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달동네의 오르막은 저리 가라다. 언덕이면 언덕인대로, 계단이면 계단인대로, 시작점에 서면 단전으로부터 깊은숨이 올라온다. 오르막을 올라가는 차를 얻어 타려고 히치하이킹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비 오는 날은 답이 없다. 오르막을 오르지 못하는 차가 있어 정체되기 시작하면 도로는 말 그대로 주차장이 된다.
우리 집 역시 언덕 위에 있다. 오르막의 난이도를 상중하로 표현한다면 우리 동네는 ‘중’ 정도 된다. 처음 이스탄불 와서 우리 차가 나오기 전에 가파른 오르막을 온전히 걸어 다녔다. 내 몸 하나 거느리고 오를 때는 그래도 괜찮다. 장을 봐서 올라갈 때는 절로 기합이 들어간다.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부아앙!!’ 올라가던 아저씨가 태워준다고 손짓하기도 한다. 나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으며 거절한다. 아저씨는 ‘브라보!’ 라고 외쳐준다. 두 아이들과 장바구니를 하나씩 나눠 들고 오르막을 올라갈 땐
보는 사람마다 응원해 준다.
“브라보!!”
오르막을 오른다. 허벅지의 딴딴한 긴장과 심장박동,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호흡에 정신을 뺏기기 시작한다. 그러면 생각이 없어진다. 징징대던 아이들도 점차 말이 없어진다. 집에 도착하면 설악산 대청봉에라도 오른 듯 외친다.
“다 왔다! 해냈다!!!”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친구 엄마들은 벌게진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한다.
“아니 이건 뭐, 등산인데?”
“얘들아, 돈 많이 벌어서 평지 살아라…”
한국에서 건물 엘리베이터 옆에 종종 붙어있던 문구가 생각난다.
기다릴 시간에 걸어 올라가세요. 5층까지만 가도 자전거 10분 효과
그 앞에서 생각한다.
'뭔 씨알도 안 먹힐 소리야, 당연히 엘리베이터지.'
계단 한 칸마다 ‘-6kcal’ ‘-7.5kcal’ 이런 식으로 칼로리 소모량이 쓰여 있는 곳에선 움찔한다. 인간이란 구체적인 숫자에 약하다는데 정말이다. 계단에 박힌 칼로리 숫자들이 나를 채찍질한다. 그러나 ‘슈크림 붕어빵 한 개가 몇 칼로리지?’ 라는 생각이 순간 스칠 뿐, 나의 비루한 발바닥은 어느새 엘리베이터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역시 엘리베이터지.’
기다릴 시간에 걸어 올라가면 건강해진다는데. 더구나 에너지 절약까지 되니 이보다 좋은 일이 없는데. 나도 좋고 지구도 좋다는데 기를 쓰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게 되는 건 왜일까. 안 먹고 운동하면 늘씬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건 지나가던 개도 안다. 열심히 공부하면 서울대 가는 거 누가 몰라서 서울대 안 가겠나. 특히 나같이 게으른 사람에게 하기 싫은 일을 자유의지로 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그냥 어쩔 도리 없이 그렇게 해야만 할 때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나에겐 오르막이 이득이다. 선택의 여지없이 집에 가려면 운동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요새는 생각을 좀 고쳐먹었다.
우리 집은 튀르키예 오르막 난이도 ‘중’ 정도의 언덕 위에 있다.
이게 등산이다, 운동이다, 생각하면 별 거 아니다.
뭐 굳이 돈 내고 운동하나? 굳이 따로 시간 내서 할 필요 있나?
‘일상 속에서 조금씩 하면 그게 운동’이라고 건강전도사 같은 말도 한다.
사람이란 신기하다. 숨이 차고 땀이 나면 묘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아래서 올려다볼 땐 지옥행인 것 같은데, 막상 올라와보면 상쾌함을 맛본다.
특히 마음이 어지러울 땐 몸이 어느 정도 지치는 게 좋다. 깊은 호흡을 내뱉으며 하찮은 생각들도 버리고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