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를 알지 못하는 철부지
1학년 가을 학기 어느 날, 퇴임을 앞둔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철부지란 계절이 바뀐지도 모르고 마냥 한철인 줄 아는 배짱이 같은 인생이다'라고...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건만 아직 신입생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학생들에 대한 충고였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누군가는 여전히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잤고 누군가는 뒷문으로 수업을 제꼈다.
그렇게 땡땡이치고 본 것이 학교 근처 동시 상영관에 걸린 '꿈' 이였다. 조신이라는 승려가 흠모하던 달례 아가씨를 범하여 자식을 낳고 부러움 없이 살았으나 그녀의 마음까지 얻지 못한 지난 삶을 되돌아보니 한낮 꿈이었다는 내용이다. 흔한 일장춘몽의 이야기였지만 웬일인지 달례가 석양을 바라보며 읊조리던 노래만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세상 일 즐거워 한가롭더니
고운 얼굴 남몰래 주름 잡혔네
서산에 해지기를 기다리느냐
인생이 꿈같음을 깨달았느냐
하룻밤 꿈 하나로 어찌 하늘에 이르리오'
그날 영화 속 늙은 달례의 회환과 강단에서의 노교수의 한숨은 어쩌면 같이 닿아있는지도 모른다. 인생 한철도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것. 그러나 그 시절의 나는 그런 평범한 사실을 몰랐고 애써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절부지였던 것이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게' 되어버린 나이가 되어버렸다. 지난밤 가을을 알리는 비가 내린지도 모르고 평소처럼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차가운 공기에 감기 기운이 들고 만 것이다.
아직 여름인 줄로만 알고 여전히 '반팔 인생'으로 살아왔는데 슬슬 긴 폴로티라도 꺼내 입어야겠다. 비에 젖은 낙엽을 밞으며 나도 따라 읊조린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Le vent se lve! Il faut tenter de vivre)
아침 산책
여름 한 숨 낮잠만 같더니 어느새 바람이 낯설다
그 매섭던 매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돌아가는 길, 어깨 위 마른 잎이 무겁기만 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