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남자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김보성’이라면 내가 너무 옛날 사람일까? 두꺼운 팔뚝을 불끈대며 ‘으리!’를 외치던 김보성. 사실 많이 희화되긴 했지만 그만큼 상남자 이미지에 어울리는 사람이 없다. 그의 의리 타령이 단순히 콘셉트가 아니라는 걸 진즉 알아봤다. 소아암 어린이를 돕기 위해 종합 격투기를 하다 눈을 맞아 실명될 뻔하기도 했었으니. 진짜 의리에 진심인 상남자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에선 남자도 예쁜 사람이 인기다. 가끔 보는 한국 방송에서 젊은 남자 연예인들은 다 가늘가늘 하다. 요즘 아이들이 떠올리는 상남자의 이미지는 어떤 건지 도무지.
내 아이들의 대화만 봐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확실한 건 요즘 초딩들에게 ‘상남자’란 신라면을 아무렇지 않게 먹는 것이나, 불닭볶음면을 먹느냐 핵불닭볶음면을 먹느냐 하는 것이 크게 좌우한다. 옛날 사람인 내가 생각하는 상남자 하고는 차이가 크다.
몸이 두껍고 무거운 것을 번쩍번쩍 들어 올리며 다소 투박해 보이는 남자. 사십대인 내 기준의 이런 상남자들이 튀르키예에 많다. 그들도 그런 남자다움을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아담슨~’ 하고 이야기하면 그렇게 좋아한다.
헤어도 상남자답게 아주 깔끔한 모양이 많이 보인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눈을 가린다든지 하는 경우를 거의 못 봤다.
보통 앞뒤 머리를 짧게 치는 것이 터키 남자들의 헤어 스타일이다.
한창 터키 이발사들이 영국 거리를 장악하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터키 남성 헤어의 포인트는 ‘깔끔함’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 깔끔함 속에 뭔가 살짝궁 허전함이 느껴지는 게 왜인지 몰랐다. 아들 둘을 데리고 이발 다녀온 남편을 보고서 깨달았다. 그건 바로 구레나룻의 유무였다.
어디선 구레나룻을 남자의 자존심이라고까지 하던데,
심지어 샤킬 오닐은 이렇게 구레나룻만 남긴 헤어스타일을 한 적도 있다는데,
우리 집 남자들이 처음 이스탄불에서 이발하고 온 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구레나룻을 그렇게 싹 밀어버린 모습을 처음 봤다. 분명 삭발은 아닌데, 절간으로 스님 세 분이 들어오는 느낌 비슷했다.
우리 집 남자들이 이발하러 갈 때마다 내가 남편에게 보내주는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을 한 두번 보내준 것이 아니건만 남편은 차마 저장 버튼이 안 눌러지는지
이발하러 갈 때마다 내게 메시지를 보낸다.
“정해인 좀”
나는 정해인 사진을 보여준 것이 확실하냐고 물었다.
남편은 분명 보여줬다고 한다.
번역 앱을 돌려 ‘이런 스타일로 해 주세요’ 라고 찍어 보여주기까지 했다면서 억울해한다. 상남자인 이발사 아저씨가 터프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구레나룻을 박박 밀어 버렸다는 것이다. 하긴 동네 이발사 아저씨가 낯선 동양 청년 사진을 본다고 뭘 어쩌겠는가. ‘그게 그거구만’ 슥슥 자르다 보면 본인 스타일과 비슷하게 나올 수밖에.
그날, 옆모습이 휑한 둘째 아들은 신라면을 먹으며 말했다. (물 한 대접을 앞에 갖다 놓고 면발을 물에 씻어서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