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건강이 지구의 건강도 될 수 있다고?
핀란드에서 처음 충격을 받았던 것 중 하나는 북유럽 물가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싼, 심지어 한국과 비교해도 저렴하다고 할 수 있는 대학교 학생식당 가격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항상 바로 어느 학생식당을 가나 있는 "비건" 옵션.
“베지테리안"은 아는데, "비건"은 정확히 뭐지?
그 때 함께 있던 친구를 통해 비건의 개념을 처음 알았다.
*비건의 정의는 검색하는 사이트마다 다 다르게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도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분명히 고기만 먹지 않는 베지테리안보다는 더 엄격한 개념이다. 식사에 있어서는 쉽게 말해 우유, 달걀 등의 유제품도 섭취하지 않는, 한 마디로 동물성 식품의 섭취를 배제한 것을 말한다.
비건 음식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서 그 옵션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거, 생각보다 정말 맛있는 것이다. 단순히 내가 생각했던 풀떼기가 아닌, 고기와 해산물 없이 이렇게 풍성하고 맛있는 샐러드를 즐길 수 있다니. 담백하면서도 고소하고 맛있는 비건음식의 매력에 나는 빠져들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학생식당은 어디나 채식 옵션이 의무적으로 제공되어야 했고, 마트를 가나 식당을 가나 비건을 위한 옵션이 존재했다. 심지어 패스트푸드점에도.
간혹 비건 옵션이 없는 곳도 있는데, 이런 곳은 최소한 우유와 유제품은 포함하기도 하는 베지테리안 옵션을 제공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이었다면, 내가 비건을 지향하기로 결심하고 이를 지속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을 것 같고 나도 그렇게 느꼈을 것 같다.
최근 한국도 비건시장이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어 어느정도 잘 알려진 개념이 되고 있지만 여전히 어디서든 편하게 비건식을 먹기에는 아직 힘들다. 그러나 핀란드에서는 비건이 된다는 것이 전혀 어렵고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비건인 핀란드 친구, 또는 해외에서 온 다양한 학생들 중 비건을 만날 때마다 "너는 어떻게 비건이 되었니?" 라고 물어보면 들려오는 대답은 다양했다.
크게는 환경, 동물권, 개인의 건강 등이 많았는데, 그중 환경에 대한 이유로 시작한 친구들이 많았다. 소를 살찌우기 위해 아마존 숲을 태워 콩을 재배하고, 그것을 먹은 소가 내뿜는 메탄가스는 온실가스의 주범이라고 볼만큼 환경파괴에 내 생각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무엇보다, 소가 먹는 사료조차 먹지 못해 죽어가는 지구 반대편의 아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아프게했다. 늘 환경을 생각하고, 환경 친화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가장 쉽고도 강력한 실천힌 식탁을 바꾸는 일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결심은 핀란드에서 우연히 알게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What the Health>를 보고 더 굳건해졌다. 다큐멘터리를 본 하룻밤 사이에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상하게도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늘 먹던 계란이 먹고 싶지 않아졌다.
내가 먹는 이 음식이 어디서 오는지 아는 것은 나와 지구를 지키는 첫걸음이었다. 내가 ‘맛있다’고 느꼈던 그 음식들은 정말 맛있는 것일까. 대체 누가 우유가 이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때로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이 친구들이 참 어른같이 보일 때가 있다.
내가 살았던 도시에서 만난 한 친구는 차가 있었고, 그렇기에 먼 거리에서 학교에 오는데도 큰 불편함이 없었다. 집에서 늘 20분 자전거를 타야지 학교에 갈 수 있는 나로서는 때로는 그 친구가 부러웠고, 종종 차를 얻어 타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 혹시 주변에 자전거 파는 곳이나 파는 친구 있으면 내게 알려줄래? 나 자전거 하나 사려고."
"자전거? 너 차 있는데 자전거가 필요해?"
"차는 매연을 많이 발생시키잖아. 환경에 좋지 않은데 계속 타고 싶지 않아."
핀란드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나’ 중심의 삶을 넘어 나를 둘러싼 환경,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었다. 그들의 실천은 분명 이 지구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이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듣게 된 것은 참 감사한 경험이다. 핀란드에서 내 삶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큰 요소가 바로 이 가치관이었으니까.
한국에 와서도 이것을 계속 추구하며 나아가는 지금, 이 삶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조금 불편할 지 몰라도, 마음은 편안한 삶. 나와 주위 사람들, 지구에 대해 조금만 더 생각하는 삶, 참 잘한 결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타적인 삶, 이거 정말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