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왕의 몰락

교육이라는 이름의 폭력, 체벌 반대!

by 청년홈즈

"씨름 왕! 씨름 왕!"

벌써 6번째 상대였다. 내가 허리춤을 잡았을 때 앞선 상대들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시작도 하기 전 상대의 승승장구를 보면서 기가 죽은 것이다. 나는 허리춤을 잡고 일어서자마자 안 다리를 걸고 밀었다. 싱겁게 넘어갔다. “와~” 하는 소리가 또 들렸다.


시골학교 씨름 경기는 싱겁다. 씨름판이라고 해봐야 샅바도 없이 서로 허리춤을 잡고 드잡이 하는 게 전부였다. 서로 허리춤을 잡고 일어나 잠깐의 힘겨루기 끝에 발을 걸거나 밀쳐 넘어뜨리면 끝난다. 이기면 바로 대기 중인 다음 상대와 계속 씨름을 해야 하니 끝까지 이기기는 힘든 규칙이었다. 나는 이미 많이 지쳐 있었다. 벌써 7번째, 더군다나 다음 상대는 또래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많은 우리 학년에서 덩치가 제일 큰 코불이라는 아이였다. 같이 섰는데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나는 속으로 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허리춤을 잡자 전해지는 힘이 역시 달랐다. 코불이는 시작 소리와 함께 범상치 않은 기술을 썼다. 씨름판의 꽃이라고 하는 바로 뒤집기 기술이었다. 코불이는 시작 하자마자 나를 뒤집더니 가만히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뒤집기를 어디서 봤지만 그다음 연계 기술을 모르는 듯했다. 이때다 싶어 내 쪽으로 살짝 당겼다. 싱겁게 무너졌다.

“와~”

떠나갈 듯 함성소리가 들렸다. 그날 난 그렇게 씨름 왕이 돼버렸다.


연속 경기로 지친 나는 결국 여덟 번째 상대인 반장에게 패했지만 그날의 씨름왕은 최강자 코불이를 이긴 나였다.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 새로 탄생한 씨름왕을 추켜 세웠다. 나는 그날의 성과로 내 의견과는 관계없이 학교 씨름부가 되어야 했다. 그때는 팔자에도 없었던 운동부 생활이 3년이나 지속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시골 초등학교 씨름부는 우리가 아는 그런 운동부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수업 끝나고 두어 시간 모여 씨름하는 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씨름부는 내 체질이 아니었다. 소풍 가서 운 좋게 몇 명 이긴 것과 계속 씨름부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은 달랐다. 이런저런 핑계로 연습을 많이 빠졌지만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클럽활동 시간이면 언제나 씨름부에 가 있어야 했다.

씨름왕.jpg 나도 한때는 씨름왕:사진은 나와 무관함

씨름부 3년 차 5학년 때의 일이다. 학년이 시작될 무렵 클럽활동 부서를 다시 정할 때였다. 워낙 내성적이라 수업시간에 질문하나 제대로 못했던 나는 큰 용기를 내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 앞으로 씨름부 안 할래요. 바꿔 주세요”

“왜? 너 씨름 잘하잖아. 안돼 너 바꾸면 다른 아이도 다 바꿔야 해”

선생님의 단호한 말에도 나는 진짜 씨름부가 하기 싫었다.

“선생님 그래도 바꿔 주세요”

이 말과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선생님 저도요. 저도요. 바꿔 주세요”

교실은 갑자기 아수라장이 되었다. 선생님은 칠판을 쾅쾅 치며 소리쳤다.

“이 녀석들이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너 전병호 나와”

나가자마자 선생님은 화를 내며 내 뺨을 때렸다. 찰진 소리와 함께 뺨이 얼얼해졌다. 나는 학교 들어와 그날 처음 맞아 보았다. 선생님은 화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너는 씨름도 잘하는 녀석이 왜 자꾸 바꿔달래. 그냥 해”

내성적이었지만 나도 오기가 있고 한 고집한다. 나는 질질 짜며 다시 말했다.

“꼭 바꿔 주세요”

선생님은 화를 불같이 내며 이번에는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어 내 뺨을 때렸다. 결국 그날의 승자는 나였다. 퉁퉁 부은 얼굴로 '씨름부' 대신 '독서부'를 얻었지만 학년이 끝날 때까지 선생님은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난 지금도 그날 선생님에게 맞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뒤로 나는 선생님들을 더욱 멀리하는 성격이 되었다. 원래 내성적이기도 했지만 그날 이후 선생님이 무서워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된 것이다.


돌아보니 나는 학교 선생님 중 친한 선생님이 별로 없었다. 원래 내 성격이 그랬겠지만 그때의 기억도 한몫했으리라 생각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이 내 자취방을 방문했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힘든 자취생활에 복받쳐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선생님은 무슨 일이냐며 얘기해 보라고 했지만 나는 더 이상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선생님은 끝까지 마음을 열지 않는 나를 보고 서운해했다. 그 뒤로 나는 죄지은 것도 없이 그 선생님을 졸업할 때까지 피해 다녔다. 초등시절 선생님에게 슬리퍼로 뺨을 맞았던 아픔으로 생긴 선생님 기피 트라우마였을 게다.


어떤 경우라도 교육현장에서 폭력은 없어져야 한다. 나는 ‘교육을 위해서’ ‘아이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라는 교육이라는 가당찮은 이름으로 가해지는 체벌을 반대한다. 때린다고 아이 교육이 잘 될 거라는 원시적 믿음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체벌 찬성론자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체벌도 그저 폭력일 뿐이다.


keyword
이전 03화17대 2 전설의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