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청객 Oct 25. 2022

열, 방향

나침반을 의심하지 않는 마음

방향

1.    어떤 방위(方位)를 향한 쪽
2.    어떤 뜻이나 현상이 일정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쪽

 





나는 누구보다 나를 못 믿는 사람이다. 이 간단한 문장 하나가 나의 다양한 특징을 설명해준다. 어떠한 선택을 앞두고 늘 망설이는 이유는 내가 내린 결정을 내가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여러 번 확인한다는 꼼꼼한 성격도 내가 확인한 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30살이 훌쩍 넘도록 내가 독립을 하지 않았던 이유도 ‘독립된 주체로서 살아갈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자기 확신이라는 것이 태어나는 순간 가지게 되는 당연한 ‘눈코입’이 아니라면, 나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지나친 자기 확신은 독이 된다지만 이렇게 병적으로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것도 분명한 문제가 아닌가. 나에 대한 의심의 근원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생각을 달리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3번째 직장으로의 이직을 준비하던 시절 수많은 낙방이 이어졌다. 당연히 합격인 줄 알았던 곳도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기를 반복하니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꾸며낸 이야기 같지만, ‘여기까지만 해보고 안되면 이직 준비를 잠시 쉬자’라고 생각했을 때 합격 소식을 들었다. 합격한 곳은 대기업이었고, 그곳에서 할 일은 내가 오래도록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그런데도 기쁘지 않았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되는 얼떨떨함으로 인해 기쁨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합격을 하고, 회사에 들어와서도 내내 내 머릿속을 강타하는 질문은 단 한 가지였다.



'도대체 내가 왜 뽑혔지?'



내가 가진 능력에 비해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들의 기대와 나의 실체가 달라 사람들이 실망할 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입사 후 들었던 면접에 대한 후기들은 내 생각을 조금씩 바꾸게 했다. 같은 부서 사람들은 내가 당연히 회사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확신했다는 말을 했다. 그런 착각이 들게 할 만큼 내가 회사, 부서, 부서에서 하는 일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했다. 어떤 일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그 일을 풀어가는 방식도 내부에서 가지고 있던 바와 정확하게 일치해서 놀랐다는 말도 했다. 나보다 더 화려한 스펙을 가진 경쟁자를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이긴 것이라는 칭찬도 들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는 하나의 일에서 전문성 있게 커리어를 쌓아온 누군가보다 나처럼 다양한 업무의 영역에서 경험을 쌓아온 나 같은 사람이 더 필요했다는 말도 들었다.



경력직으로 입사한 내가 잘 적응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싶어서 풀어낸, MSG가 가득 들어간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모든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나는 3번째 직장에 뽑힐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얼마 전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침반도 결국은 정확한 위치가 아니라 방향만 알려주는 것이고, 그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면 문제는 없다는 것. ‘나’라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나침반 자체는 의심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매일이 되길, 바란다.




이전 09화 아홉, 안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