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 ‘어부 가족’

by 장미화


튀르키예 사람들은 가족을 중시한다.

그 모습이 내 생각엔 한국하고 닮았다.


처음에 이스탄불 와서

공증받을 서류가 너무너무 많았다.

어딜 가나 뭘 신청하기 위한 서류 작성이라는 건 인적사항 기재가 필수인데, 이런저런 서류를 쓰다 보니 특이한 점이 있었다.

보통 성인이라면 내 이름과 배우자, 자녀의 이름을 쓰면 끝이다.

그런데 여기는 성인인 내 부모의 이름까지 쓰란다.

부모가 세상을 뜬 경우에도 부모의 이름을 꼭 쓰라고 한다.

참 오랜만에 내 아버지, 어머니의 성명을 많은 곳에 써내며 느꼈다.

종잇장 한 장에 스미는 가족의 무게를.


주말에 공원으로 피크닉을 나가도

유난히 가족단위가 많다.

풍선을 달아놓고 파티 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꼬마의 생일파티다.

한국 같음 주인공인 아이의 친구들만 초대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파티 피플 연령대가 다양하다.

서로 부르는 소리를 들어보니


"안네~" (= 엄마)

"바바~" (= 아빠)

"안네 안네~" (= 외할머니)

"바바 안네~" (= 친할머니)

"암자~" (= 이모부)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까지 다 나왔나 보다.

최소 열 명은 넘는 이런 대가족이 종종 보인다.

집 주방을 옮겨온 듯 유리잔, 찻주전자까지 들고와

바구니에 찰랑찰랑 부딪쳐가며 티타임을 즐긴다.

보고있으면 절로 미소 짓게 되는 풍경이다.




며칠 전 길을 걷다가 공동묘지를 봤다.

뚫린 공간에 자연스레 묘지가 있는 것을 몇 번 봐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날따라 묘비명이 눈에 들어왔다.


묘비에 하나같이 ‘aile’라는 단어가 있는 것이었다. (aile = 가족)

자기 이름만 달랑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어부 가족’이라고 쓰여 있는 묘비도 있었다.

어부 가족... 어부 가족이라니,

왜 괜히 감동적이지?

갱년기인가?


나는 귀신들린 사람처럼 공동묘지를 걸으며

온통 누구 가족, 누구 가족이라고 적힌

남의 묘비명을 한참 들여다봤다.

그러고 있자니 가족 생각에 찡해졌다.


인생은 영원하지 않다.

나보다 소중한 건 없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것은 있다.


한창 이런 슬로건이 많이 보이던 때가 있었다.


‘나를 사랑하자’

‘나 자신을 찾자’ 이런 류의 문구들.


물론 좋은 말이고 그래야 하기도 하지만,


다들 나! 나 자신! 을 외칠 때면

되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만 위해서 살면 그게 좋은가?’


그렇다고 내가 이타적인 인간은 결코 아니다. 희생할 줄 아는 사람도 못 된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지만 희한하게 나 자신을 사랑한다.

아들이 반찬투정 하면 할머니도 안했던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지구 저 편에는 먹을 게 없어서 니 몸의 반만 한 친구들이 수두룩 빽빽한 거 모르지?"


그래놓고 내가 먹고싶을 땐 콧노래를 부르며 만든다.

'어휴, 나같이 이기적인 것도 엄마라고...'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내 위주다.

엄밀히 보면 잘난 건 없는데 자존감도 높은 것 같다.


이런 나도 힘이 안 날 때가 있다.

생을 견디지 못할 것 같고, 다시 못 웃을 것 같고, 주저앉아 일어서지 못할 것만 같은 때.

그럴 때는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안 된다.


‘한 번 사는 인생, 뭘 할때 나 말고 가족들 위해서 하면 안되나?’


물론 이것도 나이 들어서 얘기지 젊을 땐

가족의 관심이 그냥 싫을 수 있겠다.

행복한 소리 하고 앉았네, 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최고의 나무만 있는 숲은 없다.

내 가족이 최악이었던 것 같아도

가만 생각해보면, 아닐 것이다.


내가 절실히 필요로 할 때 곁에 없었던 가족이라도,

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 줄기를 까다가 까맣게 물든 할머니 손끝, 우리가 탄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던 할아버지,

아플 때 밤새 등을 쓸어주던 엄마 손길, 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날 뒤에서 달리던 아빠 발소리,

가을 들판에서 잠자리를 잡아주던 형, 동생의 출산준비물 목록을 만들어주던 언니의 예쁜 손글씨,

잠든 아이의 정수리에서 나는 과자냄새 같은 것.


머리를 쥐어짜도

이런 아름다운 장면은 없다면...


술취해 내 이름 큰소리로 부르며 들어오다 엄마한테 쥐잡듯이 잡히던 아빠, 한 번만 더 엄마 찾으며 울면 입을 꿰매어버린다고 겁주던 할머니 (반짇고리 찾으러가는 시늉까지 하셔야 진짜),

다음날 입으려고 정성스레 다려서 걸어놓은 옷을 입고 튄 동생, 놀자고 쫓아오는 동생을 보고 친구랑 미친듯이 도망가던 형, 몰래 유튜브 보다가 방문 여는 소리에 자는 척하는 아들의 신들린 연기력.


이런 것도 없으면 그냥,


핸드폰 부재중에 찍혀있던

'아버지' 세 글자, 혹은


“우리 딸~” 하고 부르던

그의 익숙한 목소리나 미소 같은 것.


내가 가족이라 부르는 사람과의 따듯한 한 순간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 말고, 그들을 위해서 한다.


엄마를 위해서, 아빠를 위해서 한번 더 힘내고

언니를 위해서, 형을 위해서 한번 더 웃고

할머니를 위해서, 할아버지를 위해서 한번 더 견뎌내고

딸을 위해서, 아들을 위해서 한번 더 일어나고.


나 자신으로만 섰을 때보단 더 힘이 실린다.


그래서 내가 못 해낼 것 같을 때는 오히려

나를 위해서 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서 한다.


가족의 무게가 때론 버거워도

그 무게로 내가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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