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첫 캠핑은 아직 꽃샘추위의 한기가 스미는 4월이었다. 한 면이 거의 뚫린 거나 다름없는 여름용 텐트를 가지고 호기롭게 시작되었다. 그날 함께 캠핑했던 언니가 우리 텐트를 보고 말했다.
“아니, 야 너네는 이 정도면 그냥 노숙 아니냐? 텐트가 뚫려 있는데?”
아이들은 몸에 열이 많아선지
추운지도 모르고 잘만 잤다.
나는 그날 밤 언니가 우리 텐트를 열고 던져준 두툼한 침낭이 아니었으면, 내 몸을 뜨뜻하게 덥혀준 밤막걸리가 아니었으면, 자다가 입 돌아갈 뻔했다.
시스루 텐트에서 그 고생을 하고 돌아와서 누운 내 집은 극락이었다.
‘와, 몸이 녹는다 녹아’ ‘집이 최고다!’ 이불속에서 사춘기 소녀들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행복해하던 나와 남편은 희한하게도 다음 캠핑을 계획하고 있었다. 뭐였을까. 우리를 캠핑하도록 이끈 건.
힘들긴 했는데 매력있었다. 이상하게 재미가 있었다.
캠핑은 돈 주고 하래도 안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어떤 면에선 못 할 짓인 건 맞다.
한 번 우리를 따라 캠핑을 경험해 본다고 온 친구 가족은, 남편이 텐트 철수하는 모습을 보며
기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너무 경건해진다고.
물론 나도 텐트 철수로 남편이 땀을 바가지로 쏟는 와중, 가끔 내게 주어지는 설거지를 하다가
이렇게 외친 적이 없는 건 아니다.
"아오 이런 xx,
환경이고 나발이고 그냥 일회용 써!!"
그런데 이 캠핑이 유럽까지 이어질 줄은 또 상상 못했다.
처음 주재원 발령받고 짐을 쌀 때 나는 캠핑 장비를 친정에 맡겨 두자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다 가져가자고 고집을 부렸다. 유럽에서도 캠핑을 해 보고 싶다고 한다. 나는 유럽 사람들도 캠핑을 할까 싶었다. 무엇보다 낯선 나라에서의 캠핑이라니 왠지 모르게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웬걸, 튀르키예의 작은 캠핑장을 시작으로 그리스, 불가리아의 캠핑장을 경험해 보니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이탈리아나 남프랑스의 캠핑장은 더 멋지다고 한다. 유럽의 캠핑장은 무엇보다 규모가 크고, 사람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해변에서 보내기 때문에 아주 여유롭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신기했다.
내 나라가 작기 때문에 보통 네다섯 시간 가면 엄청난 장거리 여행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유럽 사람들에게 국경을 넘어 열 시간 이상의 로드 트립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
캠핑에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영어를 잘 못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그들이 내 기억의 한 켠을 차지하기엔 충분했다.
우리에게 스파게티 소스를 선물로 주었던 옆 텐트 가족은 이탈리아에서 왔다. 덕분에 스파게티는 오일, 크림, 토마토 밖에 모르던 내가 초록 물감같은 잔디색 스파게티에 도전해봤다. 아들 하나, 딸 하나인 이 가족은 아침에 일어나면 밥먹고 해변에 나가 넷이 동그랗게 서서 공던지기를 했다. 유럽 사람들은 다들 물개처럼 수영을 잘하던데 토실토실한 이 가족은 어쩐 일인지 팔튜브가 없으면 수영도 못했다. 조용하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정말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사람들이었다.
그리스 가족은 저녁이 되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영화에서나 보던 히피들도 캠핑장에서 처음 봤다. 텐트 앞에 자기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진열해놓고 팔기도 하고 그들 역시 밤새 노래를 불렀다.
체코에서 온 커플은 개를 데리고 해변에 나와 원반을 던져주며 수영을 즐겼다. 개의 이름이 ‘푸치니’라고 했다. 오? 개가 오페라를 부를 것만 같은 이름이네.
남자의 헬스트레이너가 한국인이었는데 늘 전화기를 들고 ‘여보세요?’라고 했다면서 남편만 보면 ‘여보-쎄요?’라고 인사했다.
부모님, 누나들과 캠핑을 온 불가리아 아저씨는 우리의 조리대를 탐내며 이것은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물어봤다. 아쉽지만 내나라에서 샀다고 하니 한국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며 아주 멋진 곳일 거라고 했다. 아저씨의 풍채 좋은 누님은 식사 때가 되면 망치같은 걸로 고기를 열심히 두드려 폈다. 육질을 부드럽게 하는가 보다.
로비에 캐리어를 끌고 앉아있다 키를 받아 올라가면 그만인 호텔보다, 캠핑장에서의 이런 알콩달콩한 사람 경험이 나는 재밌었다.
아무것도 아닌 행위들의 반복 속에
왜인지 희한한 편안함과 재미가 있었다.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 파도 소리,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 도란도란하는 목소리들,
씹기도 전에 녹아내리는 기막힌 숯불 고기의 맛,
아침에 텐트를 열고 나왔을 때의 여명,
밤늦도록 태운 장작에 남아있는 불냄새,
이런 것들이 내 맘 속 저 깊은 곳에 얼쩡대는 낭만을 소환해온다.
캠핑을 하는 이유가 돈이 없어서겠는가!
물론 우리가 돈이 없긴 없다. 그런데 캠핑을 하는 이유가 돈 때문이 아니라고는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캠핑하면서 드는 수고를 생각하면 사실 돈 조금 더 내고 가성비 호텔을 가면 된다. 그런데 캠핑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고생을 조금 초과한다.
캠핑을 다녀오면 땅바닥에 맥주캔을 까서 장전해 놓고 그 많은 캠핑 짐들을 정리하는 남편을 보며
‘힘들어서 이제 그만해야 되나?’ ‘우리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편하게 다녀야 하나?’ 이야기도 나누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