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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Oct 25. 2024

밥심으로 사는 한국인

생활 속에 다져진 K족의 힘

"밥은 먹고 다니냐?"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 이전에 이미 명감독이었다. 이 짧은 대사 한 마디를 뚝 던져 넣어 영화를 한층 더 깊이 있게 만든 솜씨는 ‘기가 막히네’란 말 밖에 안 나온다. 세계인들은 기생충 이후 ‘살인의 추억’을 다시 찾아본다는데 어떻게 번역되었을지 궁금하고 저 밥의 깊은 의미를 이해했을지도 궁금하다. 단순히 ‘Did you eat?’ 정도의 자막이라면 영화 속 그 말맛은 싱거워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언제 밥 한번 먹자"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들은 이 말 때문에 겪은 황당한 에피소드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다. 이 말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은 ‘밥 한번 먹자’를 약속으로 알고 오지 않는 그 '언제'를 한없이 기다려야 했다고 토로한다. 한국인의 밥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일이다. 한국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밥은 먹었니?’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은 식사여부보다 인사나 상황표현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인에게 밥은 먹는 것 그 이상의 깊은 의미가 들어있다. 


한국인에게 밥은 삶을 담은 그릇이자 생명이다. ‘밥숟가락 하나 늘었다’로 태어나 ‘밥이 보약’이라 생각하며 ‘밥심’으로 버티고 그럭저럭 ‘밥벌이’로 ‘밥이나 먹고 살’ 정도로 살다가 나이 들면 직장에서 밀려나 ‘밥줄 떨어져’ 이리저리 눈치 보며 '찬밥 신세'로 노년을 지내다 ‘밥 숟가락 놓았다’로 한 생을 마감한다. 밥에서 시작하여 밥으로 끝나는 인생이다. 이러니 한국인은 어떤 상황이든 먹는 것과 연결시킨다. 나이도 먹고, 마음도 먹고, 더위도 먹고, 사회물도 먹고, 세금도 먹고, 인기도 먹고, 겁도 먹고, 애 먹고, 편 먹고, 골 먹고, 시간을 잡아먹기도 하며 심지어 한국인은 욕도 얻어먹는다. 세상에 욕 얻어먹으려 ‘욕쟁이 할머니 식당’에 줄을 서는 사람들은 한국인이 유일할 것 같다.


밥으로 태어나 밥으로 살고 밥으로 죽는 한국인에게 밥은 소통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이기적인 사람을 '제 밥그릇만 챙긴다’고 핀잔하며, 싫은 사람은 ‘밥맛 떨어지는 인간’으로 분류한다. 쓸데없는 소리 하는 사람에게는 ‘따신 밥 먹고 헛소리한다’고 나무랐으며, 공동체에 적응하지 못하는 밉상들은 ‘밥맛없는 인간'이고, 조직에서 밀려난 사람은 ‘찬밥 신세’가 돼 버린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밥값도 못한다’고 구박받고, 어디에서든 제 역할을 못하면 ‘밥만 축낸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법을 어기는 사람에게는 ‘콩밥 먹인다’는 엄포도 날리고, 궁핍한 삶은 ‘굶기를 밥 먹듯’이라고 절절하게 묘사하며, 지독한 가난조차 먹고 싸는 것에 비유해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표현한다. 심지어 꽃에서도 밥을 본다. 서양사람들이 ‘눈꽃나무(Snow flower)라고 부르는 꽃도 한국인들은 이팝나무 즉, 쌀밥나무라고 부르며, 봄 햇살에 흐드러진 하얀 꽃도 조팝나무가 되었다. 


이처럼 한국인에게 밥은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다.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은 '밥은 하늘'이라고 했다. 배고픈 민중들에게 밥이 곧 생명이고 삶이었으니 밥이 사람을 살리는 하늘이었던 것이다. 어느 이산가족 할머니가 6.25 전쟁 중 헤어진 막내아들이 돌아올 것이라 믿으며 매일 저녁밥 한 공기를 이불속에 묻어 놓고 평생을 기다렸다는 이야기가 바로 한국인의 밥에 대한 마음이다. 할머니에게 밥은 아들이 살아 있다는 믿음이자 징표였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인에게 밥은 삶이고 소통이고 가족이며 사랑이자 생명인 하늘 같은 존재다. 


이러한 밥에 대한 마음으로 한국인은 가족을 함께 밥 먹는 사람을 뜻하는 식구로 표현한다. 한국인은 이 식구의 개념을 더 확장해 가족이 아니더라도 같은 공동체 일원이면 ‘식구’로 여기고 남이 아닌 ‘우리’로 생각한다. 그러니 같은 공동체 일원은 모두 '우리 식구'가 된다. 학자들은 한국인의 이런 '우리 식구' 한솥밥문화의 기원을 벼농사가 시작된 약 5천 년 전 신석기시대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유물을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는데 당시 식기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빗살무늬 토기나 민무늬 토기가 모두 대형토기라는 점이다. 당시 유물 중에 개인 식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런 점으로 보아 빗살무늬 토기 같은 대형 그릇 안에 조리해서 식구끼리 한솥밥을 나눠 먹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인들이 위기에 잘 뭉치는 우리 공동체 문화는 신석기시대부터 한솥밥을 먹었던 오래된 문화 유전자라고 볼 수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문화 체험 중 가장 충격적으로 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산낙지를 먹는 것이라고 한다. 방송 활동하는 어느 외국인은 낙지연포탕을 시켰다가 살아 있는 낙지 넣는 것을 보고 놀라 하나도 먹지 못했다고 흥분한다. 이처럼 산낙지 먹는 문화를 일부 외국인들은 혐오하며 평가절하하는데 이는 한국인의 밥문화 바탕을 잘 몰라 그러는 것이다. 한국인의 문화 연구에 일생을 바친 이어령선생은 한국인의 밥문화는 자연에 가까운 채집 문화가 바탕이라고 했다. 그 극단적인 예가 바로 낙지연포탕, 해물탕에 들어가는 살아 있는 낙지요, 김과 미역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독초로 분류되는 고사리나물 같은 것들이라 말한다. 사실 우리나라 산천에서 나는 식물에 나물자만 붙이면 못 먹는 게 거의 없을 정도다. 캠핑 자주 다는 사람들이나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산을 가던 바다를 가던 우리나라는 지천이 먹거리라는 것을. 알아두자. 한국인의 밥문화 바탕은 자연 채집이다.


이러한 자연 채집 밥문화는 한국인들에게 자연과 어우르는 초식동물의 기질을 갖게 하였다.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순하고 심성이 착하며, 친절하고, 인정이 많다고 평가한다. 이는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물론 대체로 그렇다는 얘기지 전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어디에나 돌연변이는 존재한다. 혹시 나는 순함, 친절, 인정, 착함 이런 것과는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유전자를 들여다봐라. 당신이 K족이라면 분명 내면에 초식동물처럼 순함, 친절, 인정, 착함이 들어 있다.


또한 한국인의 식사문화는 음식이 차례차례 나오는 서양의 코스요리 문화와 다르다. 한 상에 차려진 밥과 국 그리고 반찬으로 이루어진 한상차림 문화다. 이러한 밥문화 차이를 모르는 외국인들은 종종 미리 나오는 반찬을 모조리 먹어 치우는 경우가 있다. 식사문화 차이에서 오는 에피소드다. 한국의 한상차림 식사문화는 각자의 자리에 음식이 따로 나오는 코스요리와 달리 밥상 가운데 놓인 찌개를 숟가락으로 같이 떠먹고, 차려진 반찬을 젓가락으로 함께 먹는다. 숟가락으로 국물 한 숟가락 떠서 전체적인 조화를 음미하고 젓가락으로 차려진 여러 종류의 반찬을 집어 재료의 깊은 맛을 씹어본다. 


따라서 한국인의 밥상에는 반드시 숟가락과 젓가락이 함께 올라와야 한다. 같은 동아시아권이라도 중국이나 일본이 젓가락 중심 문화라면 한국인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쓰는 문화다. 한국인의 밥상에는 훈련 중인 군인들이나 대충 한 끼 때우는 자취생이 아니라면 숟가락만 놓거나 젓가락만 놓여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한국인의 숟가락, 젓가락 밥문화는 상호의존성과 관계를 중시하는 조화와 통합의 문화를 나타낸다. 숟가락으로 뜨고 젓가락으로 집는 행위는 물성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동시에 디테일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행위를 수천 년 동안 해왔다고 생각해 보라. 손기술을 덤이라 치고 통합하고 분석해 보고 디테일에 장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문화강국 K의 근저에는 분명 이런 한국인의 밥문화의 영향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렇게 한국인의 밥상에도 붙어있는 K족의 문화 유전자를 모르고 문화강국 K의 정체 알아내는 것은 국물도 없는 일이다.


K드라마 글로벌 인기 비결을 분석한 기사 중 유독 식사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생각해 보니 K드라마나 영화에는 가족 식사 장면, 식당대화 장면이나 회식, 술자리 같은 장면이 자주 등장했다. 드라마나 영화가 인간의 희로애락을 그리는 장르니 음식 장면이 자주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한국인에게 밥은 삶이고, 생명이며, 마음이고, 소통의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K드라마의 인기가 올라 갈수록 K푸드 인기도 덩달아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바로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엽전 줍는 일석이조다. K콘텐츠 산업이 미래 먹거리 산업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K팝뿐만 아니라 K밥문화도 K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밥심이 최고라고 하지 않던가.

다들 밥은 먹고 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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