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청객 Oct 05. 2022

아홉, 안도

이기적인 위로를 건네다

안도

1. 사는 곳에서 평안히 지냄. 또는 그런 곳
2. 어떤 일이 잘 진행되어 마음을 놓음




 


독립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생긴 습관이 있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낄   감정이 ‘생기게 되었분석해보는 . 감정이 일어난 근본적인 이유를 따라가다 보면 때로는 내가  감정을 느낀 예상 밖의 이유를 마주할 때도 있다. 부끄럽지만 내가 최근에 가장  ‘안도감 느꼈던 이유는 ‘타인의 불행’ 때문이었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크게 아팠고, 나는 아픈 사람의 보호자였고, 결국에는  가족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나를 찾는 친구들이 부쩍 많아졌다. 아픈 가족이 생기면  감정을 오롯이 이해하는 나에게 연락 하는 것이다.



A의 엄마는 불의의 사고로 인해 의식 불명 상태가 되셨다. 건강하셨던 엄마가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어버려 A는 이 모든 일들을 아직까지 믿지 못했다. 하지만 A가 현실을 받아들일 틈 따위는 없었다. 상주 보호자를 할 가족이 없어 A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A의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서는 의식 불명인 환자에게 더 이상은 해줄 치료가 없다며 나가 달라는 재촉을 시작했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A는 엄마를 입원시킬 수 있는 재활병원을 수소문 중이다. A는 그의 엄마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 가해자와의 소송도 곧 시작할 예정이다.



B의 아빠는 얼마 전 받은 건강검진에서 암이 발견되셨다. 수술을 했지만, 개복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상태는 심각했다. B는 주중 2-3일가량은 휴가를 내고 보호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B가 가장 힘든 것은 보호자와 회사원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좋은 딸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감정과, 인간이라면 여러 상황 속에서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 그 2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었다. 분노했다가, 분노하는 자신의 모습에 자책했다가, 잘해 드려야지 다짐했다가, 다시 또 답답한 감정을 느끼는 감정의 무한 루트랄까.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 A와 B는 내가 해주는 말들이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본인들에게 필요한 말을 모범 답안처럼 들려주어 고맙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어 좋았지만 엄마를 떠나보낸 경험이 자산이 되고 도움이 된다는 것이 슬펐다. 엄마가 건강하게 살아 계셔서 A와 B에게 경험 없는 사람이 내뱉는 공허한 위로를 해줄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상상도 해보았다. (물론, 둘 모두 연락의 시작은 ‘너라면 내 마음을 알 것 같아, 너에게만 말한다’였으니 나에게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그 친구들은 나에게 털어놓지 않았을 테고 위로를 할 기회조차 없었겠지)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나는 이직, 이사, 이별이라는 변화를 한 번에 겪는 불쌍한 인간이라는 프레임을 나에게 씌웠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존재는 나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며,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있다며 마음을 놓았다. 상대방의 불행한 상황을 보며 안도감을 느낀다니. 지금의 나는 불쌍하거나 불행한 인간이 아니라, 이기적인 인간이다.



신체적인 독립도, 감정적인 독립도 나라는 인간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어느 지점에 있는 결승선 같다. 앞으로는 다른 사람의 상황과 나의 상황을 비교하며 어떤 감정을 느끼기보다는, 오롯이 나의 상황에 근거하여 내 감정들이 일어나길 바란다.



덧붙여 다음에는 부디, 어려운 날들을 힘겹게 보내고 있는 A와 B에게 이기적인 마음을 덜어낸 진정한 위로를 해주고 싶다.

이전 08화 여덟, 인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