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겠다, 느긋해서

by 장미화


이스탄불 사람들은 일처리가 느긋하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건 다음의 경험들이 축적되기 때문이다.


“세탁기를 설치하러 와 주세요.”


“언제요?”


“내일 가능할까요?”


“내일 오후.”


“오후? 오후 몇 시요?”


“음, 1시 이후.”


“그러니까 몇 시?”


“1시에서 5시 사이.”


약속 시간을 잡을 때 이렇게까지 오차 범위가 넓다?

지극히 당연하게 ‘1시에서 5시’를 이야기하는 그에게 외국인인 나는 더 따지지도 못한다.

드물게 ‘3시’ 라고 정확한 시간을 지정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웬걸, 저녁 6시에 온 그는 천사같은 미소를 지으며 들어왔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은 튀르키예에도 있는 듯했다.


‘지금이 3시인가요?’ 라고 말하며 나도 그만 웃어버렸다.


또 재미있는 건, 일을 하다가 종종 뭘 사러 나갔다 온다.

이걸 설치하거나 고치는데 필요한 재료를 사러 마트에 다녀온다는 것이다.

한 두번 해보나? 왜 올 때 장비를 준비해 오지 않았는지 의아해지는 순간이다. 어떤 경우는 마트 간 사람이 너무 안와서

‘아니 이분이, 쇼핑을 하러 갔나?’ 우스갯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외식을 갔을 때도 느긋하게 맘먹는 게 좋다.


한 번은, 이스탄불에 놀러온 동생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이 인종차별을 한다는 것이다.


“언니는 여기 사람들이 한국인을 좋아하고 호의적이라는데 전혀 안 그래요.”


사연을 들어보니 음식을 주문할 때 분명히 자기가 부르는 것을 직원이 봤는데 일부러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오해일 가능성이 높다.

이스탄불에서 웬만한 규모의 식당이나 카페라면 직원이 참 많다. 그래서

주문받는 사람, 서빙하는 사람, 치우는 사람, 계산서 가져다주는 사람 등 그들만의 업무분담이 칼같은 듯하다.

나도 처음엔 식당에서 여러번 당혹감을 느꼈다. 다음과 같은 식이다.


직원이 분명 나의 주문한다는 눈짓을 보고선 고개를 끄덕이며 친절히 웃는다.

그런데 그는 보란듯이 다른 직원과 신나게 수다만 떨고 있다.

뭔 일인가 싶어 한참 뒤에 다른 사람을 불렀더니 바로 와서 주문을 받아간다. 알고보니 내가 처음에 부른 사람은 서빙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이다.


“아, 주문할 준비가 되었니? 하지만 주문받는 건 내 일이 아니야.”


그러면 주문받는 사람에게 전해주기라도 하면 좀 좋아? 거참 너무하네.


계산할 때도 그렇다. 타지에서 외국인이란 아무래도 소심해지기 마련이라

“여기요!” “이모!” “웨이터!!” 하고 외치려면 적잖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결국은

계산서 가져다주는 사람과의 아이컨택을 한참 기다렸다가 겨우 눈빛 교환에 성공한다.

그러면 그는 먼저 계산서를 가져와서 확인하라고 보여준다.

내가 카드를 주면 카드 단말기를 가져온다고 가서 또 한참 안 온다.

아… 계산서와 카드 단말기를 같이 가져오는 방법도 한 번쯤 고려해 주었으면…


이스탄불을 일 년 겪으니 한국 사람들 손이 빠르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혼자서 그 많은 커피를 내리고 포장하던 동네 카페 아르바이트생.

그의 손 매무새가 어찌나 야무졌는지 문득 회상하게 된다.


자라난 집안 환경에 따라 사람이 바뀐다.

하물며 태어난 나라가 다른 건 오죽할까.

한국인은 한국인만의 특징이 있고, 튀르키예인은 튀르키예인만의 특징이 있다는 점이 인간적이다.

한국 사람들은 친절하면서도 똑 부러져서 좋고

튀르키예 사람들은

좋겠다, 느긋해서.

왠지 모르게

치열하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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