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erry Oct 28. 2020

조금 특별한 대회

경쟁이라기엔 너무 재미있는데 어떡하죠


'해커톤'이라는 행사는 특히 IT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점점 더 많이 알려지고 있다. 최근에는 단순히 코딩을 통해 앱을 개발하는 것 외에도 '디자인 해커톤', '도시재생 해커톤' 등의 다양한 방식의 해커톤이 생겨나고 있다.


핀란드에서 참여한 ‘DASH Design Hackathon 2019’ 은 내가 경험했던 수많은 해커톤 중 가장 특별한 대회 중 하나로   기억에 남는다.

DASH Design Hackathon은 두 명의 Aalto University 학생이 2016 년에 설립한 행사로, 현재는 유럽에서 가장 큰 디자인 해커톤으로 알려져 있다.

이 대회는 핀란드에서 비즈니스와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하던 당시 디자인적 사고가 부족하다는 인식에서 디자인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데 집중한다. 그 과정에서 기존에는 개발자들만의 축제와 같았던 기존의 해커톤이 아닌, 점차 다양한 예술, 기술 및 비즈니스 분야의 만남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디자인부터가 너무 힙하잖아


실제 장소는 위 그림과 동일했다. 내가 그동안 경험해왔던 딱딱하고 긴장되는 대회장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눈 앞에 한 밴드가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었고, 곳곳에는 꽃과 바질이 가득했다.

마치 공연장, 또는 글램핑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방식 역시 조금 특이했다. 개인, 혹은 팀이 본인이 원하는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무작정 만드는 것이 아닌,

관심 있는 기업 혹은 정부기관이 제시한 문제, (이를 미션이라고 부르겠다)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이번 DASH Design Hackathon에는 총 7개 기업이 참여했는데, 그중 몇 가지 미션들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핀란드의 한 도시인 쿠오피오 시는 "미래의 공공 교통수단"이라는 미션을 내놓았고, 핀란드의 연금 보험 회사인 elo는 "프리랜서나 창업가들의 고용 불안정성 속에서 연금 보험이 제공하는 보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방법"이라는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미션을 내놓았다.

핀란드 국영의 정유 및 마케팅 업체로, 이제는 재생 디젤 생산에 전력을 가하는 Neste의 미션은 "자신들과 협력하는 여러 교통수단 업체들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교통 수단을 제공하는 방법”이었다.


특히 내 눈길을 끈 것은 'Startup Refugees'라는 기업이었다.

그들이 제시한 미션은 바로 "Create more efficient ways to integrate immigrants to Finnish working culture",

즉, 핀란드에 온 이민자들이 핀란드 사회, 특히 직장의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효율적인 솔루션을 구상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미션은 단순히 "우리 물건이 더 잘 팔리는 법", "우리 제품에 새로운 기술/디자인을 접목시켜 바꾸는 법" 같은 

당장의 기업의 이익과 직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조금 거창한 표현이라고 보일지 모르나, 그들이 제시한 미션은 매우 미래지향적이면서 세계시민적이었다.

당장 눈 앞의 수익을 보는 것이 아닌, 전 지구적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영향력을 고민하는 이들의 열정이 느껴졌다.


대회 방식은 한 팀당 네 명에서 다섯 사람으로 구성된 5-6개의 팀들이 한 미션에 대해 각기 다른 솔루션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기업들은 각 자가 보유한 심사 기준에 가장 부합하다고 여겨지는 솔루션을 선택하여 그 팀에는 상금 또는 기타 보상이 주어진다.


Entrance of the Dash event venue in Wanha Satama in 2019. ⓒ 2019. Helmi Korhonen


행사 당일,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행사장에서 눈이 마주쳐 대화를 나눈 친구가 있다. Krutika라는 인도 친구였는데

놀랍게도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인도에서부터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한다.

이렇게 핀란드뿐 아니라 다양한 나라에서 온 참가자들로 이내 행사장은 북적이기 시작했다.


유럽 애들도, 우리도  영어가 2외국어야.   없다니까?”


신기하게도 핀란드에 가기 직전, 누군가에게 들은 이 말은 

내가 핀란드에서 지내는 4개월 내내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자신감을 잃지 않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마법의 주문은 이곳에서도 많은 친구를 사귀게 해 주었다.


ⓒ 2019. Helmi Korhonen


곧 같은 미션을 선택한 팀원들을 만났다. 한 명은 핀란드인, 두 명은 멕시코인이었다. 우리 네 명 모두 디자인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한 명은 경영, 마케팅과 접목된 디자인, 한 명은 디자인 교육, 한 명은 UI/ UX 디자인 등 각자의 전문 분야가 조금씩 달랐다.


다들 활발한 친구들이었기에 우리는 금방 친해지며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었다. 어느 지점에서 그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기 상어' 노래의 인기를 실감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팀명은 만장일치로 baby shark.


모든 순간이 노래 부르는 것처럼 순탄하게 흐르면 좋았겠지만 우리가 다뤄야 할 미션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중간발표에서, 우리는 문제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지도 않고 솔루션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이것이 정말 우리가 디자인한 서비스를 이용할 사람들이 필요한 것인지 우리도 알 수가 없었다.


이민자, 특히 난민 출신으로 핀란드에 오는 이들의 절박한 상황을 경험해본 적 없는 내가 책상에 앉아 머리를 싸맨다고 알 리가 없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한국에서 대학교 과제를 할 때 노트북 밖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안일한 습관이 남아있음을 깨달았다.

진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우리는 움직여야 했다.

종이에 직접 질문을 적어 플랜카드처럼 들고 다니며 대회장에 있는 다른 팀들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특히 핀란드 외 국가에서 온 이들을 주로 만나 핀란드에서의 구직 활동, 혹은 직장 생활 속에서 문화적인 어려움 등 그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들었다.


쉴새없이 적고, 붙였다 떼고를 반복

그렇게 조금씩,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난민 출신 창업자, 구직자들을 온라인으로라도 만나며 최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집중했다.

어쩌면, Startup Refugees의 프로그램이 모든 참여자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모인 참가자들은 모두 창업을 하고 싶을까? 그들의 경제적 상황은 어떠한가? 이들이 창업을 원하지 않는다면 또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는 당장 '창업'이라는 틀에서 잠깐 벗어나 이들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리한 것들을 바탕으로 우리만의 프로세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 팀명 'baby shark'에서 영감을 얻은 'baby starter'부터 'fast gazelle'까지,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우리가 만든 앱에 접속하여 자신의 성향과 창업에 대한 관심도를 딱딱한 설문지가 아닌, 게임을 하듯 재미있게 자신에게 적절한 단계의 프로그램을 찾아가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우린 분명 피곤했는데 신이 났다


우리 앞에 발표했던 팀. 나는 이들이 우승할 줄 알았다.

드디어 최종 발표,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앞 팀의 발표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너무나 예상 밖이었다. 바로 "화합의 올림픽".


첫 슬라이드를 넘기고 그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이들은 단순히 이 미션을 기술적인 솔루션으로만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올림픽의 목적인 "국가들의 화합"에서 모티프를 얻어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의 화합으로 솔루션을 디자인했다. 당장 언어, 문화적으로 적응이 힘든 이민자들이 각 부스에서 핀란드의 문화와 업무환경을 실제 체험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public speaking과 같은 다양한 부대행사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감을 얻도록 돕는 것. 이것이야말로 심각하고 어려워보이는 문제를 재미있게 해결하는 좋은 예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우리가 우승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몇백 명 앞에서 내가 발표를 했다는 것도.

시상식에서 우리가 Startup Refugees 미션의 우승팀이라는 발표가 나자, '저 무대엔 다시 못 서겠구나' 하며 집에 갈 준비를 하던 내 귀를 의심했다. 올림픽 팀의 발표가 이후 그들이 명백한 우승팀이라고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 달리, Startup Refugees는 우리의 아이디어를 선택해주었다. 우리의 서투른 아이디어에 어딘가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놀람과 어이없음이 섞인 표정을 지은 건 우리 팀뿐이었다. 그러나 이내 침착하게 무대에 올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마지막 발표를 마쳤다. 함께한 다른 팀의 동료들도 우리에게 달려와 진심 어린 축하 인사를 건넸다.


Startup Refugee 미션 전체 팀 . (C) 2019 .  Helmi Korhonen


그들이 제시한 솔루션, "화합의 올림픽"처럼 한 미션 아래 모인 우리는 다른 팀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함께 서로를 격려하는 동료가 되어있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청년들이 함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경쟁보다는 즐기는 대회, 이것이 내가 DASH Design Hackathon을 경험하고 느낀 것이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빨간 원피스를 입은, 내 옆에 앉은 인도 친구가 바로 이 대회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온 친구였다.  대회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더욱 친해졌고 한국에 온 뒤에도 계속 안부를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번에는 이 친구와 한 팀이 되어 다가오는 DASH Design Hackathon 2020에 참여할지도 모르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