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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화 Nov 14. 2024

1개 국어 구사 가능


이 글로벌 시대에 아직도 모국어밖에 모르는 사람?

바로 나다.

전 세계가 하나라는데 나는 지독히도 한글을 사랑했다.

변명을 해보자면, 국문과 시절 졸업반에 바로 방송작가로 취직했으니 영어의 필요성을 느껴보지 못했다.

사실 토익, 토플이 뭔지 조차 모른다. 대학 시절 국문과 교수님들은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부끄러움이 있다면 ‘국문과 출신이라 영어 못해요’ 라는 말은 어디 가서 하지 말길.


아니 그런데 전공 불문하고 내 인생에서 영어가 그냥 필요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면서 영어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았으니

행운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런 내가 남의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살게 됐다.

멀고도 낯선 이스탄불이란 곳에서.




이스탄불을 겪어보니 유명 관광지의 상점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 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생활이다 보니 달랐다.

아파트 단지의 경비실을 비롯, 동네 작은 상점, 식당, 마트, 세탁소 등 많은 곳에서 영어 소통이 안 됐다. 나도 못하고 그들도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안84처럼 나는 한국말, 너는 너네말 써도 어찌어찌 의사소통이 되기는 한다.

그런데 그것도 기안이 하니까 재미있지, 내가 손짓발짓 하고 오면 자괴감에 시달렸다.


내가 살쪘을 때 누가 ‘되지?’ 라는 말만 해도 움찔하듯, 내가 어버버 하고 있을 때 누가 한숨이라도 쉬면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토익, 토플은 고사하고 초등부터 고등까지 최소 7년 이상은 영어 공부를 했는데 그게 입 밖으로 안 나오는 것도 답답한 노릇이었다.

물론 해외여행을 안 가본 것도 아니지만 생활해 보니 내게 이건 다른 문제였다. 내가 말하는 것에 대해 어떤 강박이 있나 하는 자각도 처음 들었다.

제대로 그들의 언어로 한번 말해 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그래서 터키어 공부를 시작했다.


‘메르하바’ 라는 인사말 다음으로 내가 외운 단어는 ‘야반즈’.

외국인, 이라는 뜻이다. ‘야반도주’라는 말을 연상케 하는 이 ‘야반즈’라는 말을 발음할 때면,

신기하게도 외국인이란 뜻과 찰떡같이 연결된다. 언어란 참 야릇하다.

그렇게 모국어 한길만 파던 내가 터키어를 다 배운다. 나이 사십에 처음 접하는 외국 말을 배운다는 게 재미는 있다.

물론 뇌가 굳어서 입력이 잘 안 되는 단점은 별 것 아니다.


그렇게 터키어학원에서 월화수목금 4교시씩 꼬박꼬박 수험생 모드로 두 달을 보냈다.

단기 속성으로 꾸역꾸역 머릿속에 집어넣은 결과 입을 뗄 듯도 한데. 이 외국어라는 것이 마음처럼 입으로 술술 나오질 않는다.


더구나 내가 ‘이 말을 해봐야지’ 하고 마음속으로 준비하면 아무도 나한테 말을 안 건다.

얄궂게도 꼭 방심하고 있을 때 누가 말을 건다.

용기 내어 ‘메르하바~’ 하면 곧장 ‘오! 너 터키어 할 줄 아네?’ 하며 대화가 시작된다.

일단 제대로 알아듣기라도 하고픈데 말이 너무 빠르다. 현지인이 내게 와서 한바탕 랩을 하면 난 비트라도 줘야 할 것 같다.

아, 도저히 터키어로는 안 되겠다, 그냥 영어로 하자, 라고 생각하는 순간 영어와 터키어의 어순이 머릿속에서 뒤섞인다. 

이렇게 터키어를 공부하는 난 3개 국어가 아닌 돌연 1개 국어 구사자가 다. 즉, 백치 아다다가 됐다는 말이다.


결국 모든 대화는 ‘빌미요룸 (나는 모른다)’ 으로 끝이 난다. 유쾌한 그들이 웃으며 받아친다.

‘아니 너, 터키어 할 줄 아는데 왜 모른다고 하니’ 그럼 난 ‘고마워…’ 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인생 살면서 ‘모른다’ 라는 말을 이렇게 많이 해본 적이 있었던가. 이스탄불에 와서 새삼 겸손해지는 것 같다.

오늘은 머릿속에 있는 문장이 하나 더 입 밖으로 나오길, 야반즈는 기대를 품어 본다. 인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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