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노는 아이들은 아름답다

by 장미화


"너의 아이들은 터키에서 행복하대?"


터키어 선생님이 어느 날 내게 물었다.


나는 모든 면에서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학원이 거의 없어서 그 점에선 많이 행복할 거라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한국 아이들은 학원에 많이 다니냐고 물어봤다. 내가 기본 3개는 다니고 대부분 그 이상이라고 했더니 기함을 한다. 대체 무슨 학원을 그렇게 다니냐고 한다.


"영어, 수학, 논술, 과학실험, 축구, 농구, 태권도,

인라인, 줄넘기, 미술, 피아노, 코딩, 바둑,

뭐 이런 것도 학원이라 해야하나? 숲학교...?"


선생님의 부리부리한 눈이 레이저를 쏜다.


"뭐가 잘못된 거야? 왜 그렇게 많이 배워야 해?

아이들은 그냥 뛰어놀아야지!"


나는 내가 한국의 교육부장관이라도 된것 마냥 변명을 하고 있었다.


"아 그게, 한국 아이들은 배우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음... 일하는 엄마들은 바빠서 학원 스케줄을 빽빽하게 짜기도 하는 거고 또... 남들 다 하는데

내 아이만 뒤처질 수도 없잖아.

어차피 다들 학원가니까 놀이터에 친구들도 별로 없거든."




그 나라의 인간성을 보기 위해선 사람들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된다는 말이 있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아이를 정말 예뻐한다. 아이가 조금 떠든다고, 불편하게 한다고 얼굴을 찌푸리거나 나무라는 걸 못 봤다. 아이가 넘어지거나 위험해 보이면 남의 아이라도 그냥 지나지치 않는다. 우리나라서 흔한 ‘노키즈 존’은 당연히 없다. 그래서 그런가 아이들이 참 해맑다. 어디를 가도 뛰놀 공간만 있으면 공을 놓고 뛴다. 여기 사람들이 배구를 좋아하는지 공원에서 배구를 하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아들 둘 엄마로 살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남자아이 둘 이상이 모이면 무조건 뛴다. 그냥 걸어가면 안 되는 걸까? 본인들도 왜 뛰는지 모르게 그냥 뛴다.

뛰지 마라, 넘어진다는 말을 골백번도 더 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는 모든 애들이 거의 다 뛰니까 무뎌진다. 한국에서처럼 제지를 많이 안 한다.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 웃게 된다. 아이들이 뛰는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카멜레온처럼 초록에 녹아든다. 넘어질 듯 말 듯한 보폭, 흩날리는 머릿결, 바람을 가르는 뺨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뛰놀다 온 아이를 품에 안으면 깨끗한 솔내음이 난다.


문득 터키어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그냥 뛰어놀아야지’라 했겠다?


에라이, 아주 말은 쉽지,

요즘은 시골 할머니도 그런 말씀 안 하신다 싶다가도

'그러네, 틀린 말은 아니지' 생각한다.


하마터면 영영 잃을 뻔했던, 내 둘째 아이 태어나던 날이 떠올랐다.




참 인생사 모를 일인 거다.

걱정했던 일이 되려 다행인 일이 되어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니 말이다.


34주 차 임산부였던 난,

아기가 크니 식단조절을 하지 않으면 힘들다는 주치의의 말을 귀가 닳도록 들었다.

첫 아이도 컸어서 이번에는 더 조심해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쑥쑥 크는 아기를 막을 순 없었다.


저녁 무렵 화장실에 갔다 물을 내리려던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변기 안이 온통 핏빛이었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길에

내 주치의가 없겠구나, 나는 출산할 때마다 운이 없나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아이 낳을 때 무통주사는 말을 안 듣지, 진행은 안 되지, 아주 죽겠는데 주치의가 와서는

‘나는 퇴근해. 당직 선생님이 잘 도와줄 거야. 파이팅!’

하고 떠나버려서 나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한 나를 받아준 건

다름 아닌 내 주치의 선생님이었다.

그를 보는 순간 안심이 되었다.


선생님은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기를 좀 일찍 만납시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수술대에 누웠다.


마취과 의사가 와서 말했다.

우리 아빠뻘 되려나, 나이 지긋하신 선생님이었다.


"엄청 차분하네? 평소에 겁 없어요?"


그 소리를 들으니 웃음이 났다.

내가 웃는 걸 보더니 의사가 말했다.


"어? 웃네? 강심장인데?"


"아니요, 그게 아니라 평소엔 겁 많은데…"


전에 치과 갔을 때는 나처럼 엄살 심한 사람은 처음이라며 치료 안해준다고 혼난 적도 있다.

주사가 싫어서 '독감주사를 맞느니 그냥 독감에 걸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모자란 사람이다.


그런 내가 희한하게 겁이 안 났다.

생각보다 그렇게 무섭지가 않았다.


“그러면 아기 보고 잠들 수 있겠어요?

아무래도 아기를 일찍 꺼내는 거니까

가능하면 마취를 늦추면 좋아서”


"저 괜찮아요. 아기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자 마취과 의사가 말했다.


"이 산모가 뭘 좀 아네! 씩씩해서 좋다.

무서우면 언제든지 말해요. 3초만에 잠들 수 있으니까. 알았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간호사가 얼른 아기를 내게 보여준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에이, 울지마~ 울면 눈만 붓는다!

아기 건강하다. 봤죠? 고생했어요."


마취약이 온몸에 퍼지기 직전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그 찰나의 순간 생각했다.


‘이제 됐다.

더 바랄 게 없다.’


인간의 망각이란 어찌나 무서운지 모른다.

이렇게 아이를 얻었어도, 그렇게 울었어도,

시간이 지나면 소름 돋게 잊고 살아진다.


크면서 건강은 건강인데 사실 공부도 잘했으면 싶고, 거기에 살포시 사회성도 더했으면, 그래서 어디서든 당당했으면, 기죽지 않았으면 싶다.

하지만 뭘 바라겠는가. 나도 그런 사람이 아닌데.

에라이, 뛰어 놀아라!

뛰노는 아이들은 아름답다.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훌쩍 자라날 때면

처음 내 몸에서 아이가 꺼내졌을 때를 떠올린다.


살아있다는 그것 하나만으로 ‘이제 됐다’ 했던 그때.

무사하다는 그것 하나만으로 더 바랄 게 없던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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