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이니 내가 행하리라 ; 안나 까레니나
10월 31일, 시월의 마지막 날에 나의 발걸음은 퇴근을 하자마자 동네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 오늘을 놓치면 또다시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ㅇㅇ데이 마케팅의 일환으로 한 아이스크림 브랜드가 매달 31일에 맞춰 이벤트를 한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직원의 설명으로는 6개 들이 용량 상품에 한해서만 사이즈 업을 해주는 이벤트 행사라고 한다. 평소 3개만 먹었던 터라, 6개라면 좀 양이 많을 것 같아 그냥 돌아갈까 생각해보지만 다음 달은 31일 없는 11월이니, 이왕 마음먹었던 '그 일'을 결행하기로 한다.
"민트 초코 칩으로 주세요" 나의 주문에 점원은 "나머지 5개는 어떤 맛으로 하시겠어요?"라며 묻는다. 나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확고한 의지를 밝힌다. "모두 다 같은 걸로" 잠시 당황한 그는 이내 알겠다는 듯 쇼케이스에서 스쿱을 내려놓고 업소용 냉동고로 가더니 아예 커다란 박스 하나를 들고 나온다. 포장 테이프를 뜯으며 "민트 초코 칩을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알듯 모를 듯 한 미소를 보이며
'취향 존중이죠, 다른 사람의 취향이긴 합니다만...'
한 달 전, 지난 추석에 고생했을 아내를 위해 이 가게에 들른 적이 있다. 메뉴를 죽 둘러보니 '엄마는 혹성인', '폭풍과 함께 사라지다','연애에 빠진 딸기'처럼 어떤 것들은 전혀 아이스크림 답지 않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과연 어떤 맛일까? 아이스크림이 아니더라도 평소에도 세상의 모든 맛이 궁금한 나로서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네이밍이지 않을 수 없다.
다이어트 때문에 금주와 더불어 금빙(禁氷)을 실천하고 있지 않다면 하나 하나 골라 맛을 볼 텐데...아쉬움을 남기며 나름 3가지 맛을 엄선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나와는 달리 음식에 관한 한 '먹어봤자 다 아는 맛'이라는 철학을 가진 아내는 사온 메뉴를 들어보더니 "나는 민트 초코 칩 아니면 안 먹는데" 며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아니, 자기가 무슨 한놈만 패는 싸움꾼이라도 된다 말인가?
그러지 말고 같은 그린 계열의 피스타치오 아몬드가 있으니 아쉬운 대로 먹으라 하니 "무슨 소리야, 그게 그거 하고 맛이 같아? " 얼음보다 차갑게 말하며 사온 아이스크림에는 결국 한 스푼도 대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 아이스크림 집을 가는 이유는 다양한 맛을 시도하려는 것인데, 손님들이 모두 이런 외고집 고객들이라면 굳이 31이 아니라 베oo 라oo 11이라고 해도 벅찰 것 같다.
상상력은 결핍되고 자기 신조만 굳센 여자.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아, 전에 내가 아이스크림 끊기 전에는 내 맘대로 골라와도 아무 얘기 없다가 이제 와 웬 편식이냐고 구시렁 구시렁댔다. 그랬더니 그녀는 "그땐 같이 먹을 사람의 결정을 따라줬을 뿐이야" 라며 이제부터 혼자 먹을 거라면 먹고 싶은 것만 먹겠노라고 아이스크림의 취향 독립선언을 했다. 그러면서 던지는 한마디 "20년을 살았는데도 당신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지?"
그때까지 나는 몰랐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지금은 한 가지는 확실히 안다. 시월의 마지막 날, 어디 한번 최애 맛으로만 한통 꾹꾹 채웠왔으니 실컷 드셔 보시길...
나중에 한 가지 베라만 먹었더니 입맛만 베라 버렸다고 불평만 해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