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소통방식을 가진 K족
‘언어가 있기 때문에 큰 규모의 공동 행동을 조직할 수 있었고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으며 생산력을 높이고 문명을 건설했다. 언어는 종교와 함께 문명을 가르는 가장 강력한 경계선이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중/ 유시민 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이 있다. 한 언어 속에는 그 공동체의 역사, 문화, 생활, 습관, 가치관 등 모든 것들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언어를 들여다보면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존재가 보인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사용하는 한국어(韓國語, Korean language) 속에도 한국인의 정체성이 들어 있다.
한국어는 지구상 가장 말맛 나는 언어다. 한국어는 세계에서 가장 표현력이 섬세한 말이다. 형용사와 부사가 발달한 한국어는 표현을 섬세하고 풍부하게 할 수 있으며, 다양한 의태어와 의성어를 가미하여 듣는 사람이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전달한다. 또한 다양한 비유와 상징을 많이 사용하여 의미를 한층 더 맛깔스럽게 전달한다. 한국어는 같은 말이라도 쓰임이나 억양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또한 같은 뜻이라도 그 상황이나 의미를 섬세하고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다양한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처음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은 글자(한글)는 배우기 쉬울지 몰라도 한국말을 깊이 이해하는 데는 알면 알수록 어려운 언어라고 하소연한다.
한국어는 죽음 하나를 놓고도 '죽었다, 돌아가셨다, 사망했다, 뻗었다, 명줄 끊었다, 디졌다, 밥숟갈 놓았다. 황천길 갔다, 향내 맡았다' 같이 다양하게 표현한다. 같은 냄새를 맡고도 ‘고린네, 구린네, 꼬랑네, 지릉네, 꼬랑네, 꾸리한네, 꼬리꼬리한네, 구릉네’ 등 종류별 냄새가 코로 들어오는 듯하다. 같은 색이라도 그 느낌이나 농도에 따라 '붉다, 빨갛다, 벌겋다, 불그스름하다, 불그죽죽하다, 뻘겋다, 새빨갛다, 빨긋빨긋하다' 등 수십 가지로 표현한다. 여기에 맛의 세계로 넘어가면 그 표현은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다. ‘달달하다, 개운하다, 담백하다, 시원하다, 밍밍하다, 떨떠름하다, 씁쓸하다, 새콤달콤하다, 짭조름하다, 시금털털하다’ 등등 맛이 혀끝에 감기 듯하며 말만 들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이렇게 어떤 상황, 냄새, 색깔, 맛 등에 대한 표현이 수십 가지임에도 한국인들은 이 말들을 상태나 상황 등 미묘한 차이에 따라 구분해 사용한다. 그러니 한국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외국인들이 이 말마다의 미묘한 차이를 구별해 내는 것을 어려워한다.
또한 한국어는 대상 하나에도 여러 이름이 붙는다. 명태 한 마리도 상태에 따라 ‘동태, 생태, 노가리, 황태, 북어(건태), 코다리(반건조), 백태, 흑태, 먹태, 깡패’로 부른다. 모두 같은 생선 다른 이름이다.
영어로는 비를 ‘rain’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지만 우리말에는 내리는 모양새나 시기 등에 따라 세분하여 다양한 이름이 붙는다. 안개비, 이슬비, 가랑비, 보슬비, 작달비(장대처럼 내리는 굵은 비), 모다깃비(뭇매를 치듯 내리는 세찬비) 같은 내리는 모양이나 양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있고, 해가 떠 있는 동안 내리는 비를 여우비라고 부르고 오란비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장맛비도 있다. 여기에 봄에는 일이 많아 비가 와도 일을 한다고 해서 일비, 여름에 오는 비는 봄보다 한가하다고 해서 비가 오면 잠을 잘 수 있는 잠비, 가을에는 추수가 끝난 뒤라 비 오면 떡을 해 먹을 수 있다 해서 떡비, 겨울에는 농한기라 비가 오면 술 먹고 놀기 좋다 해서 술비라고 부른다. ‘비’라는 명사 하나에도 이렇게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으니 참으로 섬세하고 아름다운 언어다.
정말 지구상 최고의 말맛나는 말이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뿐인가? 대상의 변화에 따라 구체적인 명칭이 별도로 따라붙는다. 예를 들어 '쌀'은 성장과정과 용도변화에 따라 영어 ‘Rice’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새로운 이름을 갖는다. 나락이 싹을 틔워 모가 되고, 모가 자라 벼가 되고, 벼의 열매가 익어 다시 나락이 되고, 이 나락의 껍질을 벗겨 내면 쌀이 되고, 이 쌀로 조리를 하면 밥이 된다. 밥은 눌은밥, 익은 밥, 설익은 밥, 탄 밥, 진밥, 된밥’이 되기도 하고, 그 종류가 많아 꼭 쌀로 만드는 것만 밥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잡곡밥, 보리밥, 조밥, 오곡밥처럼 쌀이 들어가지 않아도 밥이라고 부른다. 이런 밥이 ‘밥심이지’ ‘밥숟갈 놓았다’ ‘밥벌이’ 등과 같이 문장 속에 들어가 더 깊은 의미로 쓰이니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은 머리에 쥐가 난다.
여기에 더해 가끔 한국어는 문장을 생략한 채 '거시기' '이' '어'와 같이 말 한마디로 감정을 담아내기도 한다. 내 고향 충청도에서는 ‘이’나 ‘어’라는 말 하나로 대화를 끝낼 수 있다.
이~(그래 맞아) 이! (그래) 이? (뭐라고? 왜?) 이~이~(알았어)
어? (뭐라고?), 어~(알았어), 어~~~(알았다고-비꼬는 듯), 어~어(그랬구나)
암호 같은 이런 대화에도 한국인들은 서로 불편 없이 잘 알아듣으며 산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런 섬세한 표현을 어찌 온전하게 이해할 것이며 아무리 유능한 번역가라 하더라도 이 말맛을 살릴 수 있을까 싶다.
그러므로 안타깝게도 이렇게 섬세하고, 감각적이고, 입체적인 한국어 맛을 온전히 살려 번역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작업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방송 활동과 통역 일을 하는 러시아 출신 이에 바(Lee Eva)씨는 한국어 통역의 어려운 점을 ‘푸르스름한 색'이나 '시퍼런 색'처럼 표현이 다양한 색에 관한 단어들과 다양한 형용사, 부사들이라고 말한다. 하긴 한국인도 어려운 ‘우두망찰’ ‘들썽들썽’ 이런 부사들을 외국인들이 어떻게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우두망찰: 부사] 정신이 얼떨떨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양/들썽들썽: 부사] 가라앉지 않고 자꾸 어수선하게 들뜨는 모양)
이런 면으로 볼 때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기적 같은 일이며 향후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물꼬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향후 실력 있는 번역자가가 많이 나타나 노벨문학상 수장자가 계속 나오길 기대해 본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다. 언어가 섬세할수록 소통의 깊이는 깊어진다. 이런 깊이 있는 말을 쓰는 한국인이 문화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K팝, K드라마, K영화 등 K콘텐츠가 괜히 세계인을 사로잡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문화강국 K의 힘은 바로 지구상 최고로 말맛 나는 한국말의 힘도 한몫했던 것이다. 이렇게 말맛 나는 말을 가졌으니 우리는 이미 축복받은 K족이다.
말맛 하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고향마을 옆집 아저씨다. 지금까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최고로 맛깔스럽게 말을 하던 분이다. 뜰 앞 오동나무는 아직도 봄꿈 속을 헤매는데 아저씨 하늘나라로 가신 지가 벌써 수십 년이다. 그럼에도 아저씨의 맛깔난 음성이 어제처럼 귓가에 윙윙거린다.
“이 노릇을 어쩐댜? 못 먹어서 무식이믄 뭐래두 멕이믄 그만인디 통 몰러서 무식이믄 참말루 개갈 안 나는 겨”
다시 생각해도 참 맛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