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종족대잔치
2년 넘게 몰입해서 놀다보니, 알고 지내는 관계들이 엄청 많이 생겼는데, 그게 한눈에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금요일 밤 진주 소소책방으로 심야책방 방문을 했던 날, 매달무사히 찌라시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뒷장에 우리만의 지도를 그려보기로 했다. 내가 있는 부산에서부터 제주로 창원으로 진주로 함창으로 전주로 대전으로 서울로 일본으로 끝없이 뻗어나가는 세포줄기처럼 이름을 적어나갔다. 장소도 있고 사람도 있다. 신나게 적다보니 A4 한 장이 금새 채워졌다. 이렇게 많았나? 매달 찌라시를 만들면서 새로 생긴 관계와 소원해진 관계를 업데이트 해가며 우리 맘대로 지도를 꾹꾹 눌러 그렸다. 그러다 보면 한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 찾지 못한 장소들이 눈에 훤해서 오랜만에 안부 전화를 걸어보기도 하고, 문득 찾아가기도 했다.
당시 생각다방 산책극장의 자매공간! 대전의 산호여인숙은 많은 친구들이 애정했던 곳이다. 여인숙과 다방! 이름만으로도 우리는 만나자마자 서로를 알아보았지. 그 곳을 운영했던 은덕, 부영과 얘기하다가 우리와 비슷하게 살고 있는 종족을 찾고 다같이 만나서 종족의 미래를 그려보는 자리를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작당모의를 시작해서 2014년 가을 2박 3일,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종족들이 모인 종족대잔치를 정말로! 열었던 것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 친구의 친구가 친구인지라 장소로 구분하자면) 부산의 생각다방 친구들, 대전 산호여인숙 친구들, 수원 행굼동 청년들, 서울의 공간 몸냥, 장소를 내어주신 함창 카페 버스정류장 계해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밥만 먹어도 즐겁고, 설거지도 신이 나고, 카페 바닥에 침낭과 담요만 깔고 자도 행복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모였기에 다함께 하는 시간은 ‘내가 사는 법’에 대한 15분 글쓰기와 읽기 뿐이었다. 서로를 소개하고 인사한 뒤엔 저마다의 워크샵, 말그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하는 시간을 보냈다. 맛사지 워크샵, 라면 워크샵, 낮잠 워크샵, 산책 워크샵, 책읽기 워크샵, 어슬렁 워크샵, 짜장면 워크샵, 집보러가기 워크샵, 공갈못에서 북유럽놀이 워크샵…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놀이이자 워크샵이었다. 해가지고 다시 모인 2층 옥상에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의 경계가 불문명한 누구나 소리를 내고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자리.
모두가 종족대잔치의 주체이자, 자신의 재능력과 정체를 확인하는 자리이자, 함께 모여 지구에서 삶의 고민을 나누고, 각자 방법을 생각해서 자신의 곳으로 돌아 갔을 때 살아갈 힘과 든든한 지지와 응원을 마음 속 깊은 곳 씨앗처럼 심어보았던 만남. 혼자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에요. 고맙습니다. 어디에 있든 계속해서 자신만의 지도를 그립시다! 그리고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