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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rry Feb 15. 2020

세금을 51%나 낸다고요?

신뢰와 정직이 만들어가는 사회


언제부터인가 나 혼자만 잘 사는 것은 오히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임을 깨달았다. 내 주위 사람들, 나아가 이 사회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한 것이구나. 한참 어렸을 때는 친구가 울면 나도 울고 누군가 아프면 나도 아파하던 그때의 나는 이미 알았던 그 사실을 한참 큰 지금에서야 머리로 이해하고 인정해가는 나를 본다.


왜 핀란드는 전세계적으로 행복지수가 높은, 살기 좋은 나라라고 알려진 걸까. 이곳에 와서 꼭 그 이유를 찾아야겠다고 다짐한 나였다. 와보니 알았다. 이 나라의 성장, 성공의 기준은 단순히 경제적 성장이 아닌, 사회가 행복한 것에 좀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핀란드에서 머무는 동안 만난 현지인, 그리고 이민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바라보고 느낀 핀란드 사회를 돌아보고자 한다.


여기서 만난 한 의사는 본인이 내는 세금이 수익의  51% 라고 했다.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닌, 자신과 비슷한 직업/소득에 따라 이렇게 내는 사람들이 많고, 그럼에도 만족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만약 정부가 복지제도를 더 개선하면, 자신도 세금을 물론 더 낼 의향이 있다는 것이다. 대체 정부에 대한 신뢰, 사회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높은 걸까.


그리고 이러한 복지 수준이 핀란드 국민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에게도 거의 동일하게 제공되고 있었다. 여기서 만난 한 한국 분의 친구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그녀의 중국인 친구는 중국에서 결혼한 남편과 결혼했고, 남편이 핀란드에 취업을 해서 당시 직업이 없었던 본인은 비 납세자 비자를 받았다고 한다. 비 납세자 비자를 받는다는 것은 취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남편이 핀란드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너도 구직에 힘써보아라 하는 의미로 “교육비 무상 제공” 즉, “대학원을 가는 것이 더 유리”한 상황이 되었고, 이미 그 아내는 납세자 비자이기 때문에 알토대 대학원을 무료로 다닌다. 미국만 해도 부부 중 한 명이 취업하면 다른 사람은 일을 못하거나 하고 싶다면 동일한 비자 프로세스를 다시 거쳐 취업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말이다. 게다가 실직자들은 핀란드 정부에서 월 어느 정도의 생활비를 받으며, 핀란드어 기초 교육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신뢰를 구축해가는데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도와 노력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정말 단적인 예다. 다른 종류의 사례를 들면, 이라크나 이란, 시리아 등 지금도 수많은 내전과 갈등이 벌어지는 중동지역에서 온 이민자들을 정말 많이 만났는데. 이 사람들이 그곳에서도 한참 떨어진 이곳 핀란드까지 오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이 핀란드가 기회의 땅이었다. 이곳에서는 적어도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정부에서 생계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인구 수 대비 창업 기업들이 정말 많이 생겨나고 있기에 구직의 기회도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핀란드로 이주해 온 난민들이 이곳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재능을 발휘하고 기회를 찾아 창업을 하여 이 사회에 더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Startup Refugee라는 사회적 기업도 있다.

이미지 출처 http://www.6d.fi/index.php/103-wemet/1082-startup-refugees


그렇다고 모두가 난민, 이민자에게 우호적이라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핀란드 내 "Finns Party", 즉 '핀란드인당' 이라고 불리는, 이민자, 난민에 거세게 반대하는 당도 존재한다. 심지어 2019년 4월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된 사회민주당 다음으로 제 2위에 올랐다. 한 핀란드 친구가 그들을 "Racist"라고 불리며 이 당의 거리 시위에 나가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며 화를 내던 것이 기억이 난다. 정치에 관해 말하자면 유토피아는 없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그래서 핀란드의 시민사회, 사람들의 일상에서 발견한 것들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신뢰"라는 것은 "정직"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신뢰하게 된다는 것은, 그의 정직함으로부터 그 신뢰의 감정을 갖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한 가지 사례를 들자면, 핀란드에서는 어디를 가나 공용 옷걸이가 당연한 듯 설치되어 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행사장에서도, 사우나에서도, 아직 미숙한 아이들이 혹여나 훔쳐가지는 않을까 의심했던 학생식당에서조차. 그리고 내가 공부했던 그 학교에서는 도난사건이 10년간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누구나 아무렇지 않게 오픈된 장소에 재킷과 가방 등을 걸어놓는다. 처음에는 정말 저렇게 두면 누가 안 가져갈까 하는 생각했는데, 다들 아무렇지 않게 걸어놓는 것을 보고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마음 놓고 걸게 된다. 한 명, 두 명.. 열 명... 어느새 사회가 그 가치를 알고 지켜나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문화가 된다.




페이스북에 자전거를 30유로에 판다는 글이 올라왔다. 상태도 좋아 보이는데, 30 유로면 정말 저렴한 거다 싶어 바로 연락을 했고 자전거를 직접 가지러 와야 한다고 했다.  그 집은 우리 동네에서 꽤 멀었고, 여기까지 왔는데 자전거가 별로 안 좋은 거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갔고, 가서 자전거를 타보니 바퀴가 조금 얇은 편이라 그런지 처음엔 살짝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일단 오늘은 내가 대여 자전거를 타고 왔기 때문에 다음에 걸어와서 가져가고, 그때 돈을 주겠다고 말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셨던 판매자는 알겠다고 했다. 그러나 몇 시간 후, 이 자전거가 차에 들어간다며 직접 우리 집까지 가져다주시겠다고 했다.


살까 말까 사실 약간의 고민을 하던 중이었는데 이제 와서 안 산다고 하기는 아닌 것 같아서 얼떨결에 알겠다고 했다. 하필 당시 생활비로 지출이 컸던 터라 현금 10유로가 부족한 상황에 하루 안에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야 했다.


신기하게도 그날 저녁 해외 학생 중 한 친구가 몸이 아파서 자기 대신 심부름을 해줄 수 있는지 단체방에 물어봤다. 힘든 일도 아니고 동네 마트 가는 것쯤이야 내가 해줄 수 있다며 연락을 했더니 너무 고마워하며 자신의 물건을 사고 남은 돈으로는 내가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놀랍게도 딱 10유로가 마련되었고, 다음날 아침 할아버지께 줄 현금 30유로를 마련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약속한 시간 할아버지는 차에 자전거를 싣고 오셨다.

1유로, 2유로, 50센트짜리 동전이 다 섞인 돈을 주섬주섬 건네며 30유로가 맞다고 세어 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세지 않고 그냥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웃으며 "I believe you."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가셨다.


사실 알지도 못하는, 그것도 처음 보는 외국인인 나를 봐서라도 한 번쯤 의심해볼 만한데, 이 할아버지는 나를 이미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벌써 한참 전 일인데도 그 한마디가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는다. 그리고 현재 나의 일상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을 때, 나는 종종 그 말을 떠올리며 상대방을 신뢰하기로 결심한다.


단 한번의 사건이 그렇게 한 사람의 사고방식을 바꾸었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신뢰가 기반이 되어, 개인과 사회, 그리고 정부에 대한 신뢰까지.

나는 가히 핀란드를 "신뢰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사회"라고 부르고 싶다.


한때 핀란드 전체를 먹여 살릴 만큼 성장했던 노키아가 하루아침에 몰락했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부상하고 여전히 국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얻는 이유는 그들이 만들어낸 '신뢰' 때문이라고 한다.

노키아는 그곳에서 일했던 직원들을 그냥 실직자로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닌, 재교육과 다른 복지를 통해 서로에 대한 신뢰의 끈을 놓지 않은 기업이었다.



핀란드 북부의 미켈리라는 한 도시에서 만난 환경공학과 교수님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눈 기억이 난다.


"너는 한국에서 왔다고 했지? 한국 정부는 sustainability에 대해 관심이 많니? 이것과 관련해서 어떤 정책들을 내고 있니?"


"음.. 제 생각에 아직 한국 정부는 이것에 대해 엄청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지는 않아요. 한국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기업의 성장, 양적 성장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 같아요. 물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sustainability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있긴 하지만요.."


왠지 모르게 말 끝이 흐려졌다. "지속가능성", "질적 성장", "기본소득", "난민 정책", 이런 키워드들이 왜 한국에서는 여전히 생소하고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일까.


"그래. 이것은 항상 그 과정이 있기 때문에 한 번에 도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거야. 핀란드도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에 오게 된 거니까. 나는 한국도 언젠가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장,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진정한 성장이라는 인식이 사람들 속에 많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


교수님의 말씀처럼, 한국 사회에도 더 많은 이들이 그 가치를 아는 그런 날이 오기를, 오고 있음을 나도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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