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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화 Nov 04. 2024

아주그냥 시원시원한 여자들


엄마가 말했다.


"이스탄불은 다른 것보다 여자들이

 아주그냥 시원시원해서 좋다!"


어떤 면이 그래 보이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말했다.


"여자들이 브라자만 입고 돌아다니잖니?"


아, 그건 '브라자'가 아닌 나도 자주 입는 '크롭탑'이라고 알려줬다. 하지만 엄마가 말하길


"네가 입은건 반팔티셔츠인데 길이가 짧은 옷이고,

여기 여자들이 입은건 딱 브라자야"


그러고 보니 스포츠 브라에 바지나 치마를 입은 여자들이 아주 많다.


엄마는 이스탄불 오면 여자들이 다 히잡 쓰고 가리고 다닐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전혀 아니고 다들 자유로워서 보는 엄마가 다 산뜻하다는 것이다.


처녀 적 미니스커트 입고 나갔다가

할아버지한테 머리카락을 잘렸던 엄마로서는

그런 '복장 자유'가 무척 부러웠나 보다.


민소매를 입으면 꼭 셔츠나 카디건을 걸치는 내게도


"쓰잘데기 없이 이런 걸 왜 걸쳐?

 너도 그냥 시원하게 벗고 다녀!"


"왜 이래? 내 팔뚝 보고 말해 엄마"


"야, 네 두배는 되는 팔뚝도 다 내놓고 다니더라.

 다들 브라자 입고 다니는데

 지금이 뭐, 조선시대야?"


"적당히 하셔..."


여기서 살짝 더 나간 것은 안탈리아의 해변에서였다.

몸매가 어떻든지 간에 거의들 비키니 차림인데

하의가 정말이지 손바닥 만하다.

엄마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여기 수영복은 궁뎅이가 다 보이네?"


"엄마, 제발 사람들 좀 그만 봐.

 외국 사람들은 남 신경 안 써. 쳐다보지도 않고."


"안 쳐다보긴 무슨.

 저 사람들도 눈이 성한데 안 보긴 뭘 안봐?

 엄만 사람 구경이 제일 재밌네"


그래도 여기는 아직 튀르키예.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유라시아'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튀르키예는

노출수위가 기막히게 적당하다.


여성의 노출을 '볼거리'로 여기면 안되겠지만

내 눈이 성한 걸 어쩌겠는가.




그리스에서 겪은 일이다.


그리스 해변에서 나는 난생처음 상의를 탈의한 채 돌아다니는 여자를 봤다.


남편한테 물었다.

"봤어?"

 

그가 말했다.

"난 못보겠다"


봤네.


내가 물었다.

"뭔 일이래?"


남편이 말했다.

"유럽이잖아.

그냥 우리가 저쪽 보지 말자."


남편은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나만 유난이라고 했다. 아니 본인은 좋은 구경 났으니 나쁠 거 없지만,

여자인 내가 정작 불편해졌다.


옛날에 유럽 배낭여행 갔을 때 니스 해변에서

비키니를 풀고 엎드려 태닝하는 여자들은 봤다.

뭐 그 정도는, 영화에도 흔히 등장하니까

놀랍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여성은 상의가 훌러덩인 채로

우리 앞을 뛰어다니고, 수영도 하고, 바닷물을 가슴에 끼얹기도 하며 아주 난리가 났다.


여성의 자유로운 모습을 보는데

왜 남자만 좋고 여자는 불편하지?

묘하게 손해 보는 기분이었다.


친구들에게 말했더니 반응이 가지각색이다.

 친구는 거기가 어디냐며 말했다.


"구경 한번 가야겠는데?"


한 친구는 자긴 절대 그 자리에 못 있는단다.


"나는 유교걸이라 그런 상황 못 견뎌."


멜로와 포르노가 한 끗 차이 이듯이

유럽의 자유로운 여성 분들도

수위조절을 좀 해주면 좋겠다, 라는 건

촌스러운 한국 아줌마의

너무 큰 바람이지.


그들의 세상에서 이방인인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가면 될 것을.


유럽 해변에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개인주의를 학습하는 게

더 빠를 것이다.


그녀들의 가슴이나 궁뎅이를 차치하고도

지중해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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