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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rry Nov 01. 2020

핀란드에서 나에게로

그리고 당신에게로. 계속 적어갈 어떤 편지

1월 초,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 오자마자 급하게 몸담은 직장생활은 내 몸과 마음을 다시 분주하게 만들었다. 거대한 침엽수림을 느긋하게 걸었던 그때의 나를 종종 그리워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팬데믹은 당황스럽게도 내가 교환학생의 막차를 탔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했다.


이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누구든 만나고 싶었다. 가까운 가족, 친구부터, 그리고 우연히 참여한 채식 모임에서도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거리낌 없이 나누었다.


놀랍게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은 이들이 이 연대에 준비되어 있었다. 핀란드에 있어 몰랐던 2019년 9월 서울에서는 기후위기 비상행동이라는 큰 움직임이 일었다. 이외에도 내가 몰랐던 수많은 크고 작은 변화의 물결이 한국에도 일고 있었다.


그동안 관심을 가지지 못해서였던 걸까, 아니면 타이밍 좋게 한국에도 막 비건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걸까. 한국에도 비건 식당, 제로 웨이스트 샵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물론 여전히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브런치를 시작했고, 미약하지만 내 주위에도 이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일상에서 조금씩 실천해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14명의 사람들과 함께 플라스틱 제로를 주제로 책을 쓰며 내 인생 첫 독립출판을 함께하고 있다.


올해 7월, 배우 류준열이 그린피스와 시작한 #용기내 캠페인은 때때로 무기력함 속에 주저앉는 내게 다시 일어날 힘을 주었다.


핀란드에서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코로나, 그리고 지금도 가속화되는 이 기후위기 앞에 나는 어떤 마음으로 섰을까. 그곳을 다녀왔기에, 절망과 비관보다는 희망에 더 초점을 맞추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향해 나아가야 함을 더 간절히 외칠 용기를 얻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여전히 꿈같다, 조금 길었던.

하지만 아주 생생한 꿈을 꾼 것 같다.
잠깐 보였다 사라지는 오로라와 달리,

내가 발견한 또 다른 오로라는 나의 뇌리 속에,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았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나아갈 여정에 함께할 친구가 되었다.


-

엄마 아빠, 나를 핀란드에 보내줘서 너무 고마워.

엄마 아빠가 열심히 번 돈으로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


나는 여기서 더 큰 세계를 만났어.


스스로 질문하는 법을 배웠어.


남이 한다고 다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웠어.

나의 선택을, 나의 앞길을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할 줄 아는 법을 배웠어.


바쁘게만 사는 것이 좋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돌아보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


거대한 자연의 숨길에 집중하며 걷는 법을 배웠어. 울창한 침엽수림들 사이를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조금은 천천히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법을 배웠어.


혼자 요리하면서, 내 앞에 있는 이 음식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어디로 가는지 다시 들여다볼 수 있었어.

우리를 끝없이 욕망하게 하는 이 자본의 소용돌이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내가 먹는 이 음식이 돌고 돌아 어떤 존재에게, 그리고 지구에 주는 영향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 내가 먹는 음식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는 무서운 사실도 말이야.


핀란드에서 처음 알게 된 ‘비건’이라는 개념이 바로 그것을 막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천이라고 믿고, 망설임 없이 시작했어.

단지 먹는 것만이 아닌, 우리가 입고, 쓰는 것 역시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알아야 하는 거였어. 그것을 알지 못한 채 한없이 편리함만을 추구하고 살아간다면, 결국 그 피해는 다시 우리에게 오더라.


더 큰 세상에 놓여 처음에는 조금 겁을 먹었는데, 아무도 나를 모르는 이 나라에서도 나의 무모한 도전정신은 역시나 잘 작동했어.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나의 아이디어를 몇 백 명 앞에서 발표해보기도 했고,

한 도시의 시장님께 칭찬을 받기도 했고,

지역 신문 기자에게 인터뷰를 받기도 했어.

아마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한 사람이겠지만, 핀란드라는 나라에서 나는 넘치는 사랑을 받았어.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지지해준 그들에게 고마워.


나의 이웃, 그리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더욱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법을 배웠어.

편견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나에게 다가오기도 전에 밀어내 버리는 무서운 거더라.

처음엔 내 안에도 그 아이가 조금은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쫓아내버렸어. 그러니까 내 옆사람이 다시 보여.


누군가를 집에 초대해서 따뜻하게 대접하는 것이 참 가치 있는 일이란 것을 배웠어.

그 사람을 위해 함께 5km를 걷고, 혼자서 5km를 걸어 다시 돌아오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어. 그들은 그것이 일상이었어.


나에게 웃지 않는 사람에게도 먼저 다가가 웃는 법을 배웠어. 처음에 그가 나를 화나게 했을 때, 화가 나고 속상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신기하게도 ‘용서’를 할 줄 아는 내가 되었어. 그 사람을 적이 아닌 동료로 만드는 법을 배웠어.


진정한 ‘정직’을 배웠어. 핀란드 사람들은 남이 안 보는 순간에도 누군가 보는 것처럼 행동하는

매우 정직한 사람들이었어. 나는 처음엔 그렇지 못했어. 그런데 그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달라지기 시작했어.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 사회도.

서로가 서로를 더 신뢰하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가 그랬어. 이 기후위기의 시대 속에서, 더 이상은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이제는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거대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구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해. 나 혼자만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주위를 돌아보고, 보이지는 않지만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해 우리는 좀 더 겸손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4개월간 보고 듣고 만져본 핀란드, 그곳에서 배운 상생의 가치를 이제 더 많은 이들에게 나누고, 연대의 손을 뻗고자 해. 지구에 사는 우리들은 아주 긴밀히 얽혀 있는 존재들이더라고.


인간의 욕심으로 고통받는 지구를 더 이상은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계속 외치려 해.


결국 우린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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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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