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원영 Jul 19. 2019

블랙홀

SF 초단편 소설

 ...여긴 어디지?    


 마지막 기억은, 우주선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기 직전의 얼어붙은 듯한 공포감이었다. 물리적인 현상이 일어나기도 전에 나는 정신을 잃었고, 동료들이나 우주선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블랙홀을 통과한 것일까?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주변은 기분 나쁠만치 조용하다.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난 살아 있는걸까. 내가 아는 것은, 인식하는 내가 있다는 것 뿐이다. 나는 내 몸을 인식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팔다리가 있는지, 뭐가 보이긴 하는데 그게 내 눈을 통해 보이는건지 머리에 떠오른 영상인지 구분할 도리가 없었다. 무언가를 보려면 시선을 돌려야 할텐데, 당최 내 몸이란 것을 인식할 수가 없으니 고개를 돌린다는 등의 움직임을 생각할 수 조차 없었다. 이 감각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의식이라 부를 수 있는, 나란 존재가 여전히 있음을 알려주는 자의식이 우주 공간에 에너지 형태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까만 우주 공간은 생각보다 더 어둡다. 이름 모를 성단, 성운, 항성, 빛을 반사하는 행성들이 보이긴 했지만 우주 사진에서 보는 것만큼 화려하진 않았다. 거대한 운석이 내 앞으로 돌진해왔지만, 놀라서 움츠린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 실제로 다치지도 않았고 운석이 ‘내가 있던 자리를 통과했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나는 우주 공간 상 어떤 좌표에 있는 존재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거기 있다고 생각한 이유-그 운석이 나를 향해 오고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단 한가지, 내가 그 운석이 오는 것을 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타트랙을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볼 때 운석이 달려드는 장면을 스크린 정면에서 보는 것과도 비슷한 경험이었다.      


[난 이 우주계의 어떤 물질과도 반응하고 있지 않구나!]     


 어쩌면 나는 죽어서 유령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블랙홀을 통과해서 의식만 남은 것일까? 빛조차도 끌어가는 거대한 수렁도 의식,영혼- 무어라 불러야할지 모를 이 자아만은 파괴할 수 없는걸까? 여기는 대체 어디란 말인가. 나는 6년 8개월 전에 본, 아직도 눈에 선한 지구의 모습을 떠올렸다. 갑자기 장면이 바뀌어 지구가 나타났다. 나는 지구 옆에 바로 와있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마음이나 생각은 빛보다 빠르다, 뭐 이런건가? 소름 돋을 등이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며 지구를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파랗고 아름다워야 할 지구는, 불에 타고 있는 것처럼 적색의 이글대는 별로 바뀌어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이 틀림없다. 내가 우주로 나온 동안 무슨 일이 생겼단 말인가? 물론 우리의 우주 탐사 목적은 테라포밍에 적합한 행성으로 판명된 X-24을 실제로 조사하는 것이었고, 그만큼 지구의 상황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수년 내로 운석충돌이라도 맞을만한 상황은 분명히 아니었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푸른 지구의 마지막 시기를 떠올리자, 화면이 바뀌듯 지구 멸망의 광경이 내 의식 속에 펼쳐졌다.


 불꼬리를 머금은 운석이 땅을 때렸고, 갈라진 땅은 입을 벌려 건물과 산천을 집어 삼켰다. 바닷물은 대륙을 침범했다. 화산이 폭발하고, 하늘에서는 유황비가 내렸으며, 사람들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쉽게 죽어나갔다. 그것은 과거가 아니었다. 멸망한 '후'의 지구를 보고 있던 나는 멸망 '중'인 지구를 보고 있었지만, 이것이 과거를 의미하진 않았다.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과거,현재,미래는 인간의 단어일 뿐이었다. 시간의 흐름을 꾸며서 기록한 영화 필름 중에, 감독이 오후 3시의 장면과 오후 7시의 장면을 꺼내어서 동시에 보고 마치 지금 일어나는 일처럼 영상을 재생시킬 수 있듯이, 난 멸망 중인 지구를 재생시키고 있었다. 그것은 엄연히 존재하고 살아있는 현재였다. 나는 괴로워서 더 이상 그 장면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나의 지금으로 돌아갔다. 물론 그것은 '과거로 갔다가 현재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시간 순-이라 믿어지는 일련의 순서-에 따라 정렬된 필름 중 멸망 '중‘의 필름을 내려놓고 멸망 '후'의 필름을 집어든 것과 같은 행위였다.      


[혹시, 나 신같은게 되기라도 한걸까?] 


 시공간을 초월하고, 존재하면서도 실체를 인식할 수 없고, 실체가 없으면서도 실재하는 이상한 정신체의 상태. 그 어느 때의 우주의 모습이라도 '현재'로 만들 수 있다면, 우주 최초의 모습에서부터 다시 보기 시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천지창조의 재생이 아닌가? 혹시 우주의 끝, 경계라는 것이 있을까? 우주 밖이라는 시공간은 존재할까? 나는 우주의 밖이라는 곳을 생각하고 그곳에 가기로 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암흑이 날 뒤덮었다. 깜깜한 화장실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별이 순식간에 꺼진 듯 했다. 빛도 소리도 공기나 공간의 느낌도 그 무엇도 없었다. 내 신체를 인식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순간에는 내 존재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단지 뭔가 끊임없이 떠올리고 생각하고 있는 내 자신의 의식을 지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이 완벽한 無는 아니구나,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다소 겁에 질린채로, 열심히 생각을 했다. 이곳이 아닌 다른 장소와, 우주의 시작과, 성장과, 종말에 대해. 


 이곳이 우주 밖의 무의 시공간이라면 무언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발칙하게도, 난 창조를 하려고 했다! 어떤 식으로 해야할지도 모르면서, 천문학 지식을 동원해서 어떤 장면을 그려내려 애썼다. 에너지의 근원이 되는 강한 힘을 가진 입자들이 서로 반응하고, 뜨거운 국물처럼 엉겨서 입자-반입자를 계속해서 생성,소멸시키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온도에서 차차 식어가며 안정적인 원자를 만들고 등등. 이런 저런 생각을 차분하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내가 그 과정을 대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곧 나는 그 작업을 때려쳐 버렸다. 과학자들도 알 수 없었던 그 과정을, 어설픈 내 기억력에 의지하여 재현하려 하다니. 난 곧 포기하고 하릴없이 어둠 속에 그냥 있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는 무거운 어둠 속에서 무언가 빛이 보였다. 그것은 여러 색깔이 계속 나타나는 비누방울처럼 보이기도 했고, 점쟁이들이 사용하는 수정구슬처럼 보이기도 했다. 크기는 가늠할 수 없었다. 내 신체가 없기 때문에, 비교대상이 하나도 없는 그 어둠 속에서 구체의 그 물체를 '내 주먹만하다'라거나 '지구만하다'라고 묘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나는 그 기묘하게 빛나는 구체를 살펴보았다. 그 안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푸르고 흰 빛이 일렁이며 무언가 폭발하듯 퍼져나가기도 하고,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공간이 휘는 것처럼 왜곡이 일어나기도 했다. 일렁이는 빛덩어리가 맥동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세포분열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곧 그것이 스티븐 와인버그가 묘사한 ’최초의 3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유는 없었고, 그냥 알게 되었다. 그것들은 내가 아무렇게나 정해준 최초의 '값'을 가지고 알아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장면 하나하나가 마치 두터운 책의 한 페이지 페이지에 실려있는 삽화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한 웅큼의 페이지를 뒤로 넘겼다.


 이제는 맑게 개이고, '별'들이 드문드문 들어찬 우주가 나타났다. 놀랍게도, 지구같이 생긴 푸른 별이 있었다. 나는 내 창조물인 우주를 들여다 보며 지구처럼 보이는 별에 이름을 붙여주려고 했다. 하지만 곧 관두었다. 내가 이름을 붙인다 해도 그걸 누가 알아주겠는가? 그곳에서 번식할 생명체들이 알아서 붙일 일이다. 지구처럼 보이는 이름없는 별은 번개와 화산폭발 등으로 난리를 치더니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비가 내려 강이 생겼고,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산소를 내뿜는 초기 형태의 식물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산소를 이용하는 수중 생물도 생겼고, 황을 먹고 자라던 미생물들이 산소를 이용하는 미생물들과 공존의 길을 택하여 그들 세포의 일부분이 되었다. 바다 속에 뿌연 부유물들이 늘어나고, 영양가 넘치는 젤리같은 상태가 된 바다 속에는 조금씩 큰 생명체가 생기기 시작했다. 조금 지루해진 나는 책장을 뒤로 휙 넘겼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도 재미없게도, 백과사전에서 봤던 거대한 공룡들이 기이하게 생긴 나무의 잎사귀를 뜯어먹고 있었다. 설마 그 어떤 우주라도 이런 과정으로 생겨나서 다 똑같은 모습의 생명체가 번식하게 되는거야? 이거 너무 재미없잖아- 조금 뾰루퉁한 기분이 되어, 난 책장을 거의 끝으로 넘기듯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새 우주에서 진화한 생명체는 인간과 너무나 유사했다. 끝에 가까운 이 별의 모습은 지구와 몹시 비슷했다. 나는 초조한 마음이 되어서 어떻게 봐도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몇가지 생각을 더 해본 끝에, 속으로 비명을 올릴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그 안에서 '나'를 보았다. 옆에서 같이 걷고 있는 친구들도 보았고, 에어컨을 켜고 TV를 보고 있는 부모님도 보았다. 책은-실제로 책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한 페이지도 안 남은 것 같았다. 아까 본 것과 똑같이, 지구-이제는 그렇게 부를 수 있게 된-가 대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말도 안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겠어.] 


 나는 황급히 우주선이 블랙홀에 다가가던 때를 떠올렸다. 우주에 기록된 사건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면, 정신을 잃은 후 내게, 그리고 동료들에게 일어난 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주선이 블랙홀을 집어 삼키는 장면이 재생되었다. 하지만 필름이 가위질된 것처럼, 모든 것이 뚝 끊겼다. 블랙홀에는 시간도 사건도 그 무엇도 존재치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블랙홀을 통과하기 전에 그랬듯이,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

.

.



...여긴 어디지?   

 

마지막 기억은, 우주선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기 직전의 얼어붙은 듯한 공포감이었다. 물리적인 현상이 일어나기도 전에 나는 정신을 잃었고, 동료들이나 우주선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블랙홀을 통과한 것일까?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주변은 기분 나쁠만치 조용하다. 



10년도 더 전에 정말로 우주 공간을 부유하는 듯한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그 꿈의 많은 부분을 그대로 묘사해서 약간의 상상력을 덧붙였습니다. 너무나 생생해서 정말 환상을 본 기분이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