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2 전설의 진실

밤새 집단폭행을 당하다

by 청년홈즈

"너 좀 놀았니? 이 씨 X놈아!

너 운 좋은 줄 알아. 작년에 17대 1로 다구리 붙다가 허리를 삐끗했지.

그거 아니었으면 넌 뒈졌어. 이 X새야?”


하지만 임창정의 허세는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 정우성의 한방에 날아간다. 영화 ‘비트’의 한 장면이다.

임창정.jpg 영화 '비트' 중임 창정의 17대 1 허세

“나도 왕년에 17대 1 정도는 말이야~”

지금도 종종 시답잖은 남자들 술자리에서는 비슷한 잡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실 나에게도 17대 1 은 아녀도 17대 2쯤 되는 숨겨온 전설이 있다.


미팅 한번 못해 본 촌놈은 대학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미팅부터 해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암울한 군부독재 시절에 미팅이니 연애니 하는 것은 호사스러운 사치일 뿐, 대부분의 시간은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보내야 했다. 얼떨결에 2학년이 시작되고 나서 군대 가기 전 소개팅은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동아리 후배를 졸라 그 후배의 누나 친구를 소개받았다. 기대와 설렘을 가득 안고 신촌에서 내 첫 소개팅녀를 만났다. 나보다 한 살 연상인 그녀는 천사가 따로 없었다. 맘에 들었다. 그녀의 미소가 날 들뜨게 했다. 어차피 후배도 아는 사이라 우리는 그날 저녁 같이 어울리기로 했다. 셋은 초저녁부터 신나게 술을 마셨다. 그날따라 내 말발은 광야를 달렸다. 그 자리가 좋았는지 그녀도 우리와 의기투합했다. 우리는 밤새 놀기로 작당하고 술을 몇 병 사 가지고 근처 Y대 운동장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청춘 남녀에겐 특별한 스토리가 없어도 지루할 겨를이 없다. 하하호호 거리다 보니 금세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불쑥 불량끼 많은 청년 한 명이 나타나 담뱃불을 빌려 달라 했다. 그 청년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우리에게 괜한 시비를 걸었다.


“형씨들 집에 안 가? 그림 좋은데”

영화에서나 보는 양아치 말투였다.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우리도 이미 거나하게 취한 상태라 지지 않고 받아쳤다.

“술 먹었으면 그냥 꺼져라”

그 말과 동시에 그 작자는 본색을 드러냈다.

“이 XX들 안 되겠네. 얘들아 이리 와 바”

동시에 어둠 속에서 수많은 양아치들이 바퀴벌레들처럼 몰려나왔다.

“이런! X 됐다. 한 명인 줄 알았는데” 후배의 작은 비명소리가 들렸다.


전세는 갑자기 17대 2가 되었다. 양아치들은 갑자기 우리를 둘러싸고 주먹과 발길질로 융단폭격을 가했다. 웅크리고 앉아 서로를 감싸며 방어를 했다. 한 참 발길질 중에 갑자기 어떤 녀석이 그녀를 끌고 가려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방어만 하던 우리는 합을 맞춰 젖 먹던 힘까지 모아 반격했다. 잠시 17:2의 싸움은 싱겁게 투닥거렸다. 몇 대 날린 우리 주먹보다 수십 배 많은 발길질과 주먹세례를 받았다. 한꺼번에 달려드는 17명을 대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우리는 필사의 저항으로 그녀를 내어주지 않았다. 다행히 그녀에게는 상상하는 큰 불상사는 없었다. 그때 확실하게 깨달았다. 아무리 싸움꾼이라도 전설은 전설일 뿐 17대 1은 순전히 개뻥이었다는 것을.


그들의 집단 폭행은 양아치들의 선배라는 작자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그 선배라는 작자들이 우리를 폭행하던 양아치들을 집합시켜 놓고 때리기도 하며 뭔가 훈계를 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그러더니 그중 우두머리 같은 작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형씨들 미안하게 됐수."

그 자는 우리에게 뭐라 뭐라 몇 마디 더 영혼 없는 사과를 하더니 우리를 풀어 주었다. 풀려나자 우리는 경찰서에 가야 하나 잠시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일단 그녀가 무사한 것에 안도를 했고 경찰서에 가면 서로 티격태격한 것을 쌍방폭행 어쩌고 할 것 같아 그냥 헤어지기로 했다. 사실은 무엇보다 그 공포의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놀랐을 그녀를 챙겨 먼저 집으로 보냈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사실 그날 너무 놀랐을 그녀에게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를 돌려보낸 후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일단 근처 분식집으로 갔다. 십 원짜리 한 장 없었던 우리는 근처 사는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꼭두새벽 뜬금없는 호출에 나타난 후배는 우리 모습을 보더니 한 참을 자지러지게 웃었다. 우리는 그때까지 우리 몰골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화장실에 가서 처음으로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에 깜짝 놀랐다. 거울 속에는 입 삐뚤어진 못생긴 광어 두 마리가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이곳저곳 할퀸 자국에 입술은 퉁퉁 부어 올라 한쪽으로 기울어져있었고 옷은 때 국물이 꼬질꼬질 상거지가 따로 없었다. 서로를 보며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한참을 낄낄거렸다. 아침 일찍부터 입 삐뚤어진 광어 두 마리가 한쪽 입술로 김밥을 뜯어먹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아직도 그 날밤 그 공포의 시간이 생생하다. 그녀만은 제발 보내달라는 우리의 간절한 부탁에도 외면하던 그 냉정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눈빛이 하나도 아니고 집단으로 위협을 가하는 상황이라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공포를 가늠하기 어렵다. 세상에 모든 폭력이 무섭겠지만 그중 집단폭력이 주는 충격은 상상 그 이상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몰려다니는 건달들을 보면 그때 그 17대 2의 공포가 생각나 움찔움찔하곤 한다. 또 가끔 어떤 실없는 술꾼들이 17대 1을 얘기할 때도 그 기억이 다시 올라와 심장이 욱신욱신 벌렁거린다. 밤새 얻어터지던 그 끔찍한 아픈 기억들……


무리의 힘을 빌어 약자를 못살게 하는 짓은 야생동물들이나 하는 짓이다. '17대 1의 전설'은 자랑거리가 아니다. 우주평화를 위해 지구에서 없어져야 할 야생동물이나 하는 집단 폭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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