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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화 Oct 28. 2024

묘비명 ‘어부 가족’


튀르키예 사람들은 가족을 중시한다.

그 모습이 내 생각엔 한국하고 닮았다.


처음에 이스탄불 와서

공증받을 서류가 너무너무 많았다.

어딜 가나 뭘 신청하기 위한 서류 작성이라는 건 인적사항 기재가 필수인데, 이런저런 서류를 쓰다 보니 특이한 점이 있었다.

보통 성인이라면 내 이름과 배우자, 자녀의 이름을 쓰면 끝이다.

그런데 여기는 성인인 내 부모의 이름까지 쓰란다.

부모가 세상을 뜬 경우에도 부모의 이름을 꼭 쓰라고 한다.

참 오랜만에 내 아버지, 어머니의 성명을 많은 곳에 써내며 느꼈다.

종잇장 한 장에 스미는 가족의 무게를.


주말에 공원으로 피크닉을 나가도

유난히 가족단위가 많다.

풍선을 달아놓고 파티 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꼬마의 생일파티다.

한국 같음 주인공인 아이의 친구들만 초대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파티 피플 연령대가 다양하다.

서로 부르는 소리를 들어보니


"안네~" (= 엄마)

"바바~" (= 아빠)

"안네 안네~" (= 외할머니)

"바바 안네~" (= 친할머니)

"암자~" (= 이모부)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까지 다 나왔나 보다.

최소 열 명은 넘는 이런 대가족이 종종 보인다.

 주방을 옮겨온 듯 유리잔, 찻주전자까지 들고와

바구니에 찰랑찰랑 부딪쳐가며 티타임을 즐긴다.

보고있으면 절로 미소 짓게 되는 풍경이다.




며칠 전 길을 걷다가 공동묘지를 봤다.

뚫린 공간에 자연스레 묘지가 있는 것을 몇 번 봐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날따라 묘비명이 눈에 들어왔다.


묘비에 하나같이 ‘aile’라는 단어가 있는 것이었다. (aile = 가족)

자기 이름만 달랑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어부 가족’이라고 쓰여 있는 묘비도 있었다.

어부 가족... 어부 가족이라니,

왜 괜히 감동적이지?

갱년기인가?


나는 귀신들린 사람처럼 공동묘지를 걸으며

온통 누구 가족, 누구 가족이라고 적힌

남의 묘비명을 한참 들여다봤다.

그러고 있자니 가족 생각에 찡해졌다.


인생은 영원하지 않다.

나보다 소중한 건 없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것은 있다.


한창 이런 슬로건이 많이 보이던 때가 있었다.


‘나를 사랑하자’

‘나 자신을 찾자’ 이런 류의 문구들.


물론 좋은 말이고 그래야 하기도 하지만,


다들 나! 나 자신! 을 외칠 때면

되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만 위해서 살면 그게 좋은가?’


그렇다고 내가 이타적인 인간은 결코 아니다. 희생할 줄 아는 사람도 못 된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지만 희한하게 나 자신을 사랑한다.

아들이 반찬투정 하면 할머니도 안했던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지구 저 편에는 먹을 게 없어서 니 몸의 반만 한 친구들이 수두룩 빽빽한 거 모르지?"


그래놓고 내가 먹고싶을 땐 콧노래를 부르며 만든다.

'어휴, 나같이 이기적인 것도 엄마라고...'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내 위주다.  

엄밀히 보면 잘난 건 없는데 자존감도 높은 것 같다.


이런 나도 힘이 안 날 때가 있다.

생을 견디지 못할 것 같고, 다시 못 웃을 것 같고, 주저앉아 일어서지 못할 것만 같은 때.

그럴 때는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안 다.


‘한 번 사는 인생, 뭘 할때 나 말고 가족들 위해서 하면 안되나?’


물론 이것도 나이 들어서 얘기지 젊을 땐

가족의 관심이 그냥 싫을 수 있겠다.

행복한 소리 하고 앉았네, 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최고의 나무만 있는 숲은 없다.

내 가족이 최악이었던 것 같아도

가만 생각해보면, 아닐 것이다.


내가 절실히 필요로 할 때 곁에 없었던 가족이라도,

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 줄기를 까다가 까맣게 물든 할머니 손끝, 우리가 탄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던 할아버지,

아플 때 밤새 등을 쓸어주던 엄마 손길, 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날 뒤에서 달리던 아빠 발소리,

가을 들판에서 잠자리를 잡아주던 형, 동생의 출산준비물 목록을 만들어주던 언니의 예쁜 손글씨,

잠든 아이의 정수리에서 나는 과자냄새 같은 것.


머리를 쥐어짜도

이런 아름다운 장면은 없다면...


술취해  이름 큰소리로 부르며 들어오다 엄마한테 쥐잡듯이 잡히던 아빠, 한 번만 더 엄마 찾으며 울면 입을 꿰매어버린다고 겁주던 할머니 (반짇고리 찾으러가는 시늉까지 하셔야 진짜),

다음날 입으려고 정성스레 다려서 걸어놓은 옷을 입고 튄 동생, 놀자고 쫓아오는 동생을 보고 친구랑 미친듯이 도망가던 형, 몰래 유튜브 보다가 방문 여는 소리에 자는 척하는 아들의 신들린 연기력.


이런 것도 없으면 그냥,


핸드폰 부재중에 찍혀있던

'아버지' 세 글자, 혹은


“우리 딸~ 하고 부르던

그의 익숙한 목소리나 미소 같은 것.


내가 가족이라 부르는 사람과의 따듯한 한 순간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 말고, 그들을 위해서 한다.


엄마를 위해서, 아빠를 위해서 한번 더 힘내고

언니를 위해서, 형을 위해서 한번 더 웃고

할머니를 위해서, 할아버지를 위해서 한번 더 견뎌내고

딸을 위해서, 아들을 위해서 한번 더 일어나고.


나 자신으로만 섰을 때보단 더 힘이 실린다.


그래서 내가 못 해낼 것 같을 때는 오히려

나를 위해서 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서 한다.


가족의 무게가 때론 버거워도

그 무게로 내가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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