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위로를 건네다
안도
1. 사는 곳에서 평안히 지냄. 또는 그런 곳
2. 어떤 일이 잘 진행되어 마음을 놓음
독립을 한 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생긴 습관이 있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낄 때 그 감정이 ‘왜’ 생기게 되었지 분석해보는 것. 감정이 일어난 근본적인 이유를 따라가다 보면 때로는 내가 그 감정을 느낀 예상 밖의 이유를 마주할 때도 있다. 부끄럽지만 내가 최근에 가장 큰 ‘안도감’을 느꼈던 이유는 ‘타인의 불행’ 때문이었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크게 아팠고, 나는 아픈 사람의 보호자였고, 결국에는 그 가족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나를 찾는 친구들이 부쩍 많아졌다. 아픈 가족이 생기면 그 감정을 오롯이 이해하는 나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다.
A의 엄마는 불의의 사고로 인해 의식 불명 상태가 되셨다. 건강하셨던 엄마가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어버려 A는 이 모든 일들을 아직까지 믿지 못했다. 하지만 A가 현실을 받아들일 틈 따위는 없었다. 상주 보호자를 할 가족이 없어 A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A의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서는 의식 불명인 환자에게 더 이상은 해줄 치료가 없다며 나가 달라는 재촉을 시작했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A는 엄마를 입원시킬 수 있는 재활병원을 수소문 중이다. A는 그의 엄마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 가해자와의 소송도 곧 시작할 예정이다.
B의 아빠는 얼마 전 받은 건강검진에서 암이 발견되셨다. 수술을 했지만, 개복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상태는 심각했다. B는 주중 2-3일가량은 휴가를 내고 보호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B가 가장 힘든 것은 보호자와 회사원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좋은 딸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감정과, 인간이라면 여러 상황 속에서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 그 2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었다. 분노했다가, 분노하는 자신의 모습에 자책했다가, 잘해 드려야지 다짐했다가, 다시 또 답답한 감정을 느끼는 감정의 무한 루트랄까.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 A와 B는 내가 해주는 말들이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본인들에게 필요한 말을 모범 답안처럼 들려주어 고맙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어 좋았지만 엄마를 떠나보낸 경험이 자산이 되고 도움이 된다는 것이 슬펐다. 엄마가 건강하게 살아 계셔서 A와 B에게 경험 없는 사람이 내뱉는 공허한 위로를 해줄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상상도 해보았다. (물론, 둘 모두 연락의 시작은 ‘너라면 내 마음을 알 것 같아, 너에게만 말한다’였으니 나에게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그 친구들은 나에게 털어놓지 않았을 테고 위로를 할 기회조차 없었겠지)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나는 이직, 이사, 이별이라는 변화를 한 번에 겪는 불쌍한 인간이라는 프레임을 나에게 씌웠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존재는 나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며,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있다며 마음을 놓았다. 상대방의 불행한 상황을 보며 안도감을 느낀다니. 지금의 나는 불쌍하거나 불행한 인간이 아니라, 이기적인 인간이다.
신체적인 독립도, 감정적인 독립도 나라는 인간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어느 지점에 있는 결승선 같다. 앞으로는 다른 사람의 상황과 나의 상황을 비교하며 어떤 감정을 느끼기보다는, 오롯이 나의 상황에 근거하여 내 감정들이 일어나길 바란다.
덧붙여 다음에는 부디, 어려운 날들을 힘겹게 보내고 있는 A와 B에게 이기적인 마음을 덜어낸 진정한 위로를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