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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마 Sep 09. 2016

화를 다루는 어른스러운 방법

살다보면 여러 사건으로 인해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있다. 그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인간관계다. 가족간이건 친구나 연인, 직장동료 등 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늘 즐거우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어디선가 하나씩은 작건 크건 삐그덕대는게 인생인가 싶을 정도다.

누군가와 크게 부딪히건 작게 속으로 거슬려하는 것이건, 이런 마음 상태가 되면 참으로 불편하고 불쾌해진다. 성내는 마음, 시비를 가리고 내가 더 낫다고 주장하고픈 마음, 지기 싫은 마음 등이 뒤섞여 괴로운 에너지 상태로 떨어진다. 상대를 공격하고, 주변에 뒷담화를 하여 내 편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이 불편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한다.

좀 더 깊이 들어가보면 시비를 가리고 승리감을 느낀다고 불편함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순간의 통쾌함은 있을지언정, 세상엔 한쪽 입장만 100% 옳은 일은 존재하지 않기에(모든 것이 상대적이므로), 마음 한구석에는 찜찜함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미움에서 파생되는 감정의 찌꺼기들은 부정적인 에너지에 속하므로, 에너지 차원에서도 심신에 악영향을 준다. 마음은 계속 불편하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자기를 욕하는 사람에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제자가 이유를 묻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물었다.

"누가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그런데 내가 그 선물을 받지 않으면 선물은 누구의 것이냐?"
"그야 선물을 준 자의 것이지요."
"욕도 마찬가지다. 누가 욕을 한다해도 내가 이를 받지 않으면 그건 그 사람의 것이다."

미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 부정적인 마음을 품으면 그것은 그의 것이기 이전에 나의 것이다. 그래서 사람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보다 빨리 평상심을 되찾고 싶으면 상대에게 갖는 부정적인 마음 자체를 어떻게 다룰지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상대에게 화살을 돌리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나 자신에게도 부정적인 오물을 던지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인식을 해야 한다.

무슨 계기로 상대가 미워졌건 간에, 본질적인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하면 그 시도 자체만으로 마음이 좀 가벼워진다. 본질에 가까울수록 무게감이 있고, 무게감은 곧 안정감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지엽적인 것만 주변에서 건드리는 경우에는, 잠시 해결된 것 같다가도 다시 같은 문제로 또 괴로워진다. 심리치료를 받을 때에도 감정의 표출이나 과거의 스토리 등 주변적인 것만 건드리고 끝나면 해결되지 않는다. 핵심은 그래서 지금 현재 내가 세상을 어떻게 수용하고 소화하여 밖으로 표출하느냐이다.

친구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화가 났다. 그 친구는 왜 늘 그 모양이지? 나한테만 그러나? 날 무시하나? 그러고보니 누구누구한테는 안 그런다는데 나랑 만날 때만 그러지. 이제 보니 저번에는 내 말도 끊고 지 말만 하고....

이것이 대부분의 생각이 흘러가는 흔한 루트이다. 본질적인 이유에서 점점 멀어지고 화를 돋구는 증거를 찾아내는 것에 골몰하면서 사태는 더욱 꼬인다. 싸움이 일어나면 상관없던 옛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것도 저 사고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내가 화나고 실망하고 짜증나는 이유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사실 근본은 매우 단순하다.

'내 맘대로 안되서' 이다.

친구가 내 맘에 쏙 들게 일찍 나오고, 말도 안 끊고, 나한테 잘해주지 않아서 싫은 것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이 그러는거 아니다, 친구끼리 그럴 수 있느냐'는 등 당위성의 힘을 빌려 상대에 대한 내 화를 드러낸다. 그러니 서로 말이 많아지고 언성은 높아진다.

우리는 그렇게 정의롭고 고결하고 사회의 선을 구현하기 위한 분노를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 이전에 내 욕구를 좇아 행동하는 작은 존재가 우선한다는 것을 냉철하게 되새김질 할 필요가 있다. 전자라면 이 사회에 부조리가 없을 것이다.

내 맘대로 안된다는 이유로 성을 내는 것은 아이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장난감 안 사준다고 드러누워 우는 것이나, 상대가 내 맘에 드는 행동을 안 했다고 (보다 사회화된 세련된 방법으로) 논리싸움을 하거나 뒷담화를 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표현 방법이 정교하고 복잡해졌다는 것, 머리를 많이 쓴다는 것 외에는 다른 점을 찾지 못하겠다.

세상이 나를 위주로 움직이는게 당연하다 여기는 사람일수록 화가 많고 충돌이 많다. 겉으로 드러난 것이건 속에서 괴롭히는 것이건 말이다. 내가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인만큼 정확히 똑같은 무게로 타인 또한 그러하다. 이걸 모르는 이는 자기의 문제만이 크고 중요하다. 그 시야에는 타인이 들어올 틈이 없어 배려와 공감이 자리를 잡을 기회조차 없다. 진짜 어른스러운 어른은, 어린아이같이 아우성치는 내 욕구의 충동을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래서 실제로 내가 화나고 불쾌한 것이 남탓인게 아니라 스스로의 관점에 의한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는게다.

내 맘대로 되지 않으면 기분 나쁜게 당연하지 않냐, 그걸로 맘 상하는게 잘못된거냐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관계 속의 작용은 쌍방향이다. 그래서 상호작용이라고 한다. 상대가 주요 변수라는 의미다.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때 실망하는 것은 에고를 가진 인간이라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상대가 나에게 맞추길 요구하는게 자연스럽다는 것은 아니다. 상대는 내 요구에 응할 의무도 없고 나에겐 상대가 나에게 맞추길 요구할 권리가 없다. 부모 자식간도 마찬가지이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에 대해 부모가 그럴 권리를 가진다고 착각한다. 자기가 낳아 책임있게 길러야하는걸 마치 빚이라도 지운 양 생색을 내기 때문이다. 누가 낳아달래?라는 사춘기 반항같은 멘트는 숙고할 가치가 있다. 이것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평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타입일 확률이 높다.

세상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 그리고 그 세상에는 나를 제외한 타인 역시 명백하게 포함된단걸 아는 것이,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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