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평가된 K, 그 오해와 진실
‘우리가 보지 못한 대한민국’의 저자 라파엘 라시드(Raphael Rashid) 씨는 영국 출신의 프리랜서 기자다. 그는 한국에서 11년을 지내며 ‘가디언’ ‘뉴욕타임스’ ‘텔레그래프’ 등에 한국 관련 기사를 기고하고 있다. 그는 TV에서 자주 보는 일부 외국인들처럼 한국 찬양에만 열을 올리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치부를 잘 알고 있는 그에게 종종 한국인 친구들이 굳이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유를 묻는다고 한다.
“너는 왜 영국에서 살지 않고 헬조선 한국에 사니?”
그의 대답은 명료하다.
‘인터넷을 설치하려고 전화를 하면 한 시간 만에 연결되고, 고장 난 노트북을 들고 가면 접수 몇 분 만에 수리 기사님께 전달되는 나라가 어디 흔한가? 지갑이나 가방을 커피숍에 두고 나와도 그대로 돌려받을 수 있는 나라는 세상에 몇 없다. 서울 지하철은 깨끗하고 편리하기로 세계에서 인정받는 교통수단이고, 온라인으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으며, 인터넷 속도는……말해 무엇하랴. 단연 세계 1등이다. 정말 많은 나라를 다녀 봤지만 이보다 더 살기 편한 나라는 정녕 찾기 힘들다. 강력 범죄와 사건, 사고가 매일 뉴스를 도배하지만,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한국만큼 안전한 나라도 없다.’
-라파엘 라시드 저 '우리가 보지 못한 대한민국' 중
라파엘 라시드 씨가 말하듯 한국은 이미 많은 세계인이 방문하고 싶어 하고, 한 번쯤 살아 보고 싶어 하는 몇 안 되는 나라가 되었다. 정작 한국인 스스로 이를 평가절하하고 있을 뿐이다. 바로 국뽕의 덫 때문이다. 국뽕의 의미는 나라' 국'+히로' 뽕'이 합쳐진 말로 국수주의 민족주의가 심해 타민족에 배타적이고 자국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행위나 사람을 일컫는다. 좋은 의미가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인이 국뽕의 덫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는 한국인들에게는 잘하고 있는 사실조차 부정해 버리는 독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칭찬에 인색하고 비판적 평가와 자기 비하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자국에 관한 긍정적 평가나 칭찬할라치면 즉시 자기 검열의 칼, 국뽕의 덫부터 작동시킨다. 있는 사실조차 평가절하하거나 부정해 버리는 좋지 않은 습관이다.
한국인의 자기 비하는 유별나다. 이러한 원인은 사회학적 관점에서 찾을 수 있는데 문화권 차이에 따라 개인을 인식하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개인의 능력을 과소평가해 부족한 점을 채우려는 데 집중하고, 겸손을 높이 평가해 자기계발이 성공을 이끈다고 인식한다. 반면 서양 문화권에서는 잘하는 것을 더 잘하려고 하며, 자신을 실제 능력보다 더 높이 평가해 자신감이 성공을 이끈다고 인식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국인의 자기 비하 열등의식은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인 중국, 일본 등에 비해 더 유별나다. 중국 같은 경우는 동북공정을 통해 없는 역사도 끌어들여 자기네 것이라고 우겨 대지 않는가? 일본은 또 어떤가? 자국 국영방송에서 대놓고 자국 칭찬 일색의 소위 국뽕 방송을 버젓하게 내보내는 것을 보면 혀를 내두를 일이다.
지나친 자문화중심주의도 문제지만 자랑스러운 자기 문화가 있음에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과도한 자기 비하는 더 큰 문제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자기 검열의 칼, 지나친 국뽕의 덫에 빠져 우리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국뽕에 취해 국수주의자가 되자는 것이 아니라 잘하고 있는 사실을 굳이 외면하며 자기 비하와 열등의식 속에 헤맬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세상 모든 일은 밝음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이다. 한국사회에도 해결해야 할 어두운 문제점, 단점도 많지만 잘하고 있는 장점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국뽕의 덫에 걸려 문제점, 단점 찾아내기에 집중하기보다는 잘하고 있는 장점 찾기에 더 힘을 모아야 한다. 장점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 효율적이고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는 말한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단점보완에 집중하기보다 장점 진전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장점을 잘 활용하면 자기 일에 만족할 가능성이 6배나 높고 스트레스와 불안은 줄어든다. 또한 장점 진전에 초점을 맞추면 성취 효율은 36% 증가하는 반면 단점 보완에 초점을 맞추면 성취 효율이 27% 감소하기 때문이다. 효율성만 따져 사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또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불완전한 세상에 살아가는 방법의 하나라 생각하자.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그런 완벽한 국가를 꿈꾸던 공산주의는 실패했다. 문제점에 집중하기보다는 우리가 잘하고 있는 장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다.
어느 국가든 비약적 발전 뒤에는 여러 폐해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비약적 발전을 이룬 한국 사회에도 분명 수많은 폐해가 들어 있다. 그런 부정적인 문제들을 이유로 많은 청년들은 이 나라를 각자도생, 희망 없는 지옥불반도, 헬조선이라는 참혹한 나라로 평가한다. 통계청 2023년 사회조사 자료에 의하면 20~30대 절반가량이 한국 사회를 불신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20대의 한국 사회 불신 지수는 무려 46.8%로 전 연령대 최고치였다. 이러한 한국사회 불신은 출산율로 이어져 한국의 출산율은 0.78명(2022년), 0.72명(2023년)으로 세계 꼴찌 수준이며 전문가들은 2024년에는 0.68명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진짜 한국 사회는 문제들만 존재하는 희망 없는 루저 나라인가? 지나친 자기 비하와 과한 평가절하다. 국뽕보다 더 나쁜 것이 지나친 자기 비하와 남의 것만 좋게 보는 사대주의다. 우리 것은 모두 후지다는 그 시각이야말로 진짜 후지다. 이 나라에 존재하는 병폐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문제도 있지만 성과도 있으니 함께 봐야 한다는 말이다.
충청도 우스갯소리 중 ‘당찬 새 며느리’ 얘기가 있다. 갓 시집온 새 며느리가 쌀밥을 지어 시아버지에게 첫 밥상을 올렸다. 그런데 하필 시아버지는 첫술을 뜨자마자 돌을 씹고 말았다. 시아버지는 새 며느리가 무안할까 봐 아무 말없이 다시 한술을 떴는데 역시 돌이 씹혔다. 이번에도 꾹 참고 세 번째 밥술을 떴는데 또다시 돌이 씹혔다. 참다못한 시아버지는 숟가락을 탁 놓으며 한마디 했다.
‘이 게 쌀밥여? 돌밥이지?’
이때 새 며느리 대답이 걸작이다.
‘아버님 그려도 돌보다 쌀이 많잖유~’
한국은 고쳐야 할 돌들도 많지만, 새 며느리 말대로 쌀이 훨씬 더 많은 나라다. 사회 곳곳이 지옥불, 헬조선인 문제점투성이로만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분명 잘하고 있는 것이 더 많은 돌보다 쌀이 많은 나라다. 80여 년 전까지 한반도는 식민지였고, 곧바로 터진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나라였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가난을 극복하고 이제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경제 대국이 되었다. 또한 빌보드, 아카데미 오스카상에 이어 노벨문학상까지 보유한 문화강국이 되어 전 세계인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우리가 이룬 성과를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 사회가 가진 잠재력을 바로 보아야 한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안에서 잘못한 것만 골라보며 전체를 평가절하하지 말고 보다 넓고 깊은 눈으로 우리가 보지 못한 잘하고 있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왜 잘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 그것이 미래를 맞이하는 현명한 자세다.
이제 지나친 자기 검열의 칼 국뽕의 덫에서 벗어나자. 한국인들만 생각하는 정신 승리라면 국뽕이 맞겠지만 잘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다. 분명 지금 세계는 K에 빠져들고 있으며 '문화강국 K'는 존재하는 실체다. 실체가 있는 것을 자랑하는 것은 국뽕이 아니라 자부심이고 자긍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