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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rry Feb 15. 2020

여행기와 수필, 그 사이 어딘가

한국과 가장 가까운 유럽이었지만, 엄청 멀게 느껴졌던 그곳.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 비행기 좌석 경로 화면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정확한 위치를 알게 된 그곳.

아직도 내 친구 몇몇은 "필리핀 잘 다녀왔어?"라고 묻기도 하는 그곳.


2019년 8월 말부터 2019년 12월 말까지. 나의 대학생활 마지막 학기를 핀란드라는 곳에서 보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1 지망이었던 스웨덴의 학교에 보기 좋게 떨어졌는데, 그런 나를 너그러이 받아준 핀란드라도 가야 할까, 라는 고민은 다시 돌아보면 참 나를 부끄럽게 한다. 누군가는 그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데 말이다.


사실 고민의 이유도 경제적인 상황이었다. 당시엔 참 커 보였던 한 달 기숙사비 40만 원에 비행기 값에 기타 생활비. 딱 한 번 빼고 꼬박꼬박 대학 등록금 다 내고 다닌 내가 더 이상 해외로, 그것도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북유럽에 몇 달씩 살아도 되나 싶어 포기하려던 내 등을 아빠는 기어이 떠밀었다.


그렇게 나는 4개월이라는 엄청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을  핀란드에서 보냈다. 기왕 가는 거, 핀란드에 있는 동안에는 한국에서 가기 힘든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다 여행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다짐과는 정반대로, 나는 4개월이라는 시간을 정말 오롯이 핀란드라는 나라에서 보냈다. 그 누구도 권하지 않았고, 종종 저 바깥의 여러 나라들이 나에게 여행의 유혹을 보내는 듯했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으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핀란드 한 곳만 경험하기에도 벅차서"였다.


그전까지 내가 가본 유럽이라면 어렸을 적 부모님과 여행 갔던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핀란드에 가기 전 잠시 머무른 영국.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 하는, 그리고 실제로도 많이 가는 유럽이다. 나도 저 나라들이 유럽의 전부인 줄 알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8월 말이었음에도 초겨울 같은 쌀쌀하면서도 청량한 핀란드의 공기를 처음 들이마시자마자, 그것은 참 바보 같은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반타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내가 머물게 될 코우볼라라는 도시로 가는 기차 창밖에 보이는 것은 내내 울창한 소나무들 뿐이었다. "내가 상상한 유럽은 이게 아닌데.."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머물렀던 학생 기숙사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 핀란드의 하늘은 같은 파란색이면서도 어딘가 새로웠다.



흔히 프랑스에 가면 에펠탑을 보고, 이탈리아에 가면 로마의 콜로세움을 보고, 스페인에 가면 가우디 투어를 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 나라가 가진 위대한 문화유산, 역사적 유적지를 많이들 방문하고 분명 그 속에서도 배우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 핀란드는?


가기 전, 내가 알았던 핀란드는 역시나 내 주위 많은 이들이 그렇듯 "자일리톨", "휘바"가 전부였다. 그 "휘바"라는 단어의 뜻도 사실 몰랐다. (핀란드어로 Hyvää : 좋다는 뜻) 


울창한 노르딕 숲에 가려진 반전매력. 궁금하지 않은가?


그랬던 내가, 알면 알수록 새롭고 빠져드는 핀란드의 매력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 가까운 스웨덴, 덴마크도 한 번을 못 갔다. 안 갔다는 말이 더 맞을까. 그 이유는 그냥, 핀란드가 너무 좋아서였다. 여기에 있는 4개월도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4개월간 핀란드에 머물면서 누군가는 이거 하나 보려고 핀란드에 간다는 그 오로라 역시 나는 보지 못했다. 

물론 이것은 일부러 안 본건 아니지만, 아쉽게도 날씨와 타이밍이 중요한 오로라를 볼 기회를 쉽게 잡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다들 열광하는 그 오로라가, 내겐 사진으로 보는 것만도 충분했던 것 같다.


나는 대신 다른 오로라를 본 것 같다. 

그리고 그 오로라는 내 머릿속에, 마음속에 오래도록 자리잡았다.

핀란드인의 삶은, 그들이 내게 보여주고 들려준 이야기는 내게 더 생생한 오로라로 남았다.

내가 만난 그들의 삶은 너무 이상적으로 보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다른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그들과 섞여 살아가는 4개월의 시간 동안

'사람'과 '사회', 그리고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를 바라보는 나의 시야가 조금씩 뚜렷해져 있었다.

돌아온 나의 보금자리, 한국에서 이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 꿈꾸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 여정을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고 싶어, 조심스레 펜을 들었다.

누군가는 웃음을 얻고, 누군가는 희망을, 누군가는 용기를 얻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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