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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화 Nov 11. 2024

피워도 엔간히 피워야지요


튀르키예에 일 년 남짓 사는 동안

나는 이곳을 사랑하게 됐다.


학생 시절 사회과부도에서나 봤던

보스포루스, 지중해, 흑해, 마르마라해를 질리도록 볼 수 있는 곳.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보스포루스를 횡단하는 페리가

그냥 평범한 교통수단인 이곳.


골목골목 다닐 때마다

‘이런 모습도 있었구나.’

늘 새로움을 드러내는 이스탄불은

정말이지 천의 얼굴을 가졌다.

익숙한 아시아의 쌈박하게 반듯한 모습과

이국적인 유럽의 고풍을 구석구석 지닌 곳.


날씨는 또 어떤가,

인샬라!

신의 축복을 받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봄, 가을 아침엔 창문을 열면

‘와! 나가자!!’ 라는 말이 절로 나오고


불볕더위에 지치는 한여름에도

지중해성 기후 덕에 습하지가 않아

바람 속에 있으면 어느새 시원하다.

열대야 걱정도 없다.


겨울엔 비가 많이 내리지만

그다지 춥지 않아 롱패딩은 꺼낼 일도 없다.


하지만 이토록 사랑스런 튀르키예에서

견디기 힘든 부분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담배다.


‘에이, 뭘 담배 가지고’ 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실은 이 글을 쓰면서도 발행하기가 조심스러워진다.

튀르키예는 내가 지금 사는 곳이고, 앞서 말했듯

나는 튀르키예를 보통 좋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점을 말하기엔 장점이 너무나 많은 곳이기에.


그런데 이 담배 문제가 조금, 상상을 초월한다.

담배 못 피우다 죽은 귀신이 들린 것처럼 담배들을 피운다.


카페나 식당의 테이블에는 당연하게 재떨이가 놓여있다.

‘나라에서 흡연을 권고하나?’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든다.


비흡연자에 대한 배려가 일 퍼센트도 없는 것은 당연하다.

아니, ‘배려가 없다’는 표현도 적절치 않다.


‘이 세상에 비흡연자가 있니?’ 라고 말하는 듯

‘담배는 기호식품일 뿐이야.’ 라고 말하는 듯

당당하게 연기를 뿜어댄다.


물론 우리나라도 아빠들이 집안에서 당연하게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 있었다.

어른들 말씀으로 옛날엔 비행기에서도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옛날’ 이야기지

지금 한국은 금연을 운동 버금가게 권장한다.

그래서 애연가들은 슬퍼졌지만

우리의 폐는 한층 건강해졌고 도시는 한결 쾌적해졌다 믿는다.

 

이스탄불에 놀러 온 친정 부모님은

연기가 자욱한 카페 테라스에 앉아 말씀하셨다.


“아이고, 이 사람들 폐가 남아나나?”

“콧구멍이 커서 연기 배출이 잘 되나 봐.” 

(그건 아닐 겁니다...)


콧구멍이 크든 폐가 크든

다 자란 어른이야 자기가 알아서 한다지만.


간접흡연의 공포에 대해 철저히 교육된 한국인인 난

아이들 얼굴에 뿜어대는 담배 연기만큼은 참기 힘들다.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가는, 심지어

유모차를 끌고 가는 부모들의 흡연은 심란하다.




며칠 전 초등학교 정문 앞이었다.

한 아줌마가 두툼한 뭔가를 입에 물고 있다.

응? 저렇게 두꺼운 담배, 저게 뭐더라?

옛날 영화 ‘대부’에서 마피아들이 피던 그 ‘시가’ 같았다.

학교 앞에서 엄마인지 ‘갓파더’인지 모를 분이 

자신의 아이를 기다리며

참 기깔나게 시가를 피운다.


아이를 만나도 당연히 담배를 끄지 않는다.

아이와 나란히 걸으며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기를 뿜어댄다.


이쯤 되면

내가 비정상인지 저들이 비정상인지 헷갈리는 것이다.


오늘도 조그마한 아이를 가운데 앉혀놓고

양쪽에 서서 담배를 피워대는 부모를 보았다.


나는 그들 옆을 지나며  

‘한국말’로 공손히 속삭였다.


“엔간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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