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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화 Oct 31. 2024

코리안 스시 '킴-밥' 플리즈


"김천에서 김밥 축제가 열렸대."

남편이 말했다.


“응? ‘김밥천국’에서?”


“아니 그 ‘김.천’ 말고 진짜 김천!”


“아, 경북 김천?”


“응, ‘김밥’ 부른 자두 알지? 초대가수로 불렀나봐.”


“대박. 연결성 미쳤다!”


축제 기획자님 완전 내 스타일인데?

한국에 있었으면 무조건 갔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폭발적인 인기였던가 보다.

‘김밥 없는 김밥 축제’라고 비난 글이 많이 보인다.

2만 명 예상했는데 10만 명이 방문했다니 그럴 만도 하다.

김밥 축제 갔다가 햄버거 사먹고 온 사람들은 뿔났겠지만 나는 '김밥 축제'의 탄생이 마냥 반가웠다.

요즘 내가 거의 김.천 이모님들 수준으로 김밥을 말고 있어서다.



이스탄불 와서 집 계약하고 이사 들어온 첫날,

잡채를 해 들고 이웃집 문을 두드렸다.

한국을 대표했다는 기쁨에 친구한테 연락했다.


"나 백선생님 코스프레했다?

 앞집에 이거 '코리안 누들'이라며 내가 만든 잡채 갖다 줬어!"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그분 이제 다시는 코리안 푸드 안먹겠네..."


나는 배꼽 빠지게 웃었다.

그런데 어째 끝맛이 씁쓸하다.

사실이라서…

난 좋은 요리사가 아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살림 12년차 엄마인데도 딱히 시그니처가 없다.

한국을 떠나서야 반성하게 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워킹맘

아이들 반찬은 영양사 수준으로 챙기기도 하던데,

나는 남는 게 시간인데 요리가 싫었다.

골 때리는 엄마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엔 모든 게 잘 되어있지 않은가. 반찬부터 국까지 쉽게 하려고만 치면 뚝딱 해 먹을 것 천지니까.

특히 한국서 김밥 쌀 일은 거의 없다. 눈만 돌리면 있는게 김밥집인데, 손 많이 가는 김밥을 굳이 직접?

일주일최소 한번 이상은 꼭 김밥을 사 와서 라면이랑 끼니를 때웠다.


이런 생 건달 엄마였던 내가 이스탄불 와서

김밥을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싼다.


나보다 더 건달인 ‘국제학교’ 라는 학교는

그 어마어마한 학비를 받아먹고

급식은 왜 채소스틱이랑 멀건 수프, 치즈나 빵 쪼가리만 내주는지.


나는 팔자에 없던 '매일 도시락 싸주는 엄마'가 되었다.

물론 철저한 타의로 인하여.


그런데 이 김밥이 외국 아이들에게 인기 폭발이다.

김밥 싸가는 날은 도시락을 열기가 무서울 정도로

친구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둘째 아이와 같은 반인 덴마크 소녀는

나만 보면 달려와서 말한다.


"플리즈~ 코리안 스시 플리즈~~~"


“왜 나한테 그래.

 너의 엄마도 할 수 있을거야.”


“아냐, 그건 불가능해요.”


나는 몇 번에 걸쳐 그녀가 ‘김밥’이라는 단어를 외우도록 해주었다.


"코리안 스시의 이름이 뭐라고?"


"킴팝!! 킴-밥!!!"




며칠 전 애들 학교에서 행사가 있었다.

각 나라의 전통의상을 입고 행진도 하고

세계의 문화를 나누는 행사다.


외국나와 살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더니 나도 그런가 보다. 세계 각국의 전통 의상 속에서 유독 한복이 빛나 보이고,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면 가슴이 일렁이는 것이다. 


행사의 피날레인 음식 기부 시간이 되자

줄 서있던 학생들이 장전하고 코리아를 향해 달려온다.


열심히 배식해 주다가 마지막 1개 남은,

옆구리 터진 김밥을 버리려고 하자


"Wait! 노 프라블럼!!"


그거 자기 달라고 외치는 외국 친구들을 보며

어깨가 펴지는 걸 느꼈다.


코리안 김밥의 마법이다.


어제는 이웃집에 김밥을 조금 나누어 드렸더니

너의 집에 이것을 만드는 기계가 있느냐고 물어본다.


“기계는 무슨, 이 손으로 만들었지”


내가 손을 펼쳐 보이니

그녀는 내 손을 부여잡고 말한다.


“인샬라! 이건 예술이야”


한국의 음식은 아름다운데 건강하기까지 하다고,

내가 아니었으면 자기는 일본의 스시밖에 몰랐을 거라며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 갈비찜이나 꼬리곰탕도 아니고,

사실 한국에서 김밥은 진짜 제대로 된 ’한식’이라 하기도 힘든데, 이렇게까지 좋아하는구나.


외국인들은 종종 ‘코리안 스시’라고 지만 한국 명칭은 ‘김밥’이라고 알려주었다.


“김밥? 튀르키예 소울푸드랑 이름도 비슷하네.

 케밥, 킴밥!!

 이제 확실히 알았어.”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발견에 웃음이 터졌다.


“당신은 천재야!

 케bop,  김bop. Same bop~”


한국과 튀르키예가

밥, 으로 대동단결되는 멋진 순간이었다.



*2025 김천 김밥 축제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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