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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 박사 Dec 30. 2021

졸업, 영국 박사과정을 마치며

다양한 면에서 관점을 넓혀준 값진 경험

5년간 함께 했던 친구와 함께한 졸업식

영국 학교의 졸업식은 2월, 7월에 있다. 2017년 9월에 박사 학위 시험을 통과했기에, 2018년 2월 졸업식에 참석해도 됐지만, 맨체스터의 2월은 우중충함의 극치다. 이왕이면 날 좋은 7월 졸업식에 참석하는 게 좋지. 해서 2018년 7월 졸업식에 참석했다. 의미 있었던 것은 5년의 장기 레이스를 내 옆에서 늘 함께한 나의 베프 Heba도 5월에 박사 논문 최종 통과를 하고 7월 졸업식에 함께 참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입학부터 졸업까지 인생의 한 챕터를 함께 마무리했다.


졸업식 전에 미리 졸업가운을 신청하고 당일에 본인 사이즈에 맞는 것을 입고 졸업식에 참석한다. 맨체스터 경영대학원의 박사 졸업 가운은 보라색과 자주색에 노란색이 포인트로 들어간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이다. 거기에 헨리 8세가 쓸 법한 모자까지. 영국서 박사를 하신 아버지도 이와 유사한 모자에 자주색과 검은색 가운이었는데, 스타일이 비슷비슷한가 보다.

푸르른 학교를 배경으로 짝꿍이 찍어준 졸업사진

박사 졸업 가운을 입고 학교 곳곳을 활보하는 모습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가운은 무슨 학위 가운이에요?"라고 묻는다.

박사 학위 가운이라고 하자 "너무 축하한다. 멋지다"며 박수를 쳐준다. 5년의 긴 시간과 노력에 비해 너무나 빨리 끝난 졸업식. 박사 학위 가운을 입고 원 없이 돌아다녔다 :)

 

길고도 지루한 레이스였지만, 이 과정에서 배운 점, 깨달은 점, 느낀 점이 참 많다. 수업 자체에서 얻은 점도 많지만, 영국 박사 과정의 프로세스, 지도교수의 교수법, 학우들과의 교류를 통해 나의 생각의 폭과 관점이 넓어졌음을 느낀다.



연구는 스스로 궁금증을 풀어가는 과정

박사 과정 2학년 때까지는 정해진 코스웍과 스케줄에 따라 과제를 제출하고 평가를 받았지만, 3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본인이 알아서 모든 것을 진행해야 했다. 이에 학우들은 프로그램 디렉터에게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이 없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더불어 어떤 분야의 박사라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지식을 정리해놓은 자료 같은 것은 없는지 문의했다. 이 질문을 받은 프로그램 디렉터의 대답은 이랬다.


여러분은 이미 코스웍으로 박사 연구를 위한 기본적인 방법론을 배웠습니다. 이제 각자의 연구 주제를 발전시키고 배운 방법론을 적용해서 연구를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그래도 박사라면 알아야 할 스탠더드 같은 것이 있지 않나요?"라고 누군가가 추가 질문을 했다.

생각해보니 나도 브랜딩으로 박사 연구를 하려는데, 정작 브랜딩 관련된 수업을 박사 과정에서 듣지는 못했다. 브랜딩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는데 브랜딩의 기본 지식도 모르면 날 전문가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이 모두 분야는 다르지만,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박사 과정의 공부는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고 지침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궁금한 것을 스스로 찾아내 공부하고 판단하며 연구를 하는 것입니다. 정해진 스탠더드는 없습니다. 각자가 궁금함이 풀릴 때까지, 해답을 찾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디렉터의 이 말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맞는 말이었다. 박사 과정은 독자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훈련하고 그 결과물로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렇기에 박사 과정 수업은 온갖 방법론으로 가득했다. 본인 관심 분야는 자신이 알아서 공부를 하며 쌓아 나가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연구를,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대표 논문 및 최신 논문을 모두 섭렵해야 하고 관련 분야 책도 읽어야 하는 것 아닌가. 누군가가 정해준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나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다. 박사 과정에서 누군가가 떠주는 것을 받아먹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답변 대신 질문을 건네는 지도 교수

연구와 관련해서 우리 지도교수는 내가 묻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한 적이 없다. 또 나의 연구에 대해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면 좋겠다는 등의 제안을 한 적도 없다. 내 연구니까 나에게 모든 결정권을 준 것이리라. '어떤 교수님은 매주 읽을거리를 주고 미팅을 한다는데, 나는 너무 방목하는 것 아냐?'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또 꼭 필요한 조언과 가이드는 늘 적절하게 제공했다.


연구 주제를 확정하고 연구 방법론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봉착했다. 정성적 연구에서는 내가 이 방법론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철학적, 인식론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 있게 전개해야 한다. 책으로 읽고 개념을 이해하는 것과 내가 어떤 사상을 갖고 있고, 어떤 이유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러한 방법론을 선택했다는 내용을 논리적으로 작성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생각이 꼬여서 도무지 풀리지가 않았다. 그때 지도교수에게 이걸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문의하는 메일을 보냈다.


나는 지도교수의 명쾌한 해결책이 담긴 답변을 기다렸는데, 메일에는 답변 대신 질문이었다. 매우 당황스러웠다. 지도교수의 질문을 몇 번씩 읽고 곱씹으며 다시 생각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읽었던 책을 또 읽었다. 신기하게도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이런 식으로 몇 번의 메일이 오가면서 어느 순간 머릿속에 스파크가 일었다. 그리고 막혔던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 떠올랐다. 놀라운 순간이었다.


이 과정을 경험하며, 학생의 질문에 대한 즉답보다 그 문제를 스스로 찾게 해주는 훈련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깨달았다. 옛날 학자들이 서로 손편지를 주고받으며 생각을 공유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모습이 그려지며 나도 모르게 그들과 동화되는 기분이었다.



배움과 도전에 나이는 중요치 않아

학우들로부터도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나이 대가 30-60대까지 다양하고, 세계 전국에서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니 하나의 주제를 갖고도 생각하는 것이 모두 달랐다. 이들과의 교류는 나의 사고의 폭을 넓히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놀라웠던 것은 50-60대의 학우들도 배움에 진심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그저 학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진리를 탐구하고 배우고 싶어  것이라는 생각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열정에 나도 동기부여가 됐고,  열심히   있었다. 기억에 남는 많은 학우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나보다 2학년 선배인 중국 여성이다. 이분은 54세의 여성으로 금융권 이사로 근무 중이었다. 그녀의 목표는 박사 과정을  마치고 지금 직장에서 퇴사하면, 나이 60세에는 한의학을 배우는 것이란다.


'보통은 박사 학위를 받고 나면 겸임 교수나 뭔가 기존의 커리어가 바탕이 되는 일을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기존의 경력과 무관한 한의학을 공부하려고 하는지 질문했다. 질문을 하면서 '나이 60 뭔가를 시작하기 늦은 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녀는 대답했다.


나이 60은 새로운 걸 시작하기 좋은 나이예요. 그리고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할 나이죠. 내 몸은 내가 챙기고 싶어서 한의학을 배우려고 해요.


 속마음을 들킨  같아 잠시 민망했다. 나이 60이면 이제 본인이 일궈온 커리어를 바탕으로 적당히 유지하는 삶을 사는 나이가 아닐까 했는데, 그녀는 기존에 했던 것과는 완전 다른 분야를 새로 시작하려고 한단다.  도전 정신에 감탄을 하지 않을  없었다. 나이 30대에도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많이 먹었지?' 하는 생각과 '뭔가를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소심해지던 나에게 배움과 도전에 나이는 중요치 않다는  울림을 주는 사건이었다. 문득 궁금하다. 그녀는 지금 한의학을 공부하고 있을까?




여러 부서를 돌며 한 다양한 경험이 찾아준 나의 관심 분야, 연습 삼아 촉박하게 박사 과정에 지원했던 기억, 바쁜 스케줄에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수업 듣고 발표하던 나날들, 비행기에서 시체처럼 12시간을 잤던 기억, 사랑하는 회사와의 이별, 그러나 결국 내가 열정을 다해 일했던 업무들이 선으로 이어져 나의 박사 학위 연구 주제로 이어진 기적. 그리고 탄생한 브랜딩 프레임워크.


30대 초반,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가기 위해 시작한 박사 과정이 무사히 잘 끝났다. 이렇게 내 인생의 한 챕터가 마무리되었다.


 모든 과정이  혼자의 힘으로  것은 절대 아니었다. 회사에서 전폭적으로 이끌어주고 아낌없이 지원해준 명의 대표 이사와 함께 일했던 다수의 팀장들, 그리고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준 모든 분들,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짝꿍과 가족들, 5년의  레이스를 함께 달려준 스터디 버디들, 그리고 내가 스스로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연구할  있도록  지도해준 우리 교수님까지 하나하나의 점들이 모여 이런 결과를 만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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