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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재스민 Oct 25. 2019

플라워

혜진의 이야기-꽃과 기억, 그리고 환상

플라워(2017년 욘 가라뇨 감독), 그리고 혜진의 이야기


  <플라워>의 주인공인 아네는 매주 목요일마다 매번 다른 종류의 꽃들로 구성된 다양한 색깔의 꽃다발을 선물 받는다. 꽃다발들은 하나 같이 아름답고 우아하다. 아네는 의사로부터 이른 폐경을 선언받고 우울해있던 참이었다. 게다가 아네의 남편은 무심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참에 매주 현관에 도착하는 꽃다발은 아네의 삶에 생기를 준다. 문제는 누가 보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남편이 보낸 줄 알고 물어보는데 돌아온 남편의 대답이 더 절망적이다. 남편은 “내가 왜 꽃다발을 보내.”라고 대답한다. 그 말은 들은 아네는 남편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가 없다.

   무심한 남편도 자신의 아내에게 목요일마다 배달되는 꽃다발에 신경이 거슬린다. 아내에게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이해되지 않는 현상의 반복이 거슬렸던 게 아닐까. 아네는 그런 남편의 신경을 거슬리지 않으려고 배달된 꽃을 숨겼다가 자신의 사무실 꽃병에 꽂아놓는다. 낭만적 상상이 담긴 꽃다발이 꽂혀 있는 사무실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아네만의 공간으로 바뀐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꽃 배달이 끊긴다. 그리고 그 시점은 우연하게도 같은 공사장에서 근무하던 직원의 죽음과 일치한다. 그 직원은 높은 크레인 위에서 근무하던 베냐트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베냐트가 늘 앉아 있던 크레인 운전석에서 아네가 잃어버렸던 목걸이가 발견되면서 아네는 꽃다발을 보낸 사람이 베냐트였다고 확신한다. 이야기를 몇 번 나누긴 했지만 특별히 친한 관계도 아니었기에 의아하지만 아네는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때에 꽃다발을 보내 자신을 위로해준 베냐트가 사고를 당한 현장에 찾아가 꽃다발을 놓는 일을 반복한다. 아네는 자신이 받았던 위로를 이번에는 베냐트에게 되돌려주고 싶어 한다.

  베냐트는 아들 부부에게 지나치게 간섭하는 어머니 때문에 부인과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고 직장에서도 지상과 멀리 떨어진 높은 크레인 위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늘 고독한 사람이었다. 베냐트의 위치에서 망원경으로 보면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은 공사장 안 트레일러 사무실에 앉아 있는 아네였다. 베냐트에게는 늘 조용하고 여성스러운 아네의 존재가, 아네에게는 목요일마다 꽃다발을 보내주는 알 수 없는 사람의 존재가 건조한 삶에 윤활유 같은 역할을 했을 터였다. 더군다나 아네는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폐경이 왔다는 선언을 의사로부터 들은 터였다. 여자로서 기능이 다 됐다는 선언을 받아 우울한데도 남편은 아네의 기분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그런 상태에서 배달되어온 꽃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남자일 가능성이 있는 미지의 인물로부터 꽃을 선물 받는다는 것은 아네가 아직 누군가에게는 여자로 느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혜진의 이야기 - 꽃과 기억, 그리고 환상


  혜진은 꽃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안다. 물론 그것은 자신만이 간직한 의미일 것이다. 혜진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생긴 버릇이 있는데 기분이 우울할 때 자신만의 매뉴얼을 정하고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다. <우울 모드 사용법>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인 매뉴얼인데 실상은 평범하고 소박하기 그지없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나 이유 없이 우울한 기분이 될 때 혜진은 집을 나서서 제일 먼저 서점에 들른다. 서점에서 마음에 끌리는 책을 하나 고르고, 그다음에는 꽃집으로 간다. 꽃집에서 그날 자신의 기분에 가장 어울리는 꽃을 세 송이 정도 고른다. 그리고 늘 가는 카페로 간다. 꽃을 앞에 두고 책장을 뒤적이며 커피를 마시는 것이 우울 모드 시, 혜진의 매뉴얼이다.  

  서점이나 카페 가기는 일반적인 행위일지 몰라도 화원에 가서 꽃을 고르는 행위는 남과 차별되는 것이라고 혜진은 자부했다. 자신을 위해서 꽃을 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혜진은 안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는 또 다른 자기를 위로한다는 심정으로 꽃을 골랐다. 꽃을 고를 때는 마음속에 있는 자신에게 ‘오늘은 어떤 꽃이 너의 마음을 위로해줄까.’라고 말을 건다. 최근에 산 꽃은 보라색 ‘스위트피’다. 보라색의 꽃잎이 힘이 없는 듯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풀 죽은 듯, 혹은 겸손한 듯 보이지만 우아함과 순수함은 잃지 않은 모습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보라색은 혜진의 어머니가 좋아하는 색깔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을 때 혜진은 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하지만 혜진의 어머니는 돌아가신 지 벌써 5년이 되었다. 우울 모드 매뉴얼대로 시행했는데도 기분이 영 풀리지 않을 때, 혜진은 보라색 꽃송이를 들고 어머니의 재가 묻혀 있는 수목장을 찾았다.


  <플라워>에서 아네는 베냐트의 사고 현장에 정기적으로 찾아가 꽃을 새 것으로 바꾸어놓는다. 새로운 꽃을 가져다 놓는 사람은 아네와 베냐트의 어머니, 두 사람뿐이다. 베냐트의 어머니는 아네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다. 베냐트의 전 부인은 정작 한 번도 사고 현장을 찾아온 적이 없으며 베냐트의 어머니에게도 냉정하게 대하기 때문에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함을 달랠 길이 없었던 어머니는 아네를 만나면서 위안을 받는다. 꽃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신선하다. 혜진은 꽃의 기운이라고 믿고 싶었다. 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뭔가 이야기를 걸어오는 것만 같다. 특히 보라색 꽃을 보면 어머니가 소녀처럼 했던 말이 들려왔다. ‘난 보라색이 좋더라.’라고. 어머니는 돌아가신 후에도 늘 그렇게 혜진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머니는 세월이 아주 많이 흘러도 계속해서 그렇게 말을 걸어주실까. 수목장에 가보면 깨끗하게 정리된 자리들이 많이 눈에 띈다. 고인을 누군가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 꽃이다. 수목장에는 조화가 많이 보인다. 하지만 조화라고 해도 먼지에 찌들지 않고 깨끗하다는 것은 누군가 관리를 잘하고 있다는 뜻이다. 혜진은 어머니의 자리에 보라색 스위트피 꽃다발을 내려놓으며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려고 애를 썼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에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했다. 당장이라도 ‘혜진아’라며 자신을 불러 세울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젠 점점 그 목소리가 희미해져 간다. 혜진은 어머니가 좋아하는 꽃을 가져다 놓으면 어머니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다시 생생하게 들리지 않을까 하는 허망한 기대를 가져본다. 꽃으로 인해 떠오르는 어머니의 이미지에 혜진은 매달리고 싶을 때가 있다.  

  베냐트의 어머니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베냐트는 생전에 자신의 시체를 의대에 기증하기로 서약했기 때문에 무덤을 만들지 못했다. 사고 현장만이 유일하게 아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곳에 누군가가 아들을 기억하고 늘 싱싱한 꽃을 갖다 놓는다는 것은 베냐트의 어머니에게 작은 희망을 준다. 아들을 향한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혜진은 어머니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혜진과 어머니 사이에는 오직 보라색 꽃만이 있을 뿐이었다. 혜진은 유복자였다. 다른 형제도 없다. 사진으로 본 아버지의 모습은 당연히 낯설었다. 어머니는 꽃을 좋아해서 작은 마당에 튤립이며 장미를 심고 가꾸는 데 정성을 쏟았다. 혜진은 어버이날에 의례적으로 하는 카네이션 꽃 말고는 어머니에게 꽃 선물을 해본 적이 없다. 어머니는 아마 아버지한테서도 꽃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었으리라. 어머니는 금방 시들어버릴 꽃보다는 오래 볼 수 있는 화분을 더 좋아하셨기 때문에 혜진이 작은 화분을 사들고 온 적은 있었다. 혜진은 어머니 생전에 꽃다발이라도 선물할 걸 그랬다는 후회를 했다. 말로는 쓸 데 없다고 하시지만 분명 속으로는 좋아하셨을 거라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됐다.


  꽃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베냐트의 어머니와 아네는 마치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된 것처럼 베냐트의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아네는 자신도 모르게 며느리의 위치에 서게 된 것에 당황한다. 불륜을 저지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남편 보기가 민망할 때도 있다. 베냐트와는 직장 동료라는 것 이외에는 어떤 교류도 없는 사이였기 때문에 본인도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색하다. 반면 정작 베냐트의 아내인 라우더스는 베냐트를 기억 속에서 빠르게 지우고 싶어 한다. 꽃 가꾸기가 취미였던 베냐트가 남기고 간 화분을 인정사정없이 쓰레기 봉지 속에 쳐 넣는다. 사고 현장에 찾아가 본 적도 없다. 의과대학에서 보내온 남편의 유해도 받기를 거부한다. 라우더스에게 죽은 남편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베냐트가 아네에게 정기적으로 꽃다발을 선물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자, 라우더스는 질투심을 느낀다. 아무에게나 꽃을 선물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꽃은 환상을 만들어낸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환상, 누군가를 좋아하는 표현이 전달될 거라는 환상이다.


  혜진은 그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안다. 꽃을 통해서 돌아가신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어머니의 영혼과 만난다는 것도 다 환상일 뿐이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환상도 있다. 어머니는 죽고 이 세상에는 남아 있는 것은 이제 흙이 되어버렸을 유해뿐이라는 사실밖에 없다면 이 세상은 더 견디기 힘든 곳이 됐을 것이다.


  <플라워>에서 라우더스는 아네에게 따진다. 베냐트가 꽃을 줬다는 증거는 아무 데도 없다고. 그건 그냥 아네의 착각일 뿐이라고. 꽃을 배달시킨 사람이 베냐트라고 굳게 믿고 있던 아네는 라우더스가 화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서서히 현실로 돌아온다. 미지의 사람이 설사 베냐트였다고 해도 그것이 지금 무슨 소용이 있는가. 베냐트의 어머니와 만나서 베냐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아네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베냐트였건 아니었건 무력했던 순간을 버티게 해 줬던 것은 누군가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믿음이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힘든 순간을 넘기게 도와준 것은 아네가 품은 환상이었기 때문이다. 고비를 넘긴 아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힘이 생겼으며 그 뒤로 베냐트의 어머니, 테레를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베냐트의 어머니는 베냐트에 대한 환상을 함께 나눌 상대가 없어지자, 치매에 걸리고 만다. 그게 치매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혜진은 생각했다. 혜진은 꽃에 대해 자신이 품고 있는 것 역시 환상일지 모르지만 굳이 그것을 깨뜨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언젠가 필요가 없어지면 영화 속의 아네가 그랬듯이 그냥 놓아버리리라.


  혜진은 기억한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일 년 전부터 자신이 가진 모든 화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혜진이 어머니 생일마다 선물했던 화분들까지도 모두 내다 버려서 은근히 섭섭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가 정리한 것은 화분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삶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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