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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 박사 Dec 30. 2021

Congratulations Dr. Chung

5년간의 장기 레이스와 잊지 못할 박사 논문 VIVA

VIVA, 영국 박사 구술시험

2017년 9월 12일 박사 학위 취득을 위한 구술시험이 있던 날이다. 우리나라나 미국에서는 이 구술시험을 디펜스(Defense)라고 하는데 영국에서는 바이바(viva)라고 한다. 이는 라틴어로 "살아있는 목소리로(with living voice)"의 의미를 가진 Viva voce에서 유래한 것으로 구술시험을 의미하는 단어다.


박사 과정에 입학할 때부터 viva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는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최악의 경우), 박사 학위가 아닌 석사 학위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3년 차부터는 꿈에서 viva를 보고 통과하지 못해 석사 학위를 받는 꿈을 자주 꿨을까...! 학우들도 비슷한 내용의 꿈을 꿨다는 것을 보면 그 스트레스가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석사 학위를 하나 더 받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영국 박사 구술시험 성적 평가

구술시험의 성적은 크게 3단계다. A: 통과, B: 수정 작업을 거쳐 통과, C: 탈락. 그리고 각 단계별로 상세 평가로 나뉘고 그에 따라 논문 수정 제출일이 정해진다.


A: AWARD(수여)

Ai: With no corrections 수정 없이 바로 통과

Aii: Subject to minor corrections being made to the satisfaction of the internal examiner 내부 심사위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수정으로 4주 이내에 제출

B: REFER FOR RE-EXAMINATION (재시험)

Bi: permitting submission of a revised thesis for examination without further research and without further oral examination 추가 연구, 추가 구술시험 없이 6개월 이내에 논문 수정하여 제출

Bii: permitting submission of a revised thesis for examination without further research but with a further oral examination 추가 연구는 불필요하지만, 추가 구술시험을 다시 실시하고 논문 수정하여 제출

Biii: permitting submission of a revised thesis for examination with further research and with a further oral examination 추가 연구 및 추가 구술시험 실시하고 논문 수정하여 제출

C: REJECT (탈락)

Ci: but award the degree of MPhil 수정 없이 박사학위 대신 석사학위 수여

Cii: award the degree of MPhil subject to minor corrections being made to the thesis 최소한의 수정을 하여 통과하면 석사학위 수여

Ciii: advising that the thesis be submitted for examination, with revision, for the degree of MPhil 수정하여 재평가 후 석사학위 수여

Civ: not permitting resubmission 재시험 불가


단계만 봐도 무시무시하다. A를 받는 것이 가장 좋고, C는 내가 꿈에서 자주 보던 석사학위 수여받는 것이다. B는 수정 기회가 주어지니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선배들에 의하면 B등급을 받고 마지막 수정을 하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많단다. 이 경우는 박사 졸업이 아닌 수료로 남게 된다고 한다. 상상만으로도 안타깝고 슬프다.



시험 준비

박사 과정 시험 일주일 전에 영국 런던에서 COBIIR(International Colloquium on Corporate Branding, Identity, Image and Reputation)이라는 브랜딩 학회에서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 학회는 유럽의 브랜딩 연구를 하는 학자들의 모임으로 Global Branding Conference와 함께 브랜딩 쪽 학회로 유명하다. COBIIR에서 발표하는 내용은 내 박사 과정 연구의 핵심 내용이었다. 박사 시험에 앞서 연습하기 좋은 기회였다. 발표 후 많은 사람들이 내 연구에 관심을 보였고, 유용한 조언을 더했다. 다음 주에 박사 구술시험이 있다니 모두들 잘 끝날 거라며 응원도 해줬다. 자신감이 쑥쑥 올랐다.


학회가 끝나고 맨체스터로 이동해서 호텔 방에서 본격 시험 준비를 했다. 논문도 훑어보고, 지도교수가 보내준 예상 질문에 맞춰 답변을 작성해 보기도 하고 말로 수없이 연습했다. 나의 5년간의 노력이 곧 결실을 맺는다는 생각과 함께 A를 받을 수 있도록 간절히 바랐다. 스터디 버디 중 내가 제일 먼저 시험을 보는 거였고, 친구들의 응원의 메시지도 쏟아졌다.

 

시험 전 날 마지막 정리를 하며



결전의 시간, 내 논문 이야기로만 꽃피운 2시간

지도교수가 심사위원 위원회장을 맡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영국은 지도 학생의 viva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 참석을 하는 경우에도 학생의 등 뒤쪽에 앉아서 함구하고 있어야 한다. 지도교수의 역할은 심사위원들의 코멘트를 정리해서 나중에 학생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시험은 오롯이 학생 혼자의 몫이다. 한국 박사 학위 시험장에는 심사위원을 위한 다과나 유명 호텔 도시락까지 준비해야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나 영국 박사 학위 시험장에 학생이 준비할 것은 발표 자료뿐이다.


행정원이 예약해 놓은 교실에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컴퓨터에 발표자료를 띄워 놓을 준비를 했다. 그런데 컴퓨터에 로그인이 되지 않아 15분가량을 씨름을 해야 했다. 하필 노트북도 안 갖고 왔는데, 왜 이런 일이?! 나는 또 왜 그날 노트북을 들고 가지 않았을까? 아직도 이해불가... 행정원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지도교수님과 심사위원 2명이 들어왔다. 심사위원은 학교 소속의 내부 심사위원 1명과 외부 심사위원 1명으로 구성된다. 외부 심사위원은 웃는 얼굴로 나에게 다가오며 이렇게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참 재미있는 것은 내가 사는 동네의 이름이 Ashley Lane이고 우리 아내의 이름이 Ashley에요. 나는 Ashley와 인연이 참 깊은 것 같아요."

컴퓨터 때문에 긴장되어 있던 나는 이 이야기에 긴장이 풀렸다.


지도교수님은 원래 육아휴직 중이라 참석을 못한다고 했었는데, 그래도 지도 학생이 시험 보는 날이니 시간을 내서 왔단다. 거주하는 곳이 학교로 차로 50분 거리에 있다고 했는데 이렇게 참석해주시니 참 감사했다. 지도 교수께 컴퓨터에 로그인이 안된다고 하자 당신의 노트북을 빌려주셨다. 정말... 나는 운이 좋은 사람 ㅠㅠ


심사위원 두 분과 책상 3개를 붙이고 앉아서 시작했다. 다과도 격식도 없이 각자 마실 물통을 들고 친구들끼리 토론하는 것처럼 앉아 시험을 본다는 것이 나에게는 정말 새로웠다. 논문 내용 관련한 10분 발표가 끝나고, 챕터 1부터 챕터 5까지 다양한 질문이 시작됐다. 내 박사 학위 논문은 총 75,071자로 A4로 248페이지였는데, 심사위원들이 꼼꼼하게 읽고 곳곳에 메모와 포스트잇을 붙이신 것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게다가 시험일 전에 두 분의 심사위원은 내 논문을 정독한 후 사전 미팅을 2번이나 가졌다고 한다. 누군가가 내가 쓴 글을 이렇게 정성 들여서 읽고 논의했다니. 처음엔 시험에 대한 두려움만 있었는데, 내 논문에 대해 이렇게 깊이 있게 나누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에 감사함이 밀려왔다. 평생 살면서 어디에서 내 박사 논문에 관한 이야기만 1-2시간 동안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 짝꿍도 우리 부모님도 내 박사 논문을 정독하지 않았다 ㅋㅋㅋ)



교수와 학생 관계 평가의 시간

논문에 대한 심도 있는 질의응답이 끝나니 지도 교수님은 잠시 자리를 비우고 심사위원들은 나에게 박사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질문과 지도 교수에 대한 평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여러 질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박사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과 소감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전 편에서도 언급했지만, 처음 연구 주제와 방법론을 정할 때, 한국에서 많이 하는 설문을 통한 양적 연구(Quantitative research)가 아닌 영국에서는 진행하는 질적 연구(Qualitative research)가 강하다는 것을 알고 방향을 바꿨다. 그러나 질적 연구의 경우, 철학과 인식론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그에 따라 연구 주제와 방법론을 정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매우 생소했다고 이야기했다. 또 지도 교수가 정해진 답을 주기보다 내가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도'를 해줄 뿐이라 그 부분이 어려웠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 교수의 올바른 지도로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기쁨도 느낄 수 있었고, 많이 성장했음을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이때 심사위원들은 눈을 반짝반짝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가감 없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였는데 이분들의 반응을 보니 왠지 안심이 됐다.


외부 심사위원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지도 교수가 육아 휴직 중에도 이렇게 참석한 것만 봐도 두 사람의 평소 관계가 좋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라고 했다. 이것으로 심사위원들이 나를 평가하기 위한 질문은 모두 끝났다. 이제 나도 교실 밖에서 대기를 해야 했다. 지도 교수와 그 간의 근황 토크를 하고 있는데, 결과 집계가 됐다고 한다. 교실로 들어가니 외부 심사위원이 환한 미소와 함께 악수를 청하며 말한다.


Congratulations Dr. Chung,
You have passed the viva with Aii, subject to minor corrections.

축하합니다 정박사,
마이너 수정인 Aii로 바이바를 통과했습니다.



이것은 꿈인가 생시인가?! 시험에 탈락하고 석사학위를 받는 꿈을 그렇게나 많이 꿨는데 현실에서는 Aii로 통과했다. 감격의 순간이었다. 선배들로부터 viva 후 "Congratulations Dr."를 들을 때 그렇게 기분이 좋다더니.. 이런 기분이었구나! 얼떨떨한 기분으로 심사위원들과 악수를 하고 향후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기념사진 촬영까지 마쳤다. 성공적으로 통과까지 했으니 마음 편하게 한국에서 준비해 간 국화차도 심사위원들께 전했다. 원래 시험 전에는 이런 선물을 전하는 것이 뇌물로 간주될 수 있어서 절대 건네면 안 된단다. 하지만 시험이 끝난 다음이고 결과도 좋으니 두 분의 심사 위원도 기쁜 마음으로 받으셨다.

시험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



자축 파티

시험 통과 후, 가족과 통화하고 스터디 버디 그룹에 소식을 남겼다. 하나둘씩 후기를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내가 맨체스터에 방문할 때는 늘 학우들과 함께였는데, 이렇게 홀로 와서 며칠씩 머물고 시험까지 보고 나니 왠지 허탈함이 몰려왔다. 친구들과 늘 방문하던 우리의 최애 레스토랑 "라메이지(Lameizi)"에 들러 최애 메뉴인 새우튀김 요리를 시켜놓고 5년간의 긴 레이스를 성공적으로 완주했음을 자축 했다.

영국에서 늘 먹던 새우 튀김 요리와 자스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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