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카페 브릭스 제주에서 혼자 놀면서 그림 그리기
아쉽게도 비행기 안에서 그림을 한 장도 못 그린 채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우선 숙박지를 가기 위해 100번 버스를 타야 한다. 정류장을 찾았고 버스 방향도 몇 번을 확인하고 버스에 올랐다. 나도 창문을 열면 바다가 눈앞에 차아악 있는 곳에서 묵고 싶어서 바다 앞 호텔을 예약하기도 했다. 그런데 바다 앞 숙소는 버스로 가기 힘든 곳에 있다. 그렇다면 택시를 탈까?
불안이: 싫어, 택시는 무서워
강박이: 택시는 답답해, 숨 막혀.
그렇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택시를 못 탄다. 결국 나의 여행은 버스와 두 다리로만 사용 가능. 그래서 호텔은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버스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로 정했다. w호텔에 가방을 냅다 던져놓고 바로 걸어서 오분 거리에 있다는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제주에서 첫 번째로 어디를 갈까? 장소 따위 별로 고민하기 싫다. 아이 출입 금지라는 어른이를 위한 곳. 김녕 남흘동에 위치한 레고 카페로 정했다. (오늘만큼은 아이가 없는 곳으로 갈래요.)
720번, 잊어먹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입으로 중얼중얼거렸다. 버스를 타서는 오직 남흘동만 생각했다.
불안이와 강박이랑 720번, 남흘동만 생각하다가 창문을 바라봤다. 순간 내 눈에 들어온 파란색 바다.
아! 맞다, 여기는 제주도. 720번 버스가 덜컹 거리며 해안도로를 달리니 이제야 내가 제주도에 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는데 불안이가 바짝 내 등에 붙어 있어서 또다시 남흘동을 외웠다. 난 아직 바다를 즐길 마음의 준비가 안된 거다.
드디어 남흘동, 하도 입에서 중얼거렸더니 멀미가 날 지경이다. 내려서 정류장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동네가 조용하다. 이런 곳에 정말 레고 카페가 있긴 있는 거야? 구멍 쏭쏭 뚫린 제주 담벼락 너머로 빨랫줄에 아이 옷 어른 옷이 옹기종기 사이좋게 널려있다. 빨래가 있는 걸 보니 사람 사는 동네는 맞군. 그런데 모두 어디 간 거야? 사람 한 명 멍멍이 한 마리 안 보여.
브릭스 제주 도착.
당시 용돈만 생기면 레고로 탕진을 하고 있는 상태라 레고 구경을 열심히 했다. 갖고 싶은 녀석들이 너무 많아서 손에서 땀이 나고 지갑이 몇 번이나 들락날락 물욕을 참느라 힘들었다. 다행히 비싼 녀석들은 전시품이라 팔 수 없다고 했다. 아쉽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한 내 마음 무엇이더냐? (네가 원하는 게 뭐니?)
하루 종일 쫄쫄 굶어서 떡볶이도 사 먹고 후식으로 레고 모양 초콜릿도 먹었다. 초콜릿이 들어가니 기분이 가 좋다. 강박이와 불안이는 문밖으로 내쫓아버렸다. 소파에 앉아 레고 조립도 하고 틈틈이 음식과 주변 사람들을 그렸다. 이 시간에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초콜릿 먹으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여유로운 모습이라니. 천국이 따로 없도다. 나가기 싫다. 여기에 천년만년 있고 싶어.
그래도 비행기 타고 제주도를 왔으니 바닷가는 한 번 걸어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 카페 주인에게 물어보니 바로 몇 미터 앞에 바다가 있다고 한다.
'좋아, 바닷가에 가서 어반 스케치 한 번 제대로 하자.'
바닷가로 향해 길을 걷는데 정말 동네에 사람이 없는 게 확실하다. 걷는 동안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자꾸만 개 두 마리가 나만 따라온다. 난 개 공포증이 있다고. 너무 무서워서 뛰지도 못하고 빨리만 걸었다. 잉잉 "얘들아, 따라오지 마, 어서 저리 가라 가'
얘네들이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뒤를 돌아보니 멍멍이들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혹시라도 눈이라도 마주칠까 싶어 후다닥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