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의 레이서들, 깜빡이 켜고 들어와라

by 장미화


튀르키예 사람들은 느긋하다.


어제 친구네 집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누가 벨을 눌렀다. 물이 새서 들뜬 바닥을 고치러 왔다고 한다. 그런데 아저씨 두 명이 바닥 수리하러 들어간 방에선 한참 두런두런 말소리만 들리고 공사하는 소리가 안 난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아저씨들이 나오면서 얘기한다.


“재료가 없어서 다음에 다시 올게.”


친구가 묻는다.

“다음 언제?”


“다시 연락할게.”


한마디로 수리 기사 두 분은 도무지 왜 왔는지 모르게 아무것도 안 했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구하기가 힘든 바닥재 인가 봐?”


이스탄불살이 5년 차인 친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작년에도 저분들이 공사했고, 재작년에도 똑같이 저분들이 공사했어. 벌써 세 번째야.^^


이런 일을 아무리 많이 겪고 들을지라도, 여기 사람들이 느긋하다는 이야길 할 땐 아직도 조심스럽다. ‘느긋하다’는 것이 부정적인 덕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급한 일반화가 우려된다.

10명 중에 7명이 느긋해도 나머지 3명이

‘난 아니거든?’ 하고 외친다면 너무 미안하니까.

그런데 이 얘긴 단 일 퍼센트도 주저 없이 할 수 있다.


이 느긋한 사람들은 운전대만 잡으면 돌변한다.


이들이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차 문을 박차고 나가 박수를 쳐 주고 싶다.


그대들은 진정한 레이서입니다.


신기한 것이 여긴 초보운전이 없다. 운전을 할 때 단 1초도 머뭇거리는 순간이 없다. 빽빽한 도로 한가운데 낀 차가 돌연 핸들을 꺾어 유턴해 빠져나간다. 비상깜빡이를 켜고 차를 조금만 빼달라거나 그런 건 없고, 당연히 뒤차도 빼줄 생각이 없다. 그럴 때 운전자는 아주 단호한 표정으로 검지 손가락을 세운다.


이 손가락 제스처는 그러니까 이런 의미다.

‘잠깐! 너 딱 기다려.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러고 나서 어떻게든 본인에게 주어진 그 좁은 공간 안에서 해낸다. 차를 돌리든, 끼어들든, 주차를 하든 뭐든 다 해낸다. 아니 대체, 여기선 레이싱카라도 타고 시속 150킬로를 밟으며 운전면허를 따는 걸까.


차가 뒤집힐 것 같은 급경사를 내려갈 때 그들은 브레이크의 존재를 까먹는 게 분명하다! 깻잎 한 장 차이로 두 차가 마주 보며 대치할 때조차 결코 속도를 줄이는 일은 없다.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쌩 지나간다.

사이드 미러를 치고 가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 정돈 일도 아니라는 듯 그냥 간다. 박살 난 게 아니라면 각자 본인이 창문 열어 다시 펴고 갈 길 간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차를 내 몸처럼 아끼는 데 비해 여기선 차의 흠집에 대해 굉장히 쿨하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차라리 눈을 감는다. 특히 좁은 길을 갈 때 눈 뜨고 가면 꼭 남편과 싸우게 된다.


“어! 어어?? 어어어??”


“와 대박!! 지금 거의 닿은 거 알지?”


이런 추임새를 나도 모르게 자꾸 내뱉게 되는 것이다. 차선을 바꿀 때 깜빡이, 즉 방향지시등을 켜는 차가 없다. ‘드물다’가 아니라 없다. 오죽하면 ‘깜빡이 켜는 차=외국인’이라고 보면 된다고들 한다.


안 그래도 초보인 나는 진즉 운전은 포기했다. 한국처럼 차 뒤에 ‘초보운전’ 또는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따위를 붙이고 도로로 나선다면? 아마 ‘아하, 너를 밟아달라는 거니?’ 하며 내 차 보닛으로 급발진해 뭉개고 지나갈지도 모른다.


느긋한 튀르키예 사람들이 운전대만 잡으면 분노의 질주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도로 사정 때문이다. 골목골목 상상을 초월하는 언덕이 대부분이고 주차 공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물론 큰 길은 잘 빠져있지만 많은 길이 급경사에 양옆은 도로 주차한 차들로 빼곡한 고난이도의 길이다. 늘 이런 곳에서 요리 빠지고 조리 빠지며 운전하는 게 일상이니 선수가 될 수밖에.


오늘은 평지와의 각도가 거의 90도에 가까운 골목을 역주행하는 차와 맞닥뜨렸다. 그것은 흡사 롯데월드 후룸라이드가 마지막 추락 지점에서 쏟아지는 모습과 같았다.


운전자의 표정은 단호하다.


또 요로코롬 검지 손가락을 우뚝 세운다.


나도 모르게 소리친다.

"확 그냥! 손가락 뿐질러 버릴까?"


남편이 말한다.


"그냥 조용히 해주겠니?"


한국선 거의 차가 멈추는지, 달리는지, 방지턱이 있는지 모를 수준으로 젠틀하게 운전하던 남편이다. 이제 무법의 레이서가 다 된 그가 말한다.


"어우 얘들아,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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