것인지 남길 것인지 '투표'하는 장면은 참 의미심장하다.


현수를 방출할지 말지 투표하는 생존자 주민들


특수감염인 현수를 추방할 것인가 우리와 함께 지내게 할 것인가.


무서워서 당연히 현수를 방출시키자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았으나, 그 결과는 의외였다.

팽팽한 접전! 추방시키자는 사람들, 남기자는 사람들이 반으로 나뉜다.


다들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다.

"나도 언제든지 괴물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괴물은 무섭고 내쫓고 싶지만, 한편으로 그 내쫓겨지는 것이 언제든 내가 될 수도 있으니,

쉽게 내쫓지도 못하는 것이다.


누군가 갑자기 폭포수 같은 코피를 쏟아내면, 주변 사람들은 '저 사람도 괴물화가 되고 있군!'을 알아채고 겁을 먹겠지만, 사실 우리 모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코피'를 쏟아내고 있는 중일지 모른다.


<스위트 홈> 살아남은 주민들은 괴물화가 되고 안되고의 여부를 떠나, 모두 자기만의 치부를, 자기만의 약점을, 자기만의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자국을 남긴다. 코피처럼 당장에 눈에 확 드러나는 자국이 아니더라도, 그 어떤 자국을 남기고야 만다.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가하거나, 상대방에게 양보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 하거나, 상대를 근거없이 의심하고 비방하는 등의 모습들..)


그 코피 만큼이나 빨갛고, 선명하고, 무섭고, 자국이 강하게 남아 여간해서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무언가를, 밖으로 쏟아내면서 그것이 괴물화의 전조 증상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일 수도.

나는 괴물이 아니라고, 괴물과 다르다고,

괴물과 나를 구분지으며, 내 코피를 슬쩍 슬쩍 닦아내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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