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SEP
2017.09
수영장에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서로 다른 레인에 서 있었고, 서로의 목적지도, 출발 시간도, 물의 깊이도 매우 달랐다. ‘다르다는 사실’만 확실 했다. 어느 코스가 더 힘드네 어떤 코스는 아무도 도착점을 밟지 못했네, 말이 많았지만 사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이 많았던 나는 서로 다른 레인에 발을 담갔다 빼보기도 했고, 풍문으로 들려오는 소리로 얼마나 긴 여정이 될 것인지를 가늠해보기도 했었다.
이곳이 수영장이라 생각 되었던 것은 남들의 물살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출발 시간이 나보다 일렀던 이들의 발장구에, 그리고 그 끝에 다다른 몇몇의 함성과 기세등등한 몸짓에 나의 물살마저 흔들리고 있었다. 수영장의 환호성은 메아리가 길었다. 그들의 레인에도 발을 담구어 보았던 까닭에 나를 둘러싼 것들이 조금 더 흔들린다고 느꼈다. 부끄럽게도, 나 역시 평정을 잃고는 했다. 아직도 나약했던 까닭이었다.
가끔은 불안함이 마음 속에서 춤을 추기 시작할 때가 있었다. 투명한 물에 살살 부은 진한 에스프레소가 하늘하늘 퍼져 나가듯이, 자리를 잡은 의구심은 심장 박동을 따라 온 몸으로 뻗어 나갔다. “거 봐.” 항상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는 과거의 잔념들을 다시금 불러 내었다.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는 실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곤 했다. 실체가 없기에 어떻게 없애버려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렇게 불안이 차오를 때면 나는 그것을 입에 담고는 밖으로 뱉어내었다. 절친한 친구들,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걱정들을 풀어 놓았다. 한 번으로 다 게워내지 못하면 다른 상대에게 가서 다시금 말하곤 했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느꼈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정답을 찾는 일에 익숙했다. 상대에게 나의 마음을 말하려 이리저리 단어를 찾다보면 나의 마음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어지러운 마음이 정리되면 답은 간단한 형태로 나타날 때가 많았다.
그리고 남는 것은 미안한 마음이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들은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었고, 나 역시 그들의 걱정을 들어줄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을 소비하는 것 같은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을 만나 함께 우물 속에 있던 물들을 퍼내고 나면 그들 역시 젖어있을 때가 많았다. 미안해 하던 나에게 벗들은 괜찮다며 웃어보였지만 나는 내가 젖을지언정 그들을 슬프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불안감이 상수라는 깨달음 후에도, 아직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흩어져가는 걱정들을 남들에게 보이지 않은 채 꼭꼭 씹어 삼켜버릴 수 있기를 바랐다. ‘불안함의 손을 잡고 춤을 출 수 있게 되었다’고 자신있게 적는 것이 나의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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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몇 시간 전, 울렁거리던 불안함을 처음으로 씹어 삼켰던 나의 회고록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며 왜 그들과 다른 레인에 서기로 했는지 다시금 되뇌이자 그것은 어느 순간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이런 평온함이 한 번의 경험으로 영속될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을 안다. 그렇지만 첫 발걸음이 제일 어렵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불안함의 파도를 타고 서핑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적는 것은 여전한 나의 바람이다. 그렇게 적는 날이면 피냐콜라다를 마시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