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요 Sep 07. 2023

길고양이 폴이, 봄이랑 함께 살자

그 누구의 방문도 없이 둘이 보내는 동안 폴이 나의 시간으로 오지않고
내가 폴의 시간속으로 들어갔습니다. 
2011.8.15. (히요)

 

 고양이는 그랬다. 아직도 나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지만,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생각다방 산책극장 오픈을 준비하던 2011년 7월 8일, 대연동 길에서 까만 고양이 폴을 처음 만났다. 정말 작은 새끼 고양이였다. 길에 혼자 있는 게 위험해 보여서 그대로 조심스럽게 안았다. 데리고 가는 길에 근처 동물병원에서 건강은 괜찮은지 확인하고 그날부터 쭉 함께 지내고 있다. 폴이 혼자인 것이 아무래도 심심할 것 같아서 더 늦기 전에 같이 지낼만한 고양이를 찾다가, 2012년 1월,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를 한 마리 친구가 데리고 왔다. 노란 줄무늬 치즈 봄이. 


 영역동물인 고양이의 숙명대로 그들은 어디로도 가지 않았고 그렇게 지금까지 생각다방 산책극장의 모든 장소, 모든 역사, 내가 없었던 시간 전부를 기억하는 유일한 생명이 되었다. 물어볼 수도 없고, 대화를 나눌 수는 없어도 이젠 가족이다. 이사를 자주 다닌 집사 때문에 본의 아니게 매번 새 집에 적응하느라 고생했다냥. 아주 어릴 때는 둘다 크게 아파서 동물병원에 입원도 했었지만 2살이 지나고는 건강하게 묘생을 이어가고 있다. 


 항상 사람이 많이 드나들었던 다방에서 지내다가, 최근에는 아무래도 사람을 좀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합가해야 할 텐데 조금만 더 기다려주길. 마당이 있는 집에서는 외출도 하다가 지금은 완전히 작업실 안에서만 지내는게 답답하지는 않을까? 생각해봐도 물어볼 방법이 없네. 


 츤데레 폴과 관심묘 봄이와 살게 될 줄은 평생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일! 이 두 마리의 고양이와의 인연은 너무나 갑자기였고, 고민할 겨를도 없이 내 삶에 들어왔다. 간절히 원했던 만남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 덤덤하게 점점 좋아졌다. 올해로 어느새 8살(지금은 13살이 되었다.) 이 되었으니 함께한 시간만큼, 이별도 준비해야하겠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은 준비하나마나 일지도 모르지만. 

 

 이름을 지은 것도 부른 것도 우리이지만, 생각다방 산책극장이 일정한 온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너희의 체온 덕분이었어. 지금도 안으면 따뜻한 몸, 두근거리는 심장소리, 털이 피부에 닿는 느낌, 영롱한 눈동자, 짝짝이 눈썹, 퐁신퐁신한 발바닥, 잡히는 뱃살, 이제는 구분할 수 있는 폴이와 봄이만의 목소리. 고마워. 더 살뜰히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