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타고 3시간, 그리스에서 생긴 일

by 장미화


이스탄불에서 그리스까지, 차로 3시간이다.


이렇게 가까운 이웃 나라지만, 튀르키예와 그리스는 오랜 앙숙이다. 오스만 제국이 그리스를 400년간 지배했고 이후에도 그리스 독립이 이루어지기까지 계속된 그리스-튀르키예 전쟁이 있었다. 중간엔 상황이 역전되면서 그리스가 동로마 제국의 한을 풀고자 튀르키예 본토인 아나톨리아까지 침공, 두 나라는 철천지원수가 됐다고 한다. 역사가 오래된 악감정이라 요새는 예전만큼은 아니고 점차 관계가 좋아지고 있다고는 한다.


지중해에 두 나라의 경계선이 있다. 그리스가 튀르키예 인근 섬을 소유하고 있어 섬 소유권이나 바다의 경계를 두고 팽팽하게 맞선다. 꼭 같진 않지만 독도를 두고 싸우는 우리와 일본 같다. (물론 독도는 우리 땅이다.)




우리가 처음 그리스 국경을 넘은 날은 악몽이었다.

둘째 아이에게 최악의 여행은? 하고 물으면 1초도 지체 않고 대답한다. 국경!

그날이 튀르키예의 명절인 걸 염두에 두지 않았다. 참 ‘우리답게’ 계획없이 떠난 잘못이었다.

세상에, 아니 튀르키예가 그리스 싫어한다며? 모든 튀르키예 사람들이 다 그리스로 휴가가나, 국경은 꽉 막혀있었다.

끝없이 줄 선 차들은 꼼짝도 안했다. 그렇게 국경에 붙박이로 11시간을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아침에 출발해 11시에 국경도착했는데 하루를 길에서 그냥 버렸다.


깜깜한 밤이 되자 직원들도 지친 건지 속력이 붙기 시작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와서 거주증을 보여주고 생각보다 빠르게 통과했다. 그런데 국경을 지나 신나게 달리다가 남편이 말했다.


“어? 그러고 보니 ‘그린카드’를 안 샀는데?”


그린카드는 국경을 넘을 때 필요한 보험인데, 미리 보험사에 가서 사기도 하지만 국경에서 직접 사기도 한다. 우리는 국경에서 살 생각으로 그냥 왔는데 직원이 검사를 안 했다. 보통 직원이 그린카드를 보여달라 하고, 없을 경우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그날은 왜인지 우릴 그냥 통과시킨 거다.

그런데 사실 이 그린카드라는 것이 국경을 넘을 때만 검사하지, 여행을 하면서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운이 좋다며 신나게 환호성을 부르며 달렸다.

그때 우린 그 운이 엄청난 불운이 되어 돌아올 줄 상상도 못한 것이었다.




우린 ‘튀르키예 명절날 국경에서의 11시간’을 극복해냈다. 더 나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튀르키예에 없는 돼지 구이를 먹으며 그리스가 참 좋아졌다.

방이 남아있는 아담한 호텔을 찾아 체크인을 하고

목구멍에 남아있는 돼지의 향기를 느끼며 기분좋게 잤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호텔을 나선 우리에겐 더 나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차의 번호판이 없는 것이 아닌가?

순간 우리는 튀르키예와 그리스의 국가 간 감정을 떠올렸다.

우리 번호판이 튀르키예 번호판이라 누가 떼어간 것 같았다.


"이야, 소크라테스의 나라 사람들이 이래도 되는거야?

그리스 사람들 실망이네~"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건너편 상점 아저씨가 잠깐 이리로 와 보란다.

그래 어디 그리스인한테 하소연이라도 해보자, 하고 가보니


"여기가 주차 금지 구역인데 너희가 주차를 해서 경찰서에서 번호판을 떼 간 거야.

저 골목으로 한 5분 가면 경찰서 있으니까 벌금 내고 번호판 받으렴."


아차. 밤 12시가 다 된 시각에 작은 호텔에 체크인하려니 호텔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다. 길가 공터에 주차를 한 게 잘못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 주차할 때는 차가 많았는데

아침에 보니 그 많던 차가 다 어디 가고 달랑 우리 차만 있었다.

하마터면 그리스 사람들을 번호판 떼가는 날도둑놈으로 알 뻔했다.

우리는 그리스까지 와서 벌금 낼 생각에 우울하게 경찰서로 향했다.

그런데, 경찰서로 가는 길에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예감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눈이 마주쳤다. 그린카드!!


그랬다. 경찰서에서 우리의 최대 난관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이게 경찰서에만 안 가면 그린카드가 있으나 마나 상관이 없는 건데,

그 낮은 확률을 제치고 우리는 남의 나라에서 경찰서에 가게 된 것이다.

슬픈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 걸까. 경찰이 천천히 입을 뗐다.


“그린카드 보여줘.”


으악!!!!!


경찰은 그때부터 FBI가 된 듯했다.

그린카드가 없이 너희가 어떻게 국경을 넘어왔냐는 것이다.


“너네 나라 직원이 검사 안 했다니까.”


말이 안 통하는 그리스 경찰서에서 2시간을 보냈다.

경찰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어이없는 눈치다.

하지만 결론은 자기도 어쩔 수가 없으니 다시 국경으로 돌아가서 그린카드를 사 오란다.

그렇게 다시 50분을 되돌아가 국경에 갔다. 그 죽일 놈의 그린카드를 샀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파르테논 신전까지 아직 8시간이 남았는데, 우리는 길에서 약 15시간을 온전히 버렸다.

그날 우리가 미치지 않은 것은 분명, 그리스 신들이 우리를 지켜줬기 때문이다.




번호판 떼간 사건으로 그리스가 싫어진 나는

또다시 돼지 구이를 먹으며 그리스에 대한 긍정적 감정을 끌어올렸다.


번호판을 되찾고 돼지 구이로 감정을 추스른 남편이 운전대를 잡더니 말했다.


“그리스에 왔으니 이 노래는 들어야지!”


남편이 멋들어지게 선곡한 곡은, 전혀 예상치 못한 나훈아의 ‘테스형!’ 이었다.

‘테스형’ 옆에 느낌표(!)가 필수인 그 노래.

구성진 목소리가 차 안을 가득 메웠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크, 첫 소절부터 딱 우리 얘기구나.


남편이 나훈아에 빙의한 듯 따라부르기 시작한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그래, 남편이 많이 힘들었구나.


“나훈아 형님도 참, 테스 형한테 별 걸 다 물어보네.”


그러자 뒤에서 아이들이 테스 형이 누구냐고 한다.

나는 기회는 이 때다 싶어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스는 유명한 고대 시인과 철학자들의 나라라고.


“너희 소크라테스 알지? 그리스가 바로 소크라테스의 나라야. 소크라테스가 한 말 중에 유명한 말은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내가 모른다는 것뿐이다’라는 말 이래.”


그러자 둘째 아이가 묻는다.


“엄마, 소크라테스 유명하지?”


“유명한 정도가 아니지?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아니까.”


“근데 그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면, 나는 바보야?”


옆에서 첫째 아이가 말한다.


“그건 아니지, 이 바보야.”


“자자, 바보라는 말은 우리 하지 말자.

소크라테스가 그런 말을 한건 자기가 바보 멍청이라는 게 아니거든.

안다는 것, 즉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이지.

내가 뭔가를 안다고 할 때는 그거 말고 다른 것에 대해선 모른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자만하지 말고 끊임없이 배워라! 그런 뜻인 거야!!

…듣고 있지? 나 누구한테 얘기하니?”


참고로 형제는 이미 ‘멍청이’라는 말에서 낄낄대고 웃느라 뒷얘기는 하나도 듣지 못했다.




그 고생을 하고 도착한 파르테논 신전은 과연

감탄할 만했다.

파르테논 신전이 유네스코의 공식 마크이기 때문에 꼭 한번 보고 싶었다는 첫째 아이는

신전 앞에 딱 2초 서 있더니 ‘가자!’ 라고 외친다.

그늘이 하나도 없는 탓에 둘째 아이는 신전이고 뭐고 ‘젤라또!’만 끝없이 외친다.

일단 아테네에 도착한 순간부턴 눈만 돌리면 아크로폴리스가 보이니, 제아무리 파르테논 신전이라도 금세 익숙해지기는 한다.


후다닥 내려와 들어간 젤라토 가게에서 나는 책을 폈다.

그리스에서 읽으려고 야심차게 준비한 책 ‘오디세이아’였다.

엄만 독서를 할 테니 너희는 지루하면 나가서 뛰다 와라, 하니 아이스크림을 먹자마자 형제는 나간다.

한 20분 뛰고 들어온 아이들은 다시 땀범벅이 되어 젤라토를 하나 더 먹어야겠다고 한다. 내가 못 들은 척 하니 첫째 아이가 내 옆에 와서 책을 힐끗 들여다보더니 말한다.


“엄마. 근데 아까도 여기 읽고 있지 않았어?”


아하하… 어허, 흠, 그랬나?

책을 읽는 게 어디 중요하겠나.

그리스에서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그냥 펴 들고 있으면 된 거다.


너는 길에서 얻은 모든 것들로 이미 풍요로워져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으리


그래, 결국 중요한 건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일뿐.

아마 이번 그리스행에서 우리들 가슴속엔

많은 것이 새겨 넣어졌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스에 오면서 우리가 지난 ‘국경’이란 곳이

아이들에겐 최악, 혹은 불행, 재앙과 동의어가 되었다 해도.

고생한 기억 또한 아름답게 새겨진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니. 그런 것들이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해 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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