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를 좋아하는 것도 8할은 바다 덕분인 듯싶다. 웅장하게 넘실대는 보스포루스와 눈부신 지중해. 나는 튀르키예에서 보내는 첫여름 안에서, 빛나는 바다를 두 눈 가득 가슴 가득 담았다.
그런데 어떤 영화를 보다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시리아 난민들의 목숨을 건 여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중해에 놀러와 신나게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주인공이 말했다.
“쟤네들은 이 바다에서 사람이 죽는 건 모르겠지.”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듯했다.
나도 몰랐다. 아니 미처 생각 못했다.
전쟁이 터진 나라에서 탈출한 수많은 난민들이 이 지중해에 수장된다는 사실을.
돈만 내면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로 보내준다는 브로커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런데 그 브로커는 손바닥만 한 고무보트를 가져와 20명이 넘는 사람들을 막무가내로 태워 망망대해로 밀어버린다는 사실을.
여기, 튀르키예는 난민을 받아준다. 그래서 난민이 많은 편이다. 튀르키예가 유럽연합에 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난민 문제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난민들은 길거리에 거적때기만 깔고 누워 자거나 관광객이 많은 노천카페에 와서 구걸을 한다. 교통체증이 심한 이스탄불 차도 한가운데서 장미꽃을 팔거나 맨발의 어린아이를 앞세워 물이나 휴지를 팔기도 한다. 아무래도 아이들을 키우는 지라 맨발의 꼬마는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다. 남편은 생전 안 사오던 작은 장미꽃을 사들고 오는 일이 종종 생겼다.
며칠 전 ‘카흐발트’라고 하는 튀르키예식 아침식사를 파는 골목에 갔다. 사람이 많은 곳이어선지 우리가 외국인이어선지, 테이블로 난민들이 계속 왔다. 식당 직원이 쫓아내도 소용없다. 빈 손으로 구걸을 하는 것은 아니고 작은 휴대용 티슈를 사달라고 한다. 우리는 100리라(한화 약 4천원)를 주고 티슈를 샀다. 그런데 테이블에 이미 티슈가 올려져 있는 걸 보고도 다른 난민들이 또 온다. 나는 현금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얘기하는데 나의 일행이 100리라를 꺼내 준다. 그러자 난민은 고개를 저으며 ‘200리라!’라고 한다. 친구는 ‘그럼 150리라!!’ 라고 한다. 갑자기 분위기가 그랜드 바자르(이스탄불에서 가장 큰 시장)가 된다.
친구는 ‘아니 내가 왜 난민하고 흥정을 하고 있지?’ 하며 어리둥절해한다.
이런 이유로 난민은 곧 ‘구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분명 난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생각하지 않았다. 나처럼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도 난민이 된다는 걸 말이다. 물론 난민 수용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안다. 마냥 연민으로 그 많은 난민을 받아줄 수 없다는 걸. 우리나라에서도 배우 정우성이 오랜 시간 주장했지만 결국 차갑게 외면당했다. 그는 쏟아지는 공격을 견디지 못해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직을 결국 내려놨다. 긴 시간 ‘분명 정치적인 이유로 일한다’, ‘정우성 돈으로 난민을 도우라’는 화살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나는 100리라짜리 티슈 하나 사 주는 게 난민을 돕는 거라 생각했다. 꽃집에선 팔지도 않는 엄지손가락 만한 장미 몇 송이를 사오는 게 돕는 거라고. 그래,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모두가 웃고 있을 때 우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이해인 수녀님 글귀다.
종종 이 말을 떠올린다.
내가 웃고 있을 때 누군가는 울고 있음을 떠올리면, 이기적인 내가 손톱만큼이라도 낮아진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