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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재스민 Oct 20. 2019

내 어머니의 인생

세진의 이야기-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

내 어머니의 인생( 하라다 마사토 감독 2011)


  * 세진의 이야기 -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


  세진은 어머니를 떠올릴 때 아무 느낌이 없었다. 아니,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세진은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았다고 하는 말이 맞다. 어머니라는 여자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해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분노가 커졌으며 상처를 후벼 파는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세진이 5살이 됐을 때 갑자기 집을 나갔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던 새벽의 기운은 5살 아이에게도 심상치 않게 전달됐다. 유리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세진은 벌떡 일어나 방 밖으로 나왔다. 엄마의 치맛자락이 유리문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엄마를 외쳤다. 치맛자락이 잠시 멈춰있는 듯했지만 이내 밖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로 엄마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집에서 엄마 얘기는 금기사항이었다.

  세진을 키운 사람은 시골에서 올라온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정이 많은 분이라 세진에게 따듯했지만 엄마 얘기만 나오면 무섭게 대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아버지는 늘 밖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돌아오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귀가하기 전에 잠이 든 적이 많았다. 아버지는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분이셨지만 지나치게 고지식했고 무뚝뚝했다. 세진이 울 때 한 번도 부드러운 말로 달래준 적이 없었고 그때마다 말없이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세진은 엄마가 왜 나를 버렸을까 수도 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다. 내가 크게 잘못한 게 있었을까. 자신이 엄마가 된 지금도 그 생각은 멈추질 않는다. 어렸을 때 봤던 엄마의 모습이 실은 환시가 아니었을까. 애초부터 엄마란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의심해보기도 한다. 그만큼 엄마라는 존재는 세진에게는 실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아득했다. 엄마 자리에는 할머니가 있을 뿐이었다. 세진에게는 둘 다 가질 수 있는 행운은 주어지지 않았다. 남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세진에게는 그렇게나 힘든 일이었다. 엄마를 생각하면 할머니를 배신하는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그런 느낌은 계속 됐다. 

 그리움의 대상을 함께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 또한 세진이 겪는 혼란이자, 분리되는 느낌이었다. 세진은 <내 어머니의 인생>의 코사쿠가 어머니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그리움과 원망의 두 가지 그림자를 보았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코사쿠의 가족은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대만으로 가게 됐는데 어머니는 해협을 건너다가 공습을 받게 될 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아들만큼은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본가에 맡기고 간다. 본가에서 코사쿠를 8년간 키운 사람은 할아버지의 첩인 토장 할머니였다. 코사쿠는 어머니가 자신을 본가에 맡기고 가던 날을 평생 잊지 못한다. 이유를 알지 못했던 코사쿠는 어머니가 자신을 버리고 갔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어머니를 다시 만나 살게 됐고 현재도 어머니와는 별문제 없이 지내고 있지만 그때의 기억은 늘 가슴 한 구석에 멍처럼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코사쿠는 가장 중요한 성장기였던 8년 동안 어머니를 잃어버렸으며 그때 생긴 공간은 어머니가 현재 곁에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머니가 본가에 자신을 맡겼을 때 걸어줬던 목걸이를 늘 지니고 다닌다. 코사쿠는 어머니가 곁에 있어도 늘 어머니가 그리운 이상한 상태에 빠져 있다. 그 근원은 사춘기 시절 8년간 겪었던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이었다.


  세진은 코사쿠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신 본가에서 차려준 밥을 먹지 않고 꼭 할아버지의 첩인 토장 할머니의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은 이유가 짐작이 된다. 코사쿠는 자신을 버린 어머니 대신 거둬준 토장 할머니에 대한 의리라고 생각했음에 분명하다. 본가에서 첩 할머니는 자신의 위치를 찾기가 힘들었으리라. 할아버지의 부인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부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위치가 아닌가. 세진의 눈으로 보기엔 코사쿠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모가 없는 집에서 코사쿠의 위치는 모호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런 모호한 위치는 바로 세진이 겪어왔던 자리이기도 했다. 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지만 그 집은 자신이 있기에 적당한 장소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머니에게 거부당했다는 사실이 마음을 짓누른 탓에 세진은 이곳이 자신을 위한 장소가 아닌 것 같았다.  


  영화에서 코사쿠는 결국 어머니와 화해하고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놓는다. 그 중심에는 어머니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있다. 그것은 어머니가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던 코사쿠의 시였다. 그 시는 코사쿠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썼던 시다.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버린 어머니는 그 시만큼은 외우고 있었다.


“비가 내렸다

교정에는 수많은 물웅덩이가 생겼다

태평양, 지중해, 일본해, 희망봉, 통나무 그네의 뒤편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지구 어디에도 없는 작고 새로운 해협

어머니와 건너는 해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지구 어디에도 없는 작고 새로운 해협

어머니와 건너는 해협”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앞에 있는 자신의 아들도 알아보지 못한 채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가득 담아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시를 외운다. 어머니와 떨어져야 했던 자식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시를 가슴속 깊이 품고서, 이유가 어쨌든 어머니는 자식을 버린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와 건너는 해협’은 코사쿠가 그토록 갈망했던 이상향이다. 현실에서는 결코 실현되지 못했기에 영원히 환상으로만 남을 장소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성공해도 결코 갈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누적된 시간만큼 욕망도 커진다.


  세진은 그 장면에서 더욱더 가슴이 터질 듯 요동쳤다. 세진은 엄마가 유리창 문밖으로 사라질 때 따라가서 매달리지 못했던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엄마의 손을 잡고 골목길을 나서는 꿈을 꾸던 밤이 얼마나 많았던가. 세진은 자신의 시를 쓰고 싶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엄마와 함께 걸어가던 골목길’ 그리고 세진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묻고 싶었다. 코사쿠가 치매에 걸린 자신의 어머니에게 “당신은 아들을 버렸죠?”라고 물었듯이 세진도 그렇게 묻고 싶었다. “당신은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를 버렸죠?”하지만 코사쿠와는 달리, 그런 말을 물을 수 있는 상황도 기회도 세진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건 한참 세월이 지난 후이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런 일은 대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가능해진다. 부모님과 나 사이에 발생하는 역동이 사라진 다음에야 상대방을 객관적인 위치에서 볼 수 있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코사쿠가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은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난 뒤였다. 기억을 잃어버린 존재란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존재가 됐다는 뜻이다. 코사쿠는 그제야 깨닫는다. 상실감은 자식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치매에 걸린 코사쿠의 어머니는 늘 아들을 찾아다닌다. 토장 할머니에게 자신의 아들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들을 찾으러 갔을 때, 아들은 이미 자신의 아들이 아니었다. 상실의 8년 동안 토장 할머니를 의지하고 살았던 아들은 토장 할머니를 떠나지 않으려 했다. 그런 아들의 태도는 평생 어머니의 가슴속에 멍처럼 새겨진다. 그때 새겨진 아들에 대한 상실감은 아들이 옆에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어머니의 의식 속에서 아들은 늘 부재의 상태다. 그녀는 아직도 토장 할머니가 자신의 아들을 어딘가 숨겨놓고 있기 때문에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밤마다 회중전등을 들고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다닌다. 어머니는 자신이 8년간 품에서 떼어놓았던 아들을 결코 찾지 못할 것이다.

 

  대만으로 떠나기 며칠 전에, 선박이 해협을 건너다 격침당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아들의 안위를 염려해 본가에 두고 갔다는 사실을 코사쿠는 뒤늦게 아내의 입을 통해 듣는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식구들은 모두 그 이유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직 자신만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과 서운함이 자신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던 셈이다. 아내는 그것이 글쓰기의 원동력이 됐으니 나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아내의 말대로 코사쿠는 어머니가 옆에 있어도 지속되는 상실감을 메우고자 열심히 글을 썼을 것이다.

 

  세진 역시 남들보다 몇 배 이상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어디선가 어머니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상상이 늘 마음 속에 있었다. 너무 무리해서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성과를 올려도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돼 상을 받았을 때도 채워지는 느낌은 그 순간뿐이었다. 돌아서는 순간 또 다른 공허감이 밀려들었다. 세진은 자신을 버리고 간 어머니에게 보란 듯이 자랑을 하고 싶었지만 자랑을 받아줄 대상은 상상으로만 존재하다가 이제는 그것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대상은 인간의 성장에 필수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어린아이는 그림을 그리고 찰흙으로 동물을 만든 다음 자신의 작품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첫 대상은 엄마다. 엄마의 칭찬을 받은 아이는 힘을 얻는다.

  세진은 늘 엄마를 대신할 대상을 찾아다녔다.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그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할머니에서 선생님으로 옮겨가면서 관심과 애정을 욕망했지만 늘 부족했다. 중학교 시절부터는 친구가 그 대상이 됐지만 졸업과 함께 친구관계도 끝나버렸다. 인간관계가 유지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세진은 늘 헤어질 때를 대비하는 버릇이 생겼다. 


  세진이 어머니를 다시 만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까지 한 후였다. 그때는 세진 역시 남매를 둔 엄마였다. 30년 만에 만난 어머니는 암 병동의 침대 위에 있었다. 어머니의 모습은 매우 낯설었다. 자신이 꿈속에서 그토록 애타게 그리던 엄마의 모습도, 그토록 미워했던 엄마의 모습도 아니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사람은 세진 씨와는 전혀 상관없는, 나약한 환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세진은 코사쿠와는 달리, 자신을 버린 것을 기억하느냐, 자신을 왜 버렸느냐고 묻지도 못 했다. 아무도 자신의 물음에 해답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세진은 지금도 빈 방에 갇힌 느낌이다. 그 방은 어린 시절 엄마가 그리울 때마다 할머니의 호통을 피해 숨어서 울곤 했던 다락방이었다. 세진은 아직도 그 다락방에서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코사쿠는 달랐다. 코사쿠는 어머니와 진심으로 화해를 했다. 어머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고 있게 됐으며 그 일로 지금까지도 심적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어머니에게 연민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관 속에 자신이 평생 지니고 있던 목걸이를 넣어준다. 그것은 어머니가 자신을 본가에 맡기면서 목에 걸어주었던 목걸이였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품에 목걸이를 돌려준다는 것은 이제 어머니에게 더 이상 서운함이나 분노 같은 잔여 감정이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다. 

  세진에게도 어머니와 얽힌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화해와 해결의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체감을 느낄 수 없는 어머니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진은 어머니의 죽음을 확인한 후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무력감에 빠졌다. 세진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상상의 어머니조차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애도할 수조차 없었다. 분노도 슬픔도 규정할 수 없는 무감정, 무력감의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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