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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청객 Sep 20. 2022

여덟, 인정

변화를 마주하기 위한 선언 

인정

확실히 그렇다고 여김






퇴사 후 약 두 달 만에 전 직장 동료를 전 직장 근처에서 만났다. 가장 가까웠던 동료와 가장 즐겨먹던 메뉴를 점심으로 먹고, 턱이 아프도록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전 직장은 달라진 것도 많았지만 변함없는 것들이 더 많았다. 익숙한 일과 이름들에 깔깔거리다 보니 시간 가는지도 몰랐다. 이직한 곳에서는 회사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동료가 아직은 없어서 이런 시간이 너무 고팠고 그래서 그 시간이 너무 달았다.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다가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슬픔이었다. 그리고 그 슬픔 끝에 독백처럼 읊조린 말.



“나 진짜 퇴사했네” 



나는 사실 그전까지 이직, 이사, 이별이라는 3가지의 변화 속에서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었다. 이성적으로는 달라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나 감정적으로는 인정하지 못하는 그런 상태. 유체 이탈이 바로 이런 걸까.



이직한 지 두 달이 다 되어 가도록 새로운 직장은 나의 직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소속감이 생길 리가 없었다. 전 직장과 새로운 직장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관망했다. 아마 무의식적으로는 전 회사의 (정신적인) 구성원이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래간만에 전 직장 동료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그곳에 더 이상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그제야 느껴졌다. 나는 지금의 회사에도 전 직장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어느 곳에도 속해있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자 슬픈 감정이 생긴 것이다.



이사도 마찬가지. 기숙사는 잠깐 내가 머무는 숙소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 기념비적인 모멘텀을 독립으로 명명하겠다고 선포했지만 실제로는 기숙사를 나의 집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이별은 오죽할까. 내 이별 서사에 누구보다 과몰입하다가 ‘이건 꿈일 거야’라며 부정했다. 물건, 사진, 편지 그 어느 것 하나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이별했다는 이야기는 하고 다니지만 그것도 이야기일 뿐. 이별은 여전히 내 마음에게 부정당하고 있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는 마음은 쓸모가 없을뿐더러 해로웠다. 달라진 것들을 제대로 마주 보지 못하게 했다. 과거에 매달리며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게 하는 눈가리개였다. 부정의 마음은 변화한 상황을 원복 시킬 수 있는 힘이 없었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부정의 마음이 힘이 발휘할 때는 오로지, 나의 마음을 괴롭힐 때뿐. 나라는 사람이 독자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과거로부터 떠나왔고,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완전히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4번째 템플스테이를 갔을 때, 스님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과거의 선택이 후회되죠? 하지만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예요. 그러니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지금을 살아요” 스님의 말대로 변화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독립적인 나로서 지금을 살고 싶기에 되뇐다.



나는 이직했고, 이사했고, 이별했다. 그게 지금의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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