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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엽집 Nov 19. 2019

낯선 시(詩) 읽기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월요일, 윤동주 시인의 〈투르게네프의 언덕〉, 〈팔복(八福)〉, 〈슬픈 족속〉을 읽었다. 세 편의 시를 읽고 그중 한 편을 골라 드는 생각이나 느낌 혹은 질문, 혹은 시적 화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라 했다. 시간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무엇이 떠오르고 그것을 길어 올릴 수 있을 때까지 찬찬히 들여다보라고. 십여 분 지났을까. 한 친구가 멋쩍은 웃음과 함께 “너무 정석적인 해석인 것 같은데요.”라며 입을 열었다.     

 

모차르트는 피아노 강습을 할 때 누가 수업을 듣느냐에 따라 수업료를 다르게 책정했다고 한다.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전혀 피아노를 칠 줄 모르는 사람에게보다 두 배의 수업료를 받았다고 한다. 왜 그런 것 같으냐고 물어보니 한 친구가 “아니까 더 수준 높은 수업을 할 수 있어서 비싸게 받은 거 아닐까요?”란다. 아니다. 배운 적 있는 사람은 그 틀을 깨고 벗어나야 하는 수고와 시간을 더 들여야 하기 때문에 더 비싸게 받았단다.

출처 : 언스플래시

강사로 일했던 기간 포함해서 중등에서 6년 길잡이교사로 있다가 초등 길잡이교사로 2년을 보내고 지금은 살림터에서 2년째. 살림터 첫 해에는 너무 힘들어서 매일 못하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고, 아침마다 그만둘까? 고민했다. 그런데 중등에 있을 땐 단순히 “사이즈 작은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던 초등 아이들과 중등 친구들과 얼마나 다른 존재들인지 발견하고, 살림터 교사로 일하면서 전체 교육과정을 살피며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초등 길잡이교사로 보직을 바꾸는 건 자의 반, 타의 반의 선택이었지만 서 있는 지점이 달라졌을 때 보이는 게 얼마나 많이 달라질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었고, 그 경험을 믿고 살림터 교사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 근육을 찢어야 한다던가. 운동하면서 근육이 찢어지고, 찢어진 근육이 다시 붙으면서 근육이 발달하는 거라던가. 뇌도,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낯선 환경에 나를 옮겨 놓으며 부딪치고 찢어지면서 힘도 길러지는 거 아닌가.     


이렇게 시(詩)를 읽는 이유도. 밑줄 긋고 동그라미 치면서 ‘정확히’ 시적 화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전달받고 외우는 대신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반복해서 읽으며 어떤 것을 내 안에서 길어 올릴 수 있을 때까지 들여다보며 생각하라는 것도 마찬가지. 낯선 시를 맞닥뜨리고, 안으로 들어가 질문하고, 나에게 부딪쳐 나오는 반향에 귀 기울이고, 나의 경험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일. 생각하는 근육을 키우는 일. 무엇보다 우리가 익혀야 할 삶의 도구이자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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